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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칼럼

February 24

“삭개오야,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어떤 목사님이 “삭개오”(Zacchaeus)에 관한 설교를 하시다가 큰 실수를 했습니다. 며칠 전에 읽었던 “니고데모”(Nicodemus)의 이름과 삭개오의 이름을 혼동한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세리였습니다. 그는 키가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몹시 보고 싶어했습니다.” 설교를 듣고 있던 성도들이 여기저기서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니고데모가 아니라 삭개오 아냐?” 목사님은 교인들이 수군거리자 설교가 은혜로워서 그런 줄 알고 더 큰 목소리로 힘있게 설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니고데모가 살고 있던 여리고를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February 17

가장 소중한 것

박은서 작가가 지은 “소중한 사람에게 주고 싶은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소녀가 도쿄의 어느 호텔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신출내기 사회 초년병입니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업무는 화장실 청소였습니다. 이 호텔은 신기하리만치 화장실 청소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 호텔에 유명한 화장실 청소의 좌우명(Motto)이 있었는데, “오늘 새로 설치한 변기처럼 항상 깨끗하게 닦아라”였습니다.

February 10

생각의 차이

고릴라와 침팬지는 사람과 같은 유인원(類人猿)이라고 합니다. 염색체의 구조가 단지 2%만 다르고 모든 것이 다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 2%의 차이 때문에 고릴라와 침팬지는 동물원 우리(cage) 안에 있고, 사람은 우리 밖에 있습니다. 2%의 차이가 곧 생각의 차이 입니다. 사람의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입니다. “지혜롭고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사람이 지혜로울 수 있는 이유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동시에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도 깊은 자기 반성(self-reflection)과 성찰을 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February 5

주님의 말씀 따라

어느 목사님이 결혼하기 전인 목사 초년병 시절에 경험했던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그 목사님이 어느 날 밤에 교회 사택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시커먼 복면을 쓴 강도가 한 밤 중에 침입해 들어왔습니다. 강도는 날카로운 사시미 칼을 자고 있던 목사의 목에 대고 굵은 목소리로 위협했습니다. “움직이지 마, 소리지르면 이 칼로 요절을 낼 줄 알아!” 깜짝 놀라 눈을 뜬 목사는 날카로운 칼이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는 것을 보고 무서워서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습니다. 강도는 그 남자가 목사인 줄 모르고 좀 더 확실하게 겁을 주려고 거친 욕을 퍼부면서 칼 끝으로 가볍게 그의 목을 찔렀습니다. 목사는 잔뜩 겁에 질려 눈알이 터질 만큼 눈을 꽉 감고 연신 굽실거리며 “예, 알겠습니다!”만 반복했습니다.

January 26

5층 남자들

좋은 남편감들을 판매하는 백화점이 있었습니다. 이 백화점은 이 땅의 여성들이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남편감들을 특별 제작 판매하는 백화점입니다. 이 백화점에는 세 가지 엄격한 규칙이 있었습니다.첫째는, 백화점이 모두 5층인데, 한 번 지나친 층은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각 층을 돌아보면서 남편감들을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즉시 결정해야 합니다. 나중에 다른 신랑감들과 비교하면서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둘째로, 아무리 마음에 드는 좋은 신랑감들이 여러 명 있어도 한 여성당 딱 한 명씩만 구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로, 이 백화점에 일단 들어온 여자는 백화점을 나갈 때는 반드시 신랑감을 골라서 함께 나가야만 합니다. 만약 홀로 백화점을 나가게 되면, 그 여자는 영원히 결혼을 할 수 없는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백화점은 매력적인 백화점이면서 동시에 무서운 백화점이기도 합니다.

January 22

본립도생(本立道生)

옛날, 중국 사람들은 학식이 뛰어나고, 인품이 훌륭한 사람들에게는 이름의 끝 자에 “자”(子)를 붙여 주어 존경과 예의를 표했습니다. 그래서 공자, 맹자, 노자, 묵자, 한비자 같은 이름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특히, 중국 사람들은 공자를 매우 존경했습니다. 그가 죽고나서 그를 대신해서 유학을 이끌어줄 리더를 뽑게 되었는데, 그때 제일 먼저 거론된 사람이 공자의 제자였던 “유자”(有子)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유자가 남긴 말 중에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말이 <본립도생(本立道生)>이라는 말입니다. 원문의 말은 “군자무본(君子務本)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이라는 말입니다. “군자는 기본에 힘을 쓰고, 기본이 서게 되면, 길은 저절로 생겨난다”라는 뜻입니다.

January 12

편안(Comfort)과 평안(Peace)

“조오지 타켓”(George William Target)이 쓴 <창>(The Window)이라는 단편소설 속에는 중병에 시달리는 두 명의 환자들이 등장합니다. 어느 시골 작은 병실에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시한부 남자와 중증 허리 디스크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년배의 남성이 함께 입원해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심각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폐암 환자는 폐에 자꾸 물이 차서 숨쉬기가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오래 누워있지 못하고 자주 일어나서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곤 했습니다. 또, 디스크 환자도 조금만 움직이려고 해도 칼 끝으로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고통이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고개를 조금도 돌리지 못하고 병실의 천정만 바라보며 하루 종일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죽음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January 7

다시 새롭게

2024년도 새해가 밝았습니다. 시간에 새해가 어디 있고, 헌 해가 어디 있겠습니까? 시간은 언제나 똑같이 새롭고 소중합니다. 인생은 괘종시계처럼 몇 바퀴 돌면서 이미 경험했던 시간을 다시 되풀이 할 수 있는 여정이 아닙니다. 인생 시계는 원형이 아니라 일직선입니다. 한번 지나가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아직 종착역이 보이지는 않지만 계속 달음박질치다가 탈진해서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상태가 되면 멈추어 선 그 자리가 결국에는 인생의 끝입니다. 인생은 일회적인 긴 직선 레이스입니다. 매 시간, 매 분, 매 순간이 처음 경험하는 소중한 시간들입니다.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작은 분량의 시간이라고 해서 마치 없어도 되는 양, 가볍게 떼어내 버릴 수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의술이 좋아졌다고 해도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명(命)이 있습니다.

