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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6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Aurum Igni Probatum (불로써 확인된 황금)

캔자스에서 목회를 할 때 친하게 지내던 베트남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중학생 시절에 부모님을 따라 공산화된 조국을 떠나 다낭(Da Nang)에서 홍콩으로 갔다가 입국 거부를 당해 어쩔 수 없이 캐나다로 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입국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망망대해 바다를 조그만 보트에 몸을 싣고 3,000Km가 넘게 항해를 했다고 합니다. 푸르다 못해 시커먼 깊은 바다 위를 나무조각 같은 작은 돛단 배를 타고 8개월 동안 떠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그 조그만 배에 백여명 가까운 사람들이 아등바등 올라탔습니다. 소위 “보트 피플”(Boat People)입니다. 집채 만한 상어들의 공격을 여러 번 받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배 위에 있던 각목이나 쇠꼬챙이로 상어들을 찌르고 때리면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습니다. 10미터가 넘는 큰 파도가 작은 배를 때릴 때는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바다 위로 튀어 나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행방불명이 되었고, 익사자들도 많이 발생했습니다. 이글거리는 뜨거운 태양 때문에 탈진해서 죽는 사람들도 있었고, 배고픔과 질병 그리고 식수 부족으로 함께 배를 탔던 사람들 중에 절반 이상이 유명을 달리 했습니다.

배 위에서 죽은 수많은 사람들을 바다 속 깊이 수장시키면서 조국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곱씹었다고 합니다. 미국에 들어와서 오랜 기간 동안 방황하며 지냈는데 좋은 목사님을 만나 마음을 다잡고 공부하게 되었는데, 그 덕분에 자신도 목사의 길을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것을 감사하면서 하루하루를 그 나라를 위해서 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목사님이 아무렇지도 않게 편하게 이야기를 해서 마치 한편의 설교를 듣는 것 같았지만, 오랫동안 머리 속에 잔상으로 남아서 되새김질이 되었습니다. 그는 항상 자신을 소개할 때에 헬라어 “도키미온”(δοκίμιον) 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습니다. “시험과 시련을 통해 참으로 증명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광석에서 순수한 금이나 은을 뽑아낼 때, 불순물이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 계속 반복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스개 소리로, 뜨거운 불 속에 14번 들어 갔다 나오면 14금(14K)이라고 말하고, 18번 들어갔다가 나오면 18금(18K)라고 하는데, “순금”은 “수도 없이 불 속에 들어 갔다가 나온 금”이라고 말합니다. “순금”은 주로 24금(24K)라고 하는데, 불순물이 다 타서 없어진 순전한 상태를 말합니다.

형용사인 도키모스(δόκιμος)는 “시험에 합격한” 또는 “시련을 통과한”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목사님은 지옥 같았던 불구덩이 항해 속에서 인간적인 모든 욕망은 다 타버리고 오직 주님이 사용하실 수 있도록 순수한 마음만 남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쓰실 수 있도록 “시련을 통과했다”는 의미로 이 말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그는 언제나 열정적이고 진실했습니다.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의 격언집인 “아다지아”(Adagia)에도 비슷한 의미의 표현이 나옵니다. “불로써 확인된 황금”(Aurum igni probatum)입니다. 이 말은 보통 “어려운 시련을 겪으면서도 변치 않고 신실함을 지킨 순금 같은 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했다고 합니다. 교활하고 사악한 것이 하나도 없는 정금 같은 친구를 말합니다. 로마의 정치가이며 철학자인 “키케로”(Marcus Cicero)는 자신의 책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Letter to Friends) 제 9권에서 자신의 친구 중의 한 사람에게 이 말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만약 “불로써 확인된 황금”같은 친구가 주변에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떤 환경 속에 있던지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함석헌(咸錫憲) 선생의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가 생각납니다.

"만리길 나서는 날 / 처자를 내맡기며 / 맘 놓고 갈만한 사람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탔던 배 꺼지는 시간 /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불의의 사형장에서 /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 “저 하나 있으니”하며 /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어느 덧 미국에서 30년 가까이 살게 되면서 가끔 “윤리의 기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고, 말을 하고, 행동을 할 때는 그것의 방향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준이 있습니다. “무엇이 선하고, 악한 것인가?”(What is good or bad?),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What is right or wrong?) 그리고 “무엇이 내게 이득이 되는가?”(What is profitable?)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기준 중의 하나를 자신의 행동을 위한 이정표로 삼습니다. 한국 본토에서 사는 사람들은 주로 “선과 악” 그리고 “옳고, 그름”을 기준으로 윤리의 잣대를 삼는 반면에 이민의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한인들은 윤리의 기준을 “무엇이 내게 이득이 되는가?”에 맞춰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쉽게 등돌리고, 타협하고, 왜곡하며 살아갑니다. 아무리 옳고, 선한 것이라도 자신에게 손해가 되면 절대로 짊어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내게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양심의 가책 없이 쉽게 일을 저지르고,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고, 모르쇠로 일관해 버립니다. 자칫, 이민의 땅에서는 “배반의 윤리”가 홀로 존재하는 냉혹한 대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주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운은 좋은 쪽으로 기운다”(Ad felicem inflectere parietem) 라는 격언입니다. 얍삽한 사람들은 이 말을 대단한 처세술로 생각합니다. 기울어가는 배 위에 있다면, 배를 바로 잡기 보다는 반대쪽으로 옮겨가는 대만 혈안이 됩니다. 더 나아가서 침몰하게 될 것 같으면 빨리 배를 옮겨 탑니다. 더 힘을 가진 것 같고, 성공할 것 같은 쪽에 붙는 것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면하고 생존할 수 있는 필수적인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 속에는 “불로 확인된 황금”같은 사람이 결단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약성경 베드로전서 1장 7절의 말씀은 우리가 왜 믿음 없는 세상에서 “불로 단련된 정금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이렇게 가르쳐줍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연단을 받아서 순수하게 되면, 불로 연단하여도 마침내는 없어지고마는 금보다 더 귀한 것이 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이 칭찬과 영광과 명예를 차지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