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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3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Necessitas Magistra (필요가 스승이다)

세계적인 기업 “애플사”(Apple Inc.)의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2005년 스텐포드(Stanford) 대학의 졸업식 축사에서 너무도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전진하라”,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는 의미로 자주 사용되는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당부의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말은 2008년에 인도의 논픽션 작가인 “라쉬미 반살”(Rashmi Bansal)에 의해서 출간된 책 제목으로 다시 한번 뜨겁게 세상에 회자되었는데, 인도에서만 30만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 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은 그들이 처음 사용한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원래 1974년 10월에 출판된 “지구 백과”(The Whole Earth Catalog)의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 글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청소년 시절부터 이 “지구 백과”를 늘 탐독했고, ‘우리 시대의 바이블’이라고 부를 만큼 좋아했다고 합니다. 특히,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을 너무 좋아해서 글로 적어서 자기 책상 앞에 붙여 놓았다고 합니다. 한 문장의 글이 한 사람의 인생을 전혀 다른 인생으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어리석을 정도로 항상 배고픔 속에 있으라”는 말은 결국 만족하지 말고 계속 추구하는 삶을 살라는 조언입니다. 늘 “필요”를 찾는 자세를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필요”를 느낄 때에만,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You can lead a horse to water, but you can’t make it drink)라는 속담이 있는데, 아무리 강제로 말을 물가로 끌고 간다고 해도, 정작 말 스스로가 물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 어떤 수고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스스로 만족한 사람은 결코 아무 것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현실을 유지하려고만 할 것입니다. 오직 필요를 느끼는 사람만이 부족한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도전하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필요가 스승이라”(Necessitas Magistra)는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제일 급하고 간절한 사람이 언제든지 적극적으로 서둘러 자신이 목표로 하는 일을 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필요는 멍청한 사람도 똑똑하게 만들고, 게으른 사람도 부지런하게 만듭니다. 경솔한 사람을 진중하게 만들고, 우쭐하고 잘난 척하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듭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아무리 손사래를 치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시키지 않아도 밤을 낮 삼아 일하게 됩니다. 그래서 필요를 모든 창조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필요”와 관련된 많은 격언들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옛 속담에는 “시장이 반찬이라”는 격언이 있었고, 영국에서는 “배고픔은 최고의 양념이다”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또, “배고픔은 돌담도 뚫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 속담의 “사흘 굶으면 남의 집 담을 넘는다”라는 말과 의미가 상통합니다. 스페인 속담에도 “배고픔 앞에서 맛없는 빵은 없다”라는 말이 있고, “배고픈 개가 지저분한 푸딩을 먹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필요 앞에서는 법률도 없다”라는 속담을 자주 사용하기도 했는데, 모두 “필요”를 강조하는 말들입니다. 사람은 필요하면 다 합니다.

저의 큰 아들은 어렸을 때, 과묵하고 까칠한 성격이어서 과연 장가를 갈 수 있을지 걱정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 염려를 입증이라도 하듯이 아들은 유치원에서부터 여자아이들과는 말을 섞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때가 되니까, 친절하고 부드러워져서 좋은 여자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저거 내 아들 맞나?” 싶을 정도로 달콤하고 감미로운 남자로 변신을 했습니다. 필요가 사람을 바꾼 것입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젊은 어머니들이 자기 아이가 매번 신발을 바꾸어 신는다고 걱정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오른쪽 신발을 왼쪽에 신고, 왼쪽 신발을 오른쪽에 신는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불편할텐데 계속 그렇게 신는 것을 보면, 아이가 혹시 자기 아빠를 닮아서 선천적으로 머리가 아둔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고 필요하면 시키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알아서 똑바로 신발을 신는 날이 옵니다. 사람은 필요를 느끼게 되면 간절해지고, 간절해지면 반드시 변화를 추구하게 됩니다.

“필요”를 신앙의 말로 표현하면 “간절함”(Eagerness)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병고침을 받기 위해 오는 사람들의 “간절함”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간절함을 “믿음”으로 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을 고쳐 주신 후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마 9:22; 막5:34; 막 10:52; 눅 7:50; 눅 8:48; 눅 17:19; 눅 18: 42). 열 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을 고쳐 주시고,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을 축복해 주시고, 여리고의 맹인 바디매오의 눈을 고쳐 주신 후에 그리고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에서 예수님께 나병을 고침 받은 병자를 향해서도 같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이 외에도 예수님은 환자들을 고쳐 주신 후에 어김없이 똑같은 뉘앙스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어찌 보면, 병을 고쳐 주신 분은 예수님 혼자이셨습니다. 병자들이 자신의 병 나음을 위해서 어떤 특별한 행동을 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 만이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간 것 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의 간절함을 믿음으로 여기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는 말은 “네 간절함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소리입니다.

제가 몸이 너무 많이 아팠던 적이 있었습니다. 치료비와 의료 보험도 없었고, 병원에 갈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예전에도 수술을 열 번 정도 받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막막했습니다. 유일하게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이 알고 있던 미국 목사님께 기도를 부탁드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저의 갑작스러운 기도 부탁에 백인 목사님은 안타까워하면서 저의 두 어깨를 꽉 잡고 오랫동안 간절히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의 품이 예수님의 품처럼 따뜻했습니다. 성도들이 왜 목사에게 기도를 부탁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날 이후로 일 주일 만에 완전히 병에서 회복되었습니다. 미국에서 경험한 최고의 기적이었습니다. 그 다음 주에 목사님을 찾아가서 “당신의 기도 덕분에 내가 회복되었습니다”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그토록 간절히 기도를 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갸우뚱하며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며 부끄러워했습니다. 착하고 솔직한 것은 좋은데, 믿음이 쥐뿔도 없었습니다. 너무도 썰렁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중보기도를 해주었는데도 주님의 은혜가 있었다는 것이 놀라왔습니다.

그 순간 깨달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선언하셨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회복의 은혜는 기도를 해주는 목사의 뛰어난 능력이나 특별한 은사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환자의 간절한 열망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통해서 만 가능합니다. 주님은 언제나 “간절함”을 우리의 믿음으로 계수하십니다. 앞으로, 성도들이 기도를 부탁한다면, 누구보다도 간절한 마음으로 열성을 다해 기도를 해드려야겠다는 깊은 다짐을 했습니다. 우리들의 간절함이 언제나 주님을 감동시킵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