December 26

Belli Casus Veritas Prima (전쟁의 첫번째 희생자는 진실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겉 모습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화려한 옷차림이나 번지르르한 외모 그리고 현란한 말 솜씨로 모든 것을 가늠하려고 합니다. 또, 학벌이나 사회적 지위 그리고 가문이나 인맥으로 어떤 사람의 가치와 무게를 판단하려고 합니다. 물론, 관계 중심적인 세상에서 이런 요인들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외적인 것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태도는 지극히 어리석은 짓입니다. 정말 사람을 판단할 때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삶의 모습”입니다. 주변 사람들의 말이나 평가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재해석 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됨됨이는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삶의 모습에서 맺어지는 열매가 반드시 판가름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마다 풍겨 나오는 삶의 품격과 향기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맺은 삶의 열매 속에서 풍겨 나오는 결과물들입니다. 나무의 정체는 잎사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열매로 판단합니다. 사람도 겉모습이 아니라, 삶의 모습으로 그 사람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December 15

Fuctu non foliis arborem aestima (잎이 아니라 열매로 그 나무를 평가하라)

사람들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겉 모습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화려한 옷차림이나 번지르르한 외모 그리고 현란한 말 솜씨로 모든 것을 가늠하려고 합니다. 또, 학벌이나 사회적 지위 그리고 가문이나 인맥으로 어떤 사람의 가치와 무게를 판단하려고 합니다. 물론, 관계 중심적인 세상에서 이런 요인들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외적인 것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태도는 지극히 어리석은 짓입니다. 정말 사람을 판단할 때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삶의 모습”입니다. 주변 사람들의 말이나 평가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재해석 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됨됨이는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삶의 모습에서 맺어지는 열매가 반드시 판가름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마다 풍겨 나오는 삶의 품격과 향기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맺은 삶의 열매 속에서 풍겨 나오는 결과물들입니다. 나무의 정체는 잎사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열매로 판단합니다. 사람도 겉모습이 아니라, 삶의 모습으로 그 사람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December 11

De Nihilo Nihilum (무無에서는 아무 것도 생겨나지 않는다)

대강절(Advent)이 시작되었습니다. 대강절은 성탄절이 되기 4주 전부터 시작해서 성탄절 이브까지 지켜지는 절기입니다. 이 대강절부터 “교회력”(Church Calendar)이 시작됩니다. 교회의 모든 절기가 시작되는 출발점입니다. 대강절(待降節)이라는 말은 “기다릴 대”, “내릴 강” 그리고 “마디 절”자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이 땅에 강림하신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절기”라는 뜻입니다. 성탄절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맞이하려면 먼저 이 대강절을 잘 지켜야 합니다. 자기 비움과 성찰의 마음으로 잘 준비된 대강절을 보내야만 아기 예수님 탄생의 기쁨과 감동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대강절을 말 그대로 “대강 대강” 보내는 사람은 절대로 성탄의 참 의미를 깨달을 수 없을 것입니다.

December 4

Imi Subsellii Viri (가장 낮은 의자에 앉는 자)

이 격언은 경멸과 조소의 의미가 담긴 말입니다. 높은 자리일수록 앉는 의자의 쿠션이 푹신푹신하고 안락합니다. 등받이도 높고 두텁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높은 분들의 자리는 앉기만 해도 잠이 저절로 쏟아질 정도로 편안하고 좋습니다. 그리고 그 밑의 말석으로 내려 갈수록 의자의 재질이나 품질이 점점 떨어집니다. “가장 낮은 의자에 앉는 자”(Imi Subsellii Viri)라는 말은 지체 높은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나눌 때 맨 끝자락에 준비된 자리를 일컫는 말입니다. 보통 이 자리에는 식사의 흥을 돋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초대된 어릿광대나 기술자들, 폭삭 망한 귀족 가문의 사람들, 그리고 심지어는 모욕을 줄 작정으로 초대를 한 천민이 된 관료들에게 배정이 되었습니다. 물론 의자는 쿠션이 전혀 없는 딱딱한 나무 의자였고, 등받이도 없었습니다. 잘못 엉덩이를 움직였다가는 굴러 떨어지기 십상인 부실한 의자였습니다. 이 자리에 앉는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치욕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고대 로마의 시인이었던 “데키무스 유베날리스”(Decimus Iunius Iuvenalis)는 특정한 사람을 불러 이런 자리에 앉히는 것은 치욕스러운 가혹 행위라고 꼬집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높은 상석에 앉아 권위있게 음식을 먹던 사람을 “가장 낮은 자리로” 보내서 음식을 먹게 하고, 대화하게 만드는 것은 당시의 최고 권력자가 밑에 있는 신하들을 굴종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자주 사용하던 통치술이었습니다.

November 27

Si beatus es, deo gratia age! (그대가 행복하다면, 하나님께 감사하시오!)

사람은 누구나 익숙해지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당연하게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질병입니다. 처음에는 감동하고 고마워하던 것도 몇 번 반복되면 무덤덤하게 받아들입니다. 처음 생일 선물을 받을 때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더라도 매년 반복되면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실수로 건너 뛰게 되면 오히려 섭섭해 하고 속상해 합니다. 밥을 세번 사면 고마워합니다. 그러나 네 번째로 밥을 사는 것을 잊고 그냥 건너 뛰게 되면, “왜 오늘은 밥을 안 사냐?”고 질책하듯 말합니다. 주일마다 교회를 가기 전에 교통편이 없는 이웃에게 차량 봉사를 해 주려고 조금 먼 길이지만 돌아서 그의 집을 둘러 차에 태워 함께 교회로 갔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급한 일이 있어서 양해를 구하고 그를 태우러 가지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차 하나 가지고 더럽게 유세를 떤다”고 여기저기에 악담을 퍼뜨립니다. 사람은 같은 일을 세번 만 반복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그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은혜”라고 생각했던 것을 “권리”로 “당연시”하게 됩니다. 매사를 당연시 하게 되면 처음에 가졌던 기쁨과 감동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November 20

Mala Ultra Adsunt (불행은 초대받지 않아도 온다)

인생을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그 동안 살아오면서 “불행”에 대해 배운 몇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불행은 어느 날 갑자기 순식간에 들이 닥친다는 것입니다. 불행을 미리 예견하고 대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불행이 아닐 것입니다. 불행은 언제나 갑자기 쳐들어와서 뒤통수를 강타합니다. 둘째, 불행은 떼거리로 몰려 다닙니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불행은 단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발로 몰아 닥칩니다. 한번 불행이 시작되면 결코 그것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셋째, 불행은 언제나 순식간에 몰려왔다가 갈 때는 아주 천천히 야금야금 빠져나갑니다.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은 “불행은 말을 타고 왔다가, 갈 때는 걸어서 사라진다”(Misfortune comes on horseback and disappears on foot)고 말을 했습니다. 불행은 인생을 망가뜨리는 주범입니다. 불행이 쌓이게 되면 그 인생은 엉망진창이 되고 맙니다. 원죄(Original Sin)가 지배하는 세상의 대표적인 특징을 한 단어로 정리하라면, 그것은 “불행”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불행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불행을 손쉽게 털고 일어설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축복받은 사람일 것입니다.

