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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7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Qui Vitat Molam, Vitat Farinam (맷돌을 돌려야 밀가루를 얻을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늘 듣고 자랐던 속담 중에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No pain No gain)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대충 의미는 “잘 참고 죽어라 공부해야 좋은 대학 갈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당시에는 공부하느라고 지긋지긋 힘들어서 주리를 틀던 학생들에게 이 보다 더 좋은 통치 이데올로기는 없었던 듯합니다. 왜 그렇게 비슷한 말도 많았는지! 교탁에 서시는 선생님들은 표현도 다양하게 이 뜻을 학생들에게 전하셨습니다. “땀이 없으면, 달콤함도 없다”(No sweat, No sweet), “십자가 없이는 왕관도 없다”(No cross, No crown)같은 말들을 입에 달고 사셨습니다. 혹시, 문교부(文敎部)에서 발행하는 학생들 지도 교안에 등재되어 있었던 말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에라스뮈스(Desiderius Erasmus)의 격언집 “아다지아”(Adagia)에도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Qui vitat Molam, vitat Farinam(맷돌을 돌리지 않으면, 밀가루를 얻을 수 없다). 굳이, 영어로 표현하면 No mill, no meal입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의 시대에는 비슷한 격언들이 유독 많았습니다. “방앗간의 소음이 귀에 거슬린다면, 먹을 생각은 하지도 말라”, “달걀을 먹고 싶으면, 닭의 꼬꼬댁 소리를 견뎌야 한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마라” 그리고 “땅을 갈지 않는다면, 어떤 곡물도 손에 넣을 수 없을 것이다” 또, 라틴 격언에 “찰흙도 잘 이겨야, 그릇을 빗을 수 있다” 같은 말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옛 선조들도 자주 사용했던 말 중에 “고진감래”(苦盡甘來)나 “음덕양보”(陰德陽報) 같은 격언들이 있었는데 결국 같은 소리입니다. 거두려면 뿌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영국의 문호가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는 자신의 권력에만 집착하는 어리석은 군주 “헨리 4세”를 조소하면서 자신의 희곡 “헨리 4세”(King Henry IV)에서 너무도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Heavy is The Head That Wears The Crown). 선왕이었던 “리처드 2세”를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헨리 4세는 그의 왕위에 대해서 정통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웨일즈와 스코틀랜드 영주들의 반란을 끊임없이 물리치면서 왕의 자리 때문에 생기는 무거운 책임과 부담감을 그렇게 스스로 다독거렸습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결국, 그는 왕의 자리가 주는 혹독한 대가를 자신의 죽음으로 지불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무슨 말을 했건 상관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오직 왕관만 바라보며 그 자리를 탐했다는 것입니다. 그 무게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모클레스의 칼(Sword of Damocles)”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원전 4세기 전반 시칠리아, 시라쿠사 지역의 군주였던 “디오니시우스 2세”(Dionysius II)의 측근이었던 “다모클레스”는 디오니시우스의 권력을 언제나 동경하고 부러워했습니다. 어느 날, 디오니시오스의 호화로운 연회에 참석했던 다모클레스는 술김에 마음 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왕에게 하게 됩니다. “왕이시여, 얼마나 행복하십니까? 당신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신 분입니다. 저는 단 한 순간이라도 좋으니 당신의 부와 쾌락을 누려보고 싶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디오니시오스 2세도 한껏 취기가 올라 다모클레스에게 객쩍은 제안을 했습니다. “그래, 그러면 나와 자리를 바꾸어 앉게나. 그리고 오늘 하루는 자네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누려보게.”

다모클레스는 왕의 제안을 받아들여 감미로운 음악과 향기로운 술 그리고 아리따운 여인들 품에 안겨 흥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치 천국에 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너무 좋아서 고개를 제치고 하늘을 보며 크게 웃다가 갑자기 천정에 달린 날카로운 칼 한 자루를 보게 되었습니다. 서슬 퍼런 날카로운 칼이 단 한 가닥의 말총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자기 머리 위에 떠 있는 것이었습니다. 모골이 송연 했습니다. 실수로라도 말 꼬리 털이 끊어진다면 저 무거운 칼이 자기 머리 위에 떨어져서 꼼짝없이 죽고 말 것입니다. 갑자기 그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습니다. 술이 확 깨면서 더 이상 아무 것도 즐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디오니시우스 2세가 다모클레스에게 물었습니다. “갑자기 왜 그러나? 무슨 일이 있는가?”

그러자 다모클레스가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저 천정 위에 저렇게 서슬 퍼런 검이 달려 있어서 언제 떨어질 줄 모르는데, 어떻게 이 술 자리를 즐길 수 있겠습니까?” 왕이 하얗게 질려버린 다모클레스에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그게 뭐가 그렇게 두렵나? 나는 매 순간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런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다네. 그 자리에 앉으려면 그 정도는 마땅히 지불해야 한다네.”

고대 로마의 철학자이며 정치가였던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는 로마의 특권을 누리는 귀족들에게 이 일화를 자주 사용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영향력 있는 큰 인물이 되고 싶어합니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누리는 밝은 면에 매료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반드시 치뤄야 할 무거운 대가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에 600년된 큰 거목이 있었습니다. 나무가 굵어지고 수령이 깊어지면서 언제부터인지 온갖 새들이 다 모여들었습니다. 해마다 수많은 철새들이 거쳐가는 정거장이 되었습니다. 어떤 때는 나무가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온갖 새들이 빼곡하게 모여 앉았습니다. 그 나무는 멀리서 보면 화려하고 웅장했는데, 정작 가까이 가서 보면 온갖 새들이 남겨 놓은 대변과 오물들로 볼 품이 없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비 바람을 견뎌내느라 부러진 가지들도 많았고, 여기저기 껍질이 벗겨지고, 구멍도 숭숭 뚫렸습니다. 사람들은 그 큰 거목을 자기 마을의 자랑이라고 극찬했지만, 나무에게 남겨진 것은 상처 뿐인 영광이었습니다. 물론, 큰 나무가 된다는 것은 밝은 면도 있겠지만, 책임과 부담이 항상 따르는 일입니다. 온갖 새들이 날아 들어서 쉬지 않고 배설하는 분뇨를 다 몸으로 받아내야 하고, 갑자기 불어 닥친 태풍이나 낙뢰도 고스란히 떠맡아야 합니다.

큰 인물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일거수일투족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될 것입니다. 위험부담도 많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고, 보람과 긍지를 주는 일입니다. 옛 속담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한번 뿐인 인생, 시시하고 하찮게 살기 보다는 최선을 다해 멋지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목회 현장에서 30년이 넘게 섬기면서 큰 몫을 감당하는 큰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세상이 알아주든 말든 개의치 않고 열심히 수고하고 씨를 뿌리는 분들입니다. 그분들의 헌신과 섬김 때문에 주님의 교회가 계속 빛을 발할 수 있었습니다. 코비드 19 이후로 모든 주님의 교회는 그런 일꾼들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들 중의 한 분이 되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