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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2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Ne Sutor Ultra Crepidam (구두장이는 구두만 생각하라)

알렉산더 대왕이 무척 아끼고 사랑했던 화가 ‘아펠레스’(Apelles of Kos)가 그린 그림을 보고 어느 구두장이가 구두의 모양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오른쪽 발이기 때문에 오른쪽 신발을 그려야 하는데, 왼쪽 신발 모양으로 그려졌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아펠레스는 구두장이의 눈썰미를 높이 평가하고 감사하면서 신발의 모양을 바꾸어 그렸습니다. 그러자 신이 난 구두장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팔, 다리 모양과 배치 구도가 약간 엉성하다고 주제넘은 지적을 했습니다. 그러자 아펠레스는 구두장이를 괘씸하게 생각했습니다. 구두에 관해서는 그가 전문가이니 그의 조언을 흔쾌히 받아들였지만, 미술 전문가인 자신 앞에서 다른 것도 아닌 자신이 골똘히 생각하며 그린 작품을 이러쿵저러쿵 주제넘게 평가하는 그의 태도가 못마땅했습니다. 아펠레스는 구두장이를 꾸짖었습니다. “구두장이는 구두만 생각하라”(The shoemaker should not judge above the sandal.) 한 마디로 자기 분수를 알라는 소리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만 최선을 다하고, 도(道)를 넘지 말라는 따끔한 정문일침을 날린 것입니다.

요즘에는 여러 방면에 능통한 “팔방미인”(八方美人)들이 판을 치는 시대입니다. “지덕체”(智德體) 뿐만 아니라, “인의예지진선미”(仁義禮智眞善美)까지 모두 갖춘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외모가 뛰어나면, 지식이나 건강이 부족하고, 지식이 뛰어난 사람은 외모나 건강이 뒷받침을 해주지 못했습니다. 개중에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이 있기도 했지만, 그런 사람은 안타깝게도 명줄이 짧았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인생이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어 위로를 받았습니다. 뛰어난 미색을 가졌는데, 성품이 안 좋아서 시집을 못 가는 처녀가 있기도 했고, 집 안이 가난해서 배움의 기회를 충분히 갖지는 못했지만, 성실하고 우직해서 크게 성공한 총각들도 주변에 꽤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모두 옛말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들이 활개를 치는 시대입니다. 공부도 잘하고, 예능도 잘 합니다. 인성도 좋고, 게다가 외모까지 뛰어난 조각미인 입니다. 이제는 한 가지만 잘해서는 그 어느 곳에도 명함을 내밀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등장으로 세상은 새로운 변혁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에만 집중하던 독단적인 기업이나 기술보다는 여러가지 분야의 학문과 기술들이 서로 융합해서 새로운 가치나 제품들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전혀 연관이 없다고 생각했던 인문학과 아이티(IT) 기술이 서로 만나 융합되면서 기상천외한 세상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제2의 산업혁명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제는 손에 쥔 전화기로 수백 가지, 수천 가지의 업무들을 한 자리에서 해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누가 이름을 붙여주었는지 모르겠지만, “스마트폰”(Smartphone)이라는 이름은 정말 잘 지은 이름입니다. 스마트폰은 정말 스마트하게 모든 일들을 잘 처리해냅니다. 이제는 다소 폐쇄적이고, 전근대적이었던 교회의 문화도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 그리고 심방이 목회의 핵심 가치를 이루던 시대는 지나가고 일반사회 못지 않은 개방과 개혁이 교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두터운 가운을 입고 강단에서 설교하시는 목사님들은 이제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케케묵은 고루한 교리에 연연하는 교회도 없고, 꽉 막힌 전통에 사로잡힌 성도들도 거의 대부분 사라지고 없습니다.

며칠 전에 식사 초대를 받아 한 성도님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미 전역에 흩어져 살던 가족들과 친지들 그리고 절친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잔치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거실에는 이미 먼저와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서먹해서 인지 텔레비전만 시청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애틀랜타를 방문해서 공연했던 “포레스텔라”(Forestella)라는 그룹의 청년 가수들이 열창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이 탄성을 낼 만큼 노래를 잘 불렀습니다. 얼굴도 잘 생겼고, 영어도, 스페니쉬도 일품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최고의 학부를 나온 사람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노래만 잘 부르면 훌륭한 가수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제는 모든 분야를 다 만족시켜야 좋은 가수가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정규적으로 사회를 위해서 베푸는 선행까지 갖추어야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고 오랫동안 인기를 누릴 수 있다고 합니다. 참 어려운 세상입니다. 특별히 내 놓을 것이 없는 범부(凡夫)들은 결코 검증될 수 없는 푸념을 늘어 놓으며 자포자기 하게 됩니다. “이번 생애는 망쳤다. 다음 생애에 두고 보자!”

그런데 이상하게도 세상이 복합적(compositive)이고, 다기능적(multifunctional)이 되어 감에도 불구하고, 한 평생 외길을 걸어온 사람들의 인생이 날이 갈수록 빛이 납니다.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인데, 그들은 오히려 ‘장인정신’(Craftsman’s Spirit)이라는 이름으로 환하게 빛을 비춥니다. 어쩌면 고지식하고 답답할 정도로 꽉 막힌 사람들인데 그들에게는 언제나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거룩함까지 풍겨 나옵니다. 그들은 세상이 어찌 돌아가던 상관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냥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하는 것이 좋은 사람들입니다. 어떤 대단한 철학이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냥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갑니다. 놀라운 것은 이런 분들이 세상의 각 분야에 모두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분들은 말합니다. “세상이 복잡한 이유는 자신의 본분 이외에 다른 것들을 자꾸 넘보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정치를 하고, 과학자는 과학을 하고, 목사는 목회를 하고, 연예인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동의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주면 그 뿐입니다. 도(道)를 넘을 때 항상 문제가 일어납니다.

예전에 로스앤젤레스에 있던 한인교회를 섬기면서 경험했던 일입니다. 그 교회에 새로 부임해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새벽예배를 마치고 혼자 교회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휴스턴에 계시는 원로 목사님 한 분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제 이전에 계셨던 은퇴 목사님의 전화번호를 물어보시려고 한 것입니다. 최대한 상냥하게 말씀을 해드렸는데, 그 목사님은 전화번호를 받아 적으신 후에 저에게 “새로 온 담임목사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렇다고 말씀드리자, 목사님은 여러가지 격려의 말씀과 목회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한참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 목사님이 저에 대한 정보를 이미 많이 알고 계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난 번에 김 목사가 쓴 시집과 책을 잘 읽어 보았고, 매주 여러 신문에 기고하는 글도 잘 읽고 있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글들이 신선하고 재미있다는 말씀을 해 주셔서 칭찬의 소리인 줄만 알았는데, 대화의 막바지에 황당한 말씀을 해 주셔서 약간 당황했습니다. “글 잘 쓰는 목사 놈들 치고 목회 잘 하는 놈을 본 적이 없다. 한 길만 가라!” 연세드신 어른이 오락가락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그 뿐이겠지만, 오랫동안 머리속에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그 목사님의 일갈(一喝)이 오늘도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합니다. “내가 혹시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