November 11

Timidi Mater Non Flet (겁쟁이의 어머니는 울지 않는다)

이스라엘 정규군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대원들과의 전투가 날마다 격해지고 있습니다. 서로 간의 피해가 상당합니다. 매일 매스컴에서 달라진 현지 사정 소식을 전하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하마스의 매복 공습으로 인해 사망한 이스라엘 지상군들의 소식이 보도 되기도 하고, 반대로 이스라엘 군의 대규모 미사일 공격으로 죽거나 부상당한 가자(Gaza) 지구의 불쌍한 노약자들과 어린아이들 소식이 매일 단골 메뉴로 전해집니다.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 좀처럼 구분하기 힘든 보도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한번은 아들들을 전쟁터로 떠내 보내야만 하는 양쪽 진영의 슬픈 어머니들의 모습이 차례로 방송되어 가슴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한쪽에서는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품에 안겨 “꼭 살아 돌아오라”고 울부짖었고, 또 다른 한 쪽에서는 “반드시 원수들을 물리치라”고 호통을 치는 굳은 표정의 어머니를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이 전쟁의 방향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들의 마음은 충분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November 6

Mens Sana in Corpore Sano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생각)

생각은 품는 그대로 몸 밖으로 나옵니다. 어두운 생각을 품으면 어두운 것이 나오고, 밝은 생각을 품으면 밝은 것이 나옵니다. 몸이 겉 사람이라면, 생각은 속 사람입니다. 겉 사람이 건강 하려면 먼저 속 사람이 건강해야 하고, 속 사람이 올곧아야 겉사람도 반듯할 수 있습니다. 마약, 도박, 섹스 그리고 탐욕에 찌든 사람이 헌신하고 희생하는 이타적인 사람이 될 수 없고, 질투와 미움에 사로 잡힌 사람이 남을 축복하고 세워주는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속에 가시를 담고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그 가시를 드러내게 되어 있고, 반대로 탐스러운 생명력을 그 안에 가지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달콤한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예전에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 총각으로 지내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친구들은 삽십세를 넘겼고, 이미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만 유독 혼자였습니다. 얼굴도 잘 생기고, 키도 훤칠하고, 성격도 좋았고, 영어도 잘하는 흠잡을 데 없는 매력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에 맞는 여자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October 30

Lingua Amicus (말로만 친구)

대화를 할 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인 것 같은데, 막상 행동으로 옮겨야 할 순간이 되면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술을 마시며 취기가 오를 때는 금방 간(肝)이라도 빼어 줄 것처럼 호들갑을 떨다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하거나 위기상황이 오게되면 뒤돌아서서 주판알을 튕기며 손익을 계산하다가 모르쇠로 일관하는 친구들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친구도 아닙니다. 그냥 얍삽한 인간들일 뿐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는 말이 나온 것 같습니다. 불가(佛家)에서 사용하는 말이지만, 그 뜻을 곱씹어 보면 많은 깨달음을 주는 말입니다. “무엇을 줄 때는 보상심리를 가지고 다시 받을 생각으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특히, 친한 친구 사이일수록 더욱 더 주고받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칫 친구와 재물을 모두 다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책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나 종교개혁시대의 에라스뮈스가 쓴 “아다지아”(Adagia)에는 친구 간의 우정(Philia)에 대한 특징이 언급되어 있는데, 우정의 기본 전제 조건은 순수함과 진실함 그리고 불변성 임을 강조합니다.

October 23

Talpa Coecior (두더지 보다 눈이 어둡다)

옛 사람들은 두더지가 눈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두더지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땅 속에서 살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두더지는 땅 속에 사는 나비의 유충, 지렁이, 민달팽이, 풍뎅이 그리고 지네 같은 것들을 먹으면서 살기 때문에 땅 밖으로 나올 특별한 이유가 없습니다. 어쩌다 잡히는 두더지들을 보면 참 생긴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주둥이는 길쭉하게 튀어나왔고, 콧구멍이 두개 크게 뚫려 있습니다.

October 16

Credo Quia Absurdum (나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

한 농부가 언덕 너머에 있는 밭을 일구기 위해 큰 황소를 끌고 재를 넘고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유독 아침부터 찌는듯한 무더위가 시작되었습니다. 바람 한 점 없었습니다. 황소도 더운 날씨에 짜증이 났는지 농땡이를 피우며 좀처럼 앞으로 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농부는 비 오듯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황소의 고삐를 바투쥐고 짜증스럽게 당기면서 언덕을 넘고 있었습니다. 하늘에서는 새들이 그 모습을 비웃듯이 농부의 머리 위를 맴돌고 있었습니다. 농부는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조금만 합리적인 분이시라면, 저렇게 작은 새들에게 날개를 달아 주실 것이 아니라, 이렇게 큰 황소에게 날개를 달아 주셨을 텐데!” 농부는 볼멘소리로 푸념을 했습니다. 황소가 하늘에서 가볍게 날개를 젓고, 자기는 밑에서 황소의 코에 코뚜레한 줄만 당기면서 끌고가면 아주 편안하게 이 언덕을 넘을 수 있었을 텐데, 하나님이 자기보다 생각이 짧으신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October 6

Leporis Vitam (토끼처럼 살다)

“아다지아”(Adagia)에 나오는 격언들은 언뜻 제목만 들어서는 오해하기 십상인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관점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그 말이 상용되던 시대의 상황은 어떠했는지, 그 당시의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을 고려하지 않으면 자칫 오해를 낳을 수 있는 격언들이 즐비합니다. 그 중의 하나가 “토끼처럼 산다”(To lives a hare’s life) 입니다. 이 말을 처음 접하게 되면, 토끼처럼 항상 긴장하면서 살라는 말인지, 토끼처럼 자식들을 많이 낳고 살라는 말인지, 아니면 자신의 약함을 알고 항상 대비하는 삶을 살라는 말인지 도통 그 뜻을 짐작하기가 어렵습니다.

