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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8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Disce ut Semper Victurus, Vive ut Vras Moriturus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라)

“죽을 때 후회하는 25가지”(오츠 슈이치 지음, 21세기 북스)라는 책이 있습니다. 1,000명의 죽음을 지켜 본 호스피스 전문의 “오츠 슈이치”가 상상을 초월하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말기암 환자들을 돌보면서 그들이 후회 속에서 고백하는 마지막 순간의 말들을 모아 정리한 책입니다. 호스피스 전문의가 환자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이미 남겨진 시간이 일 주일 내지는 이 주일로 확정되어 있기 때문에 치료를 위한 부담감(負擔感)이나 생(生)에 대한 새로운 의지를 불어넣어 주어야 할 책임감도 없습니다. 단지, 죽음을 앞 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고통 완화 전문 의사”의 역할만 감당하면 그 뿐입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임종의 시간이 가까이 올수록 기력의 탈진을 보충하기 위해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수면으로 보냅니다. 몸은 점점 약해지고 간신히 남아 있는 것은 지난 삶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 뿐입니다. 너덜너덜해진 마음 만이 남아서 가뜩이나 힘든 시간을 더욱 더 우울하게 만듭니다.

육신의 고통은 마약성 진통제와 초강력 수면제로 어떻게 달래 볼 수 있겠지만,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고통은 특별한 처방전을 찾기가 힘듭니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시간이 꺼져버리면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진다는 허탈감과 공포가 그나마 남아 있는 시간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는 환자들의 특징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그것은 바로 “후회”입니다. 힘이 있고, 능력이 있어서 뭔가를 할 수 있었을 때 차일피일 미루거나 망설이다가 놓쳐버린 것들에 대한 미련과 후회가 그들의 삶을 지배 합니다. 오츠 슈이치 박사는 어김없이 환자들 모두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그들에게 말로 라도 지나간 삶의 갈증을 해갈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가장 후회하시나요?” 이 질문에 환자들은 자신들의 시간을 반추해보며 입을 열어 아쉬움을 털어내는 기회를 갖습니다. 물론 인간은 본질적으로 후회를 먹고사는 동물이지만, 이들에게는 이 순간이 이 땅에서의 마지막 후회의 고백이기에 더욱 애절할 것입니다.

오츠 슈이치 박사는 많은 환자들의 고백 중에서 그들이 풀지 못하고 후회로 마감한 것들 중에 공통분모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25가지로 정리해 이 책을 출간했습니다. 모든 후회가 다 일리가 있고, 격하게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몇 가지를 선별해서 소개해보면 이런 내용들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할 것을, 진짜하고 싶었던 일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친절을 베풀었더라면,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더라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기억에 남는 연애를 했더라면, 죽도록 일만 하지 말 것을, 가고 싶은 곳을 여행했더라면,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것을, 고향을 방문했더라면, 맛있는 음식을 좀 더 많이 먹어 볼 것을, 내 장례식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볼 것을, 건강을 지키려고 노력했더라면, 좀 더 일찍 담배와 술을 끊었더라면, 가족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가졌더라면… 어쩌면 이 모든 후회들은 그들 만의 것이 아니라, 머지않아 우리들의 후회가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일깨워줍니다.

오는 데는 순서가 있어도 가는 데는 순서가 없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죽음 앞에서 후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죽음이 이렇게 소리 없이 빨리 다가올 줄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결코 후회라는 말이 생기지 않게 살았을 것입니다. 고려 말에 “우탁”(禹倬)이 지은 시조 “탄로가”(歎老歌)가 생각납니다.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터니 /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시간과 운명 앞에서 용기 있게 맞서보지만, 어쩔 수 없이 무너지고 마는 인생의 허무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허탈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사람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항상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또, 내일을 너무 신임하며 살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백 살까지 산다고 여기며 일하라. 내일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기도하라”라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은 미래를 대하는 지혜로운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에라스뮈스(Desiderius Erasmus)의 “아다지아”(Adagia)에도 비슷한 의미의 격언이 등장 합니다. “Disce ut semper victurus, vive ut cras moriturus”(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라.) 많은 노인들이 “이제 살만큼 살았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내가 얼마나 더 산다고 고생하면서 이것을 배워야 하느냐?”고 반문을 합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과학도 발달하고, 의술도 엄청나게 진보했기 때문에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함부로 속단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정말 “살 만큼 살았는지” 아니면 “고통스러울 만큼 더 오래 살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오리무중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또, 반대로 천년 만년 살 것처럼 호령을 하지만, 오늘이 이 땅에서의 마지막 시간이 될지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살 것처럼 끊임없이 배우고, 내일 죽을 것처럼, 후회없이 사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더더욱 중요한 가르침인 것 같습니다.

어느 노인의 회고담입니다. 그는 젊었을 때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덕분에 주변의 사람들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았습니다. 65세가 되었을 때에는 당당하게 박수를 받으면서 은퇴할 수도 있었습니다. 세 명의 자녀들도 그의 수고와 헌신 덕분에 사회에서 일찍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은퇴를 하면서 그는 자신의 인생에 만족했습니다. 이제는 할 만큼 다 했고 충분히 쉴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30년의 세월이 흘러 95번째 생일을 맞이하던 날, 그는 후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65세에 은퇴할 때, 이제는 인생의 황혼이라고 스스로 생각을 접은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으로 산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30년이나 더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는 분명히 65세까지는 스스로에게 자랑스럽고 떳떳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의 30년은 너무도 맥 빠진 인생이었습니다. 인생의 삼분의 일을 허망하게 보낸 것입니다.

돌이켜 보니, 은퇴를 하던 그때부터 무엇인가를 다시 시작 했어야 합니다. 아직 인생의 삼부 능선이 남았다는 생각을 가졌어야 했습니다. 이제 나이가 95세가 되었는데 아직도 정신이 또렷또렷하고 움직이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남들은 다 살았다고 말들 하지만, 앞으로도 10년 이상은 더 살 것 같습니다. 잘못하면 20년을 더 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고령의 나이에 다시 긴장해서 남은 시간을 열심히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증손자들이 보는 영어책을 다시 붙들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너무 무겁다고 지레 겁먹고 내려 놓았던 아령을 다시 들었습니다. 매일 공원을 한 바퀴 씩 돌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10년이 지난 후, 105세의 나이에 나이가 되었을 될 자신의 인생 앞에서 두 번 다시 후회의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고, 내일 죽을 것처럼 열심히 살아야 하겠습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