September 29

Carpe Diem 2 (현재를 살아라)

인생(人生)이라는 모자이크(Mosaic)는 작은 하루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큰 그림입니다. 인생의 길이를 70년이라고 한다면, 25,570개의 하루가 모여서 만들어진 그림이고, 80년이라고 한다면, 29,220개의 하루들이 합쳐져서 완성된 그림입니다. 모자이크는 마치 퍼즐(Puzzle) 그림과 같아서 그림의 어느 한 조각이라도 비게 되면 결코 완성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멋진 그림이라 할지라도 미완성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인생의 모자이크가 단 한 순간이라도 백지화되거나 상실되지 않도록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인생은 다 지나고 나서 보면 참으로 짧고 빠른 것 같지만, 지나는 과정 속에서 보면 하루 하루가 길고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게 인생을 낭비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이라는 말처럼, 짧은 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습니다.

September 22

Ne Sutor Ultra Crepidam (구두장이는 구두만 생각하라)

알렉산더 대왕이 무척 아끼고 사랑했던 화가 ‘아펠레스’(Apelles of Kos)가 그린 그림을 보고 어느 구두장이가 구두의 모양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오른쪽 발이기 때문에 오른쪽 신발을 그려야 하는데, 왼쪽 신발 모양으로 그려졌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아펠레스는 구두장이의 눈썰미를 높이 평가하고 감사하면서 신발의 모양을 바꾸어 그렸습니다. 그러자 신이 난 구두장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팔, 다리 모양과 배치 구도가 약간 엉성하다고 주제넘은 지적을 했습니다. 그러자 아펠레스는 구두장이를 괘씸하게 생각했습니다. 구두에 관해서는 그가 전문가이니 그의 조언을 흔쾌히 받아들였지만, 미술 전문가인 자신 앞에서 다른 것도 아닌 자신이 골똘히 생각하며 그린 작품을 이러쿵저러쿵 주제넘게 평가하는 그의 태도가 못마땅했습니다. 아펠레스는 구두장이를 꾸짖었습니다. “구두장이는 구두만 생각하라”(The shoemaker should not judge above the sandal.) 한 마디로 자기 분수를 알라는 소리입니다.

September 16

Aurum Igni Probatum (불로써 확인된 황금)

캔자스에서 목회를 할 때 친하게 지내던 베트남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중학생 시절에 부모님을 따라 공산화된 조국을 떠나 다낭(Da Nang)에서 홍콩으로 갔다가 입국 거부를 당해 어쩔 수 없이 캐나다로 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입국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망망대해 바다를 조그만 보트에 몸을 싣고 3,000Km가 넘게 항해를 했다고 합니다. 푸르다 못해 시커먼 깊은 바다 위를 나무조각 같은 작은 돛단 배를 타고 8개월 동안 떠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그 조그만 배에 백여명 가까운 사람들이 아등바등 올라탔습니다. 소위 “보트 피플”(Boat People)입니다. 집채 만한 상어들의 공격을 여러 번 받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배 위에 있던 각목이나 쇠꼬챙이로 상어들을 찌르고 때리면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습니다. 10미터가 넘는 큰 파도가 작은 배를 때릴 때는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바다 위로 튀어 나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했습니다.

September 8

Disce ut Semper Victurus, Vive ut Vras Moriturus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라)

“죽을 때 후회하는 25가지”(오츠 슈이치 지음, 21세기 북스)라는 책이 있습니다. 1,000명의 죽음을 지켜 본 호스피스 전문의 “오츠 슈이치”가 상상을 초월하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말기암 환자들을 돌보면서 그들이 후회 속에서 고백하는 마지막 순간의 말들을 모아 정리한 책입니다. 호스피스 전문의가 환자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이미 남겨진 시간이 일 주일 내지는 이 주일로 확정되어 있기 때문에 치료를 위한 부담감(負擔感)이나 생(生)에 대한 새로운 의지를 불어넣어 주어야 할 책임감도 없습니다. 단지, 죽음을 앞 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고통 완화 전문 의사”의 역할만 감당하면 그 뿐입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임종의 시간이 가까이 올수록 기력의 탈진을 보충하기 위해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수면으로 보냅니다. 몸은 점점 약해지고 간신히 남아 있는 것은 지난 삶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 뿐입니다. 너덜너덜해진 마음 만이 남아서 가뜩이나 힘든 시간을 더욱 더 우울하게 만듭니다.

September 3

Necessitas Magistra (필요가 스승이다)

세계적인 기업 “애플사”(Apple Inc.)의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2005년 스텐포드(Stanford) 대학의 졸업식 축사에서 너무도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전진하라”,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는 의미로 자주 사용되는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당부의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말은 2008년에 인도의 논픽션 작가인 “라쉬미 반살”(Rashmi Bansal)에 의해서 출간된 책 제목으로 다시 한번 뜨겁게 세상에 회자되었는데, 인도에서만 30만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 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은 그들이 처음 사용한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원래 1974년 10월에 출판된 “지구 백과”(The Whole Earth Catalog)의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 글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청소년 시절부터 이 “지구 백과”를 늘 탐독했고, ‘우리 시대의 바이블’이라고 부를 만큼 좋아했다고 합니다. 특히,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을 너무 좋아해서 글로 적어서 자기 책상 앞에 붙여 놓았다고 합니다. 한 문장의 글이 한 사람의 인생을 전혀 다른 인생으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August 27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Veterem Injuriam Ferendo, Invitas Novam (모욕을 묵묵히 참아 넘기면 새로운 모욕이 찾아온다)

격언들 중에는 서로 부딪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종종 어떤 쪽을 택해야 할지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모욕을 묵묵히 참아 넘기면, 새로운 모욕이 찾아온다”(By bearing with an ancient injury you invite a new one)는 격언입니다. 한국 속담에서는 “참는 자가 복이 있다”고 반대로 말하기도 합니다. “침묵이 금이다”(Silence is golden)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에라스뮈스”의 아다지아(Adagia)에는 “침묵은 수치다”(Turpe silere)라는 말도 있습니다. 또, “말을 걸어오면 반드시 말하고, 부르면 오라”(Ad consilium ne accesseris, antequam voceris)는 격언도 있습니다. 입을 다물어야 할지 아니면 열어야 할지 헷갈릴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유교 문화권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삭이는 것을 겸양지덕(謙讓之德)으로 여겨 왔습니다. 사소한 모욕이나 손해는 관대하게 웃어넘기는 것을 그 사람의 됨됨이나 그릇의 크기로 간주해 왔습니다.

August 18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MQu Est Veritas? (진리가 무엇인가?)

어느 날 유대의 총독으로 다스리고 있던 로마 집정관 “빌라도”(Pontius Pilate) 앞에 한 유대인 청년이 붙잡혀 왔습니다. 그의 이름은 예수였고, 죄목은 “왕권 사칭”이었습니다.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잡혀온 이 청년은 아이러니하게도 종교적인 이유가 아닌, 정치적인 문제로 붙잡혀 온 것입니다. 처음부터 다른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사건입니다. 이 청년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이 많았기 때문에 종교적인 이유로 그를 처벌하게 되면, 큰 소동이 일어날 것을 염려한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로마인들의 손을 빌어 정치적인 문제로 이 청년을 제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당시, 로마는 정치적인 문제 외에는 다른 피지배층 민족들의 일에 개입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의 입장에서는 로마 총독이 이 예수를 반드시 자기들 대신 처벌해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붙여진 죄목이 바로 “그가 우리의 왕이 되려고 했다”는 황당한 주장이었습니다.

August 13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Malum Vas Non Frangitur (쓰지않는 그릇은 깨질 일이 없다)

건너 마을 최부자의 집에 엄청나게 큰 화재가 일어났습니다. 99칸이나 되는 거대한 집이 화마(火魔)에 휩싸이자 모여든 마을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타까워했습니다. 멀리서 그 화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거지 부자(父子)가 있었습니다. 거지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우리는 얼마나 감사하냐? 우리에게는 불에 탈 집이 없으니 근심 걱정이 없구나! 다, 이 아버지 잘 둔 덕분인 줄 알아라.” 그러자 멍청한 아들이 말을 받았습니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우리는 집 자체가 없으니 불 날 염려도 없고 너무 좋네요.” 그 아버지에 그 아들입니다. 본래부터 없으면 분실(紛失)이나 망실(亡失)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상실의 아픔”은 있는 사람에게나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August 7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Qui Vitat Molam, Vitat Farinam (맷돌을 돌려야 밀가루를 얻을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늘 듣고 자랐던 속담 중에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No pain No gain)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대충 의미는 “잘 참고 죽어라 공부해야 좋은 대학 갈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당시에는 공부하느라고 지긋지긋 힘들어서 주리를 틀던 학생들에게 이 보다 더 좋은 통치 이데올로기는 없었던 듯합니다. 왜 그렇게 비슷한 말도 많았는지! 교탁에 서시는 선생님들은 표현도 다양하게 이 뜻을 학생들에게 전하셨습니다. “땀이 없으면, 달콤함도 없다”(No sweat, No sweet), “십자가 없이는 왕관도 없다”(No cross, No crown)같은 말들을 입에 달고 사셨습니다. 혹시, 문교부(文敎部)에서 발행하는 학생들 지도 교안에 등재되어 있었던 말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July 31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Mortuus Per Somnum, Vacabis Curis (죽는 꿈을 꾸면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

중세 사람들은 족제비를 보면 불길한 징조라고 생각했습니다. 꿈 속에 나타나는 것은 물론이고, 이른 아침에 길을 가다가 족제비를 보게 되면 하루 일과를 접어 버릴 정도로 족제비를 터부시 했습니다. 우리 선조들도 ‘까마귀’나 ‘검은 고양이’를 재수없고 불길한 동물로 여겼습니다. 꿈 속에서 뱀이나 개구리, 거미 그리고 개 같은 동물을 보게 되면, 어떤 불행한 일이 닥칠 상서롭지 못한 전조(前兆)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대로, 돼지나 호랑이, 잉어 그리고 심지어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용(龍)을 꿈 속에서 보게 되면, 대박 날 징조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요즘에는 강아지나 뱀을 가족 같은 애완동물로 기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만약 그분들의 꿈 속에 자신들이 애지중지하게 기르는 그 애완동물이 등장하게 되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소위,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들이 과학적인 근거도 없는 관념에 사로잡혀서 애꿎은 짐승을 신성시하거나 반대로 푸대접하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July 21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Exiguum Malum, Ingens Bonum (불행은 엄청난 행운이다)

고대 로마사람들은 식사를 시작할 때 제일 먼저 달걀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으로 유독 샐러드를 좋아했던 로마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다채로운 채소들을 잘 섞어서 즐겨 먹었습니다. 그리고 난 후, 화덕에서 갓 구워 낸 빵인 “포카치아”(Focaccia)를 먹었습니다. 훗날, 이 빵은 피짜(pizza)의 전신이 되었습니다. 저녁에는 포카치아 대신에 여러 종류의 고기 음식을 먹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매 식사때마다 마지막 후식으로는 어김없이 사과를 한 개씩 먹었다고 합니다. 분명한 식사법이 로마 사람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만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유럽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규칙적인 식습관과 식사예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저녁 시간에는 온 가족이 다 함께 모여서 공동식사를 했는데, 보통 두 세 시간 이상을 함께 보냈습니다. 이 전통은 오늘 날에도 그대로 이어져 왔습니다. 긴 시간 동안 온 가족이 함께 식사를 나누면서 하루의 일과를 말하기도 하고, 고민거리나 앞으로의 계획을 편안하게 이야기합니다. 아무리 바쁘고, 기분이 언짢아도 가능하면 함께 나누는 저녁 식사를 건너 뛰지 않는다고 합니다.

July 17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Cognatio Movet Invidiam (가까울수록 시기심도 크다)

엘리자베스라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아담한 체구에 귀여운 얼굴을 가진 예쁜 처녀였지만, 몸이 조금 통통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단짝 친구 루시와 제니는 유난히 마른 체형이었는데, 유독 자기만 푸짐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늘 하나님께 자신이 날씬해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서원기도나 작정기도를 드리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말을 듣고 여러 번 시도해 보았지만, 몸매는 그대로였고, 심지어 날마다 입맛이 더 좋아졌습니다. 그녀는 마침내 하나님께 항의성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그렇게 내 살을 빼 주실 마음이 없으시다면, 좋습니다. 대신에 제 친구 루시와 제니를 저보다 뚱뚱하게 만들어주세요. 그건 하실 수 있겠지요?”

July 10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Spem Pretio Emere (희망을 돈으로 사다)

“머니 머니 해도 머니(Money)가 최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위,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전형적인 말버릇입니다. 또,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자주 눈에 뛰는 광고판이 있는데, “Money Talks”(돈이면 다된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홍보 판입니다. 모두 황금만능주의의 오만한 얼굴을 보여주는 문구들입니다. 대부분 변론이나 변호업과 연관된 일들 아니면 선착순을 요구하는 일들과 관련이 있는 광고물들입니다. 어쩌면 이 시대의 정신을 여실히 보여주는 말들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돈이면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별로 없습니다. 흑을 백으로 바꿀 수도 있고, 진실과 거짓도 순식간에 바꿀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개나 고양이들도 자기 주인들이 돈으로 맛있는 사료나 간식들을 사주는 것을 보면서 돈이 얼마나 귀한 줄을 안다고 합니다. 참으로 돈의 힘과 권세에 대해서는 아무도 그 능력을 부인할 수 없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July 3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Bis Pueri Senes (노인이 두번째로 맞는 유년)

인생은 두 번의 유년시절을 겪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어렸을 때 한 번, 그리고 다시 노년이 되어서 거동이 불편하게 될 때, 또 한 번의 유년시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유년기의 특징은 무력(無力)과 의존(依存)입니다. 홀로서기에는 너무도 약해서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입니다. 부모의 보호 아래 살게 되는 첫번째 유년 시절에는 독립을 갈망하면서 살게 됩니다. 부모처럼 성인(成人)이 되면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꿈과 기대를 가지고 멋진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 나아갑니다. 사춘기를 지나게 되면서 비로소 성년이 됩니다. 이제 자신의 의지대로 인생을 펼쳐 볼 수 있는 기회가 열립니다. 독립이 가능하고 모든 것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게 됩니다. 더 이상 부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습니다.

June 26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Desidero Ergo Sum (나는 욕망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사람은 끊임없이 욕망을 갖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깊은 우물을 가슴에 한 복판에 품고 살아갑니다. 욕망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에 대해서는 함부로 싸잡아서 결론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검의 양날처럼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을 것입니다. 욕망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잠을 잡니다. 또, 좋은 배우자를 찾아 사랑을 나누고 자식을 낳아 대를 잇습니다(식욕, 수면욕, 성욕). 게다가 물질에 대한 욕망이 있기에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하고, 세상을 발전시킵니다. 또 명예에 대한 욕망이 현재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더 노력할 수 있게 만드는 촉매제가 되기도 하고, 불의한 일에 대해서는 명예롭게 자존심을 가지고 선을 긋게 됩니다(물욕, 명예욕).

June 19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Gygis Annulus (귀게스의 반지)

대표했던 단편 작가 “루키아노스”(Lucianus)가 자신의 책 <진실한 이야기>에서 언급한 말입니다. 이 말은 원래 고대 철학자였던 플라톤(Plato)의 책 <국가>(Politeia)의 제2권과 제10권에 나오는 격언인데, 윤리적인 딜레마를 설명하면서 예로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만약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결과를 책임질 필요가 없다면, 과연 그래도 윤리적으로 행동할 것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입니다. 플라톤은 책 속에서 자신의 형인 “글라우콘”(Glaucon)의 입술을 빌어 전설로 내려오는 이 “귀게스의 반지”(Gyges’s Ring) 이야기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June 12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Minutula Pluvial Imbrem Parit (작은 물방울이 모여 소나기가 된다)

“티끌 모아 태산”, “먼지도 쌓이면 큰 산이 된다”, “실도랑 모여 대동강이 된다” 그리고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같은 속담에 익숙한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살갑게 다가오는 격언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와 같은 표현들이 어김없이 쓰여 왔다는 것이 참 흥미롭습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모이고 쌓이게 되면 나중에는 큰 결과를 얻게 됨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로마 문학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시인 “오비디우스”(Pūblius Ovidius Nāsō)도 “흑해에서 온 편지”(Epistulae ex Ponto)에서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Gutta cavat lapidem)는 말을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단 한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극히 작은 것들이 모이고 모여서 이루어진 결과물들입니다.

June 5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Barba Non Facit Philosophum (수염이 철학자를 만들지 않는다)

예로부터 수염은 어른의 상징이었습니다. 수염이 다 자랄 때쯤 되면 비로소 성인 남자로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자 아이들은 사춘기가 지나면 수염을 기를 것을 권장 받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수염은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코 밑에서 윗입술까지 양쪽으로 뻗은 콧수염(mustache), 귀 밑에서 턱까지 길게 늘어진 구레나룻 수염(whisker), 그리고 아래턱에 난 턱수염(beard)을 총체적으로 “수염”이라고 부릅니다. 재미있는 것은 세계 각 나라마다 그리고 각 시대별로 기를 것을 강조하는 수염의 부위가 달랐다는 점입니다. 어떤 나라는 콧수염과 턱수염을 동시에 강조하는 반면에 또 다른 어떤 나라는 턱수염 만을 아주 중요시 여겼습니다. 인도 같은 나라에서는 윤기 있게 뻗은 콧수염을 기를 것을 장려했고, 튀르키예 같은 이슬람 권의 국가에서는 반드시 턱수염을 기를 것을 강조했습니다.

May 30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Minutula Pluvial Imbrem Parit (작은 물방울이 모여 소나기가 된다)

라틴어 격언집 “아다지아”(Ada gia)를 보게 되면 가장 많이 사용되는 소재(素材) 중의 하나가 시간(Time)입니다. 사람이 시간의 무대 위에서 살아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간은 절대적인 존재로서 역사 위에 굴림 합니다. 시간이 드리운 운명의 그늘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Pūblius Ovidius Nāsō)는 자신의 대작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에서 “모든 것을 잡아 먹는 시간”(Tempus edax rerum / Time, the devourer of all things)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다 묻혀버리고 맙니다. 아름다움, 젊음, 부(富), 명예 그리고 권력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모든 것들이 다 사그라지고 맙니다. “태양이 빛을 잃으면 역사가 되고, 달이 기울면 신화가 된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전부 다 기억 속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May 22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Carpe Diem (현재를 잡아라)

언제부터인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해진 경구입니다. 카페(Cafe)나 도서관 그리고 심지어는 나이트 클럽의 벽에도 당당하게 새겨져 있는 글귀입니다. 우리는 자주 이 말을 “오늘을 즐기라”(Enjoy the day)라는 낭만적인 의미로 받아들이지만, 사실은 “오늘을 놓치지 말고 열심히 살라”(Seize the day)는 경건한 뜻을 가진 말입니다. 이 말은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Flaccus)의 “송가”(Odes) 제 1권 11절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원문에는 “가급적이면 내일이라는 말은 최소한만 믿고, 현재를 잡으라”(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로 되어 있습니다.

May 15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Spero Spera (나는 희망한다, 너도 희망하라)

“숨을 쉬는 한 희망은 있다”라는 말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실제 문장의 뜻은 “나는 희망을 갖는다. 너도 희망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숨을 쉬다”라는 “Spirare”(breathe)와 “희망하다”라는 “Sperare”(hope)가 혼동을 일으켜서 뜻이 와전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숨을 쉬고 살기 위해서는 희망이 있어야 하고, 반대로 희망이 있어야 숨을 쉴 수 있다는 점에서는 두 단어가 서로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운동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현대인들은 바쁜 일정 속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따로 운동 시간을 갖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겸연쩍게 대답하는 말이 “숨쉬기 운동”입니다. 숨쉬기 운동은 특별한 노력 없이도 저절로 일어나는 호흡 현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멋쩍은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May 6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Que Sera Sera (될 일은 결국 된다)

우리는 이 말을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성의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이해해 왔습니다. “케 세라 세라”는 그 어원이 스페인어나 이탈리아어에서 왔다고 생각을 하지만, 실제로는 16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말이라고 합니다. “Whatever will be, will be”(무엇이 되든지 될 것은 된다)라는 영어를 문자 그대로 이탈리아어나 스페인어로 번역하다 보니 라틴어로 사용을 할 때는 문법에도 전혀 맞지 않는 짝퉁 라틴어가 되고 만 격언입니다.

May 1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Veritatis Simplex est Oratio (진실의 언어는 단순하다)

“사실(fact)과 진실(truth)은 다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은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나 현재에 있는 일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진실”은 한마디로 “진짜 사실”, 달리 말하면, “거짓이 빠진 사실”을 말합니다. 사실과 진실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우선, 사실은 겉으로 드러난 것에만 초점을 맞춥니다.아무리 속마음이나 의도가 달랐다고 하더라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유관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드러난 실제적인 것만이 “사실”의 주 내용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뛰어넘어 마음 속에 있는 진짜 의도까지 다룹니다. 진짜 의도와는 달리 겉으로 들어난 사실은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과 “진실”은 다를 수 있습니다.

Apr 21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Aegroto Dum Anima Est Spes Est" (삶이 있는 한 희망이 있다)

로마의 철학자이며 정치가인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의 말입니다. 살다 보면 엄청나게 힘든 일들이 끊임없이 몰려옵니다.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너무 힘이 들 때는 삶의 줄을 놓아버리고 싶은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생명을 포기하지 않으면 언제나 희망이 있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 다시 되돌아보게 되면,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생명의 줄을 끝까지 붙잡는 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희망만 포기하지 않으면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셔서 누구에게나 희망을 주십니다. 단지, 그것을 알지 못할 뿐입니다. 희망을 완전히 놓은 모습이 바로 “죽음”(Death)입니다. 생명은 희망을 먹고 살아갑니다. 희망을 붙잡고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언제든지 다시 기회가 찾아오지만, 희망을 접어버린 사람에게는 두 번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Apr 14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Figulus Figulo Invidet, Faber Fabro" (옹기장이는 옹기장이를 시샘하고, 대장장이는 대장장이를 시샘한다)

“과부 마음은 홀아비가 안다”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같은 업종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아끼고 이해한다고 생각합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아픔이 있는 사람들일수록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동일한 물건을 취급하는 상인들은 오히려 서로에게 치명적인 천적(天敵)이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상대방이 자신을 앞지르고 먼저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항상 그를 견제하고 그의 약점이나 결함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선의의 경쟁이나 건강한 협력관계라는 말은 도덕군자들의 책에나 나올 뿐입니다. 어떻게 하든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밀어내거나 그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서 권모술수를 부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한 짓을 도모합니다. 어떤 때는 사람의 심성이 근본적으로 악하다고 간파했던 중국의 고대 철학자 “순자”(荀子)의 주장이 옳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Apr 7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Multa Cadunt Inter Calicem, Supremaque Labra" (컵과 입술 사이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데키무스 라베리우스”(Decimus Laberius)라는 로마의 마임 작가는 “컵과 입술 사이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Many things fall between the cup and the lip)라는 격언을 남겼습니다. 어느 충직한 하인이 주인의 포도원에서 포도나무를 잘 가꾸었습니다. 그는 많은 소출을 냈고 극상품의 포도주를 짜냈습니다. 흡족했습니다. 그는 주인에게 포도주를 진상하기 전에 먼저 한 모금을 맛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신선한 포도주를 컵에 담아 입술로 가져가려는 순간 갑자기 다른 하인의 다급한 절규가 들려왔습니다. 포도원에 멧돼지 한 마리가 들어와서 포도나무들을 짓밟고 있다는 외침이었습니다. 하인은 곧장 멧돼지를 포도원 밖으로 내어 쫓으려고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달려드는 멧돼지에게 받혀 죽고 말았습니다. 그토록 기대했던 포도주를 한 잔도 마시지 못하고 삶을 접은 것입니다.

Apr 1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Tantali Poenae" (탄탈로스의 형벌)

“없어서 받게 되는 고통”과 “있는데 누리지 못하는 고통”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참기 힘들까요? 궁극적으로는 둘 다 빈곤에 시달린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수중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매일 시각적으로 바라보고 확인해야 하는 후자의 경우가 더 고통스럽지 않을까요? “탄탈로스의 형벌”(The punishments of Tantalus)이라는 말은 이미 많은 것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데도 정작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입니다.

Mar 24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Acta non Verba" (말이 아닌 행동)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권모술수와 거짓말을 일삼고 권력이 있는 사람에게 붙어서 선취권을 쥐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일단 논쟁이 일어나고 싸움으로 번지게 되면 언제나 결론은 개싸움이 되고 맙니다. 모두가 상처와 아픔으로 도색된 더러운 세상을 맞이하게 됩니다. 특히 정치와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는 그 정도와 파장이 더욱 심합니다. 과학이나 이성으로 입증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각 종 말들이 난무하게 되고, 비난이 또 다른 비난을 낳으면서 예상치도 못한 최악의 비극으로 끝이 날 수도 있습니다. 조선 영조 때의 학자 김천택은 자신의 시조집 “청구영언”에서 이런 말을 기록했습니다.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말은 결국 행동을 위한 전주곡입니다. 말만 있고 행동이 없다면 그것은 공염불에 불과할 것입니다. “행동하는 신앙”(Faith in Action)이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진실한 것이라면 행동으로 입증하면 될 일입니다.

Mar 21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Satius est Initiis mederi quam Fini" (끝보다 처음을 고치는 것이 낫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죽은 뒤에 약을 찾는다는 뜻입니다. 인생은 타이밍이 가장 중요한데 모든 일이 끝난 뒤에 비로소 해결책을 찾으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는 말로도 응용해서 많이 사용합니다.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는 그의 격언집 “아디지아”(Adagia)에서 이 말을 이렇게 풀어 쓰고 있습니다. “끝보다 처음을 고치는 것이 낫다”(It is better to heal the beginning than the ends). 영국 속담에서는 “제 때의 바늘 한 땀이 아홉 땀을 덜어낸다”고 말하기도 하고, “부상당한 뒤 방패를 찾은 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는 격언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위중한 병이라도 제때 치료를 받으면 고칠 수 있지만, 이미 병이 깊어진 뒤에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고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집을 다 지은 뒤에 물을 떠 온다”는 말로 적절한 시간과 시기를 놓치지 말 것을 권면합니다.

Mar 14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Nomen Omen" (이름이 운명이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깁니다. 아니, 이름만 남깁니다. 아무리 대단한 학식과 권세와 재물을 가졌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일단 죽으면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소유할 수 없습니다. 남는 것은 오직 이름 뿐입니다. 생전에 아무리 대단하고 요란한 삶을 살았어도 죽은 후에 좋은 이름을 남기지 못한다면, 결코 잘 산 인생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름은 곧 기억입니다. 아름다운 기억은 그의 뒤를 이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도전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되고,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름은 곧 영향력이기도 합니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虎死留皮人死留名)라는 속담은 곧 영향력을 의미합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라는 말처럼, 사람은 반드시 자신이 살던 주변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Feb 24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Repetita Iuvant" (반복은 유용하다)

사람은 언제나 반복을 통해 배웁니다. 반복없이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태아가 어머니의 몸 속에 있을 때는 숨을 쉬지 않습니다. 태반과 탯줄을 통해서 어머니로부터 산소를 공급 받습니다. 어머니가 산소를 들이마시면 태아도 산소를 들이마시고, 어머니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면 태아도 이산화탄소를 밖으로 발산합니다. 어머니와 한 숨이 되어 함께 호흡을 합니다. 그러다가 27주쯤 되면 태아의 횡격막과 흉부 근육이 발달하면서 어머니가 숨을 들이마시고 배출할 때마다 어머니의 숨을 흉내내기 시작합니다.

Feb 20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Festina Lente” (천천히 서두르라)

세상에는 서로 다른 뜻을 가진 말들이 함께 쓰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슬픈 미소, 침묵의 절규, 텅빈 충만, 비폭력의 폭력 같은 서로 모순된 말들이 절묘한 결합을 이룹니다. “Festina Lente”도 “천천히”(Lente)와 “서두르라”(Festina)는 서로 부딪치는 두 단어가 함께 섞여 사용된 말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학자였던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는 수많은 라틴어 문구 중에서 이 말을 좋아해서 자신의 격언집 “아다지아”(Adagia)에 우선적으로 선별해서 집어넣었습니다. 이 격언은 원래 로마의 첫번째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Augustus)의 인생 좌우명이었습니다.

Feb 10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Mandrabuli More Res Succedit" (일이 만드라불루스 꼴로 흘러간다)

그리스에 만드라불루스(Mandrabulus)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엄청난 보물이 묻혀 있는 광산을 발견하고 너무 기뻐서 헤라 신전에 황금 양을 바쳤습니다. 그는 엄청난 보물을 보면서 해마다 이 정도의 제물은 헤라 신에게 쉽게 바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만드라불루스는 씀씀이가 헤펐습니다. 이미 많은 재물이 보물창고에서 시나브로 빠져나갔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그 다음 해에는 은으로 제물을 드리고, 그 다음 해에는 동으로 제물을 드렸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보물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기쁨과 감동이 식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나중에는 매년 드리던 제물을 야마리없이 건너 띄게 되었습니다.

Feb 03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 "Letum non omnía fínít" (죽음이 모든 것을 끝내지 않는다)

지금도 가끔 눈을 감고 있으면 신학생 시절에 라틴어를 배우던 기억이 납니다. 대부분의 고전어들이 그렇지만, 라틴어 역시 복잡한 어미 변화 때문에 매 수업시간마다 진땀을 흘렸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틴어는 딱딱 부러지는 듯한 짧은 경구들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심오한 뜻을 담고 있으면서도 거추장스러운 설명없이 마음 속에 쏙쏙 심겨지는 진리들이 신선했습니다. 당시 라틴어 수업을 가르쳐 주신 분이 가톨릭 교회의 신부님이셨는데 전혀 빈틈이 보이지 않는 아주 엄한 분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