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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18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MQu Est Veritas? (진리가 무엇인가?)

어느 날 유대의 총독으로 다스리고 있던 로마 집정관 “빌라도”(Pontius Pilate) 앞에 한 유대인 청년이 붙잡혀 왔습니다. 그의 이름은 예수였고, 죄목은 “왕권 사칭”이었습니다.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잡혀온 이 청년은 아이러니하게도 종교적인 이유가 아닌, 정치적인 문제로 붙잡혀 온 것입니다. 처음부터 다른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사건입니다. 이 청년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이 많았기 때문에 종교적인 이유로 그를 처벌하게 되면, 큰 소동이 일어날 것을 염려한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로마인들의 손을 빌어 정치적인 문제로 이 청년을 제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당시, 로마는 정치적인 문제 외에는 다른 피지배층 민족들의 일에 개입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의 입장에서는 로마 총독이 이 예수를 반드시 자기들 대신 처벌해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붙여진 죄목이 바로 “그가 우리의 왕이 되려고 했다”는 황당한 주장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자신 앞에 서 있는 이 청년 예수에게서 별다른 혁명가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던진 물음이 “네가 정말 왕이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이 청년 예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너의 말 대로 왕이지만, 이 땅에 속한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왕이다. 그리고 그 나라에 속한 자들만이 나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이 진리(truth)를 알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퉁명스럽게 말을 던졌습니다. “진리?”, “진리가 무엇이냐?”(요한 18: 37~38). 로마는 자신들이 정복하는 나라들마다 집정관들을 보내서 통치하도록 했습니다. 평화롭게 맡겨진 지역을 잘 다스리면 출세가 보장되지만, 반대로 민란이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게 되면 곧바로 로마로 소환되어 군복을 벗고, 군대와 정계를 떠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습니다. 그런데도 빌라도가 예수라는 청년 때문에 요동치고 있던 자기 관할의 문제를 알지 못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진리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해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요한 8: 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 사람은 본질적으로 진리를 따라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진리가 아닌 거짓된 길을 걷게 되면, 그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 불어넣으신 “생명의 본질”인 “하나님의 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벗어난 사람은 어떤 모양의 삶이든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진리(眞理)라는 단어는 참 진(眞)과 이치 리(理)라는 두 글자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바른 이치”, “바른 도리”가 바로 진리입니다.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진실합니다. 물론, 진리는 ‘시간과 공간을 떠나 영원히 변치 않는 항상 옳은 것’이고, 진실은 ‘시대와 공간의 맥락 속에서 옳은 것”이라는 약간의 개념적인 차이가 있지만, 진실은 언제나 진리를 추구합니다.

프린스턴 대학 명예철학 교수인 “해리 프랭크 퍼트”(Harry G. Frankfurt)가 지은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가짜(falsity)와 거짓(phony)”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합니다. 진짜와 가짜는 어쩌면 동전의 앞 뒷면입니다. 진실이나 거짓을 말하는 사람은 두 사람 모두 “진실”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진실한 사람은 자기가 보고, 듣고, 느낀 “진실” 만을 말합니다. 반대로, 가짜를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이득이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거짓말”을 합니다. 그는 가짜를 그럴듯하게 만들기 위해서 누구보다도 진실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가짜를 말하는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거짓말쟁이”라고 부릅니다. 거짓말쟁이는 진실을 알지만, 언제나 외면하고 왜곡합니다. 또, 거짓말쟁이처럼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이 있는데, 조금 거짓말의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개소리쟁이”입니다. 개소리쟁이는 진실이나 가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는 오직 자신의 욕심과 목적을 이루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진실을 알면서도 가짜를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이고, 진실에는 전혀 관심없이 자신의 욕심만을 이루기 위해서 개소리(bullshit)를 늘어놓는 사람을 “프랭크 퍼트” 교수는 “개소리쟁이”라고 불렀습니다. 거짓말쟁이는 자신의 거짓말을 진실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분명하고 또렷하게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나 개소리쟁이는 진실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또 전혀 관심도 없기 때문에 말이 흐릿하고 허풍과 과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헛소리, 허튼 소리, 그리고 아리송한 논리로 애매한 거짓말을 계속 합니다. 거짓말쟁이는 말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사실들을 조작하고 왜곡합니다. 돈으로 매수하고, 힘으로 협박하고, 여러가지 조건을 걸어 가짜를 만들어냅니다. 그래야 목적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소리쟁이는 진실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자신들의 목적만 이루기 위해서 어떤 짓도 다 합니다.

한 동안 “누가 예수를 십자가에 죽였는가?”(Who crucified Jesus?)라는 논제로 끊임없이 갑론을박을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종교지도자들과 그들에게 동조한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인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물으나 마나 당대 최고의 권력자였던 로마가 범인이라고 지목하기도 했습니다. 배신자 이스카리옷 유다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 씌우려고 하기도 했고, 다른 제자들 모두를 공범으로 묶으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또, 당시의 모든 사회적 구조와 체제가 예수를 십자가의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말하면서 모두에게 공평하게 면죄부를 주려는 시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은 진실과 진리를 눈감아버리고, 현실도피와 왜곡을 통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했던 썩은 지도자들과 구차하게라도 자신들을 삶을 구걸하려고 했던 수많은 “거짓말쟁이들”과 “개소리쟁이들”이 만들어낸 협주곡이 바로 십자가 처형(Crucifixion)을 낳은 것입니다. 진리와 진실을 외면하면 똑같은 일은 반복될 것입니다.

중세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의 의식이 깨이고 개화되면서 이제 더 이상 고대의 세계관과 신비적이고 주술적인 지식으로는 진리를 찾아 나서는 지성인들의 열정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좀 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학문이 필요했습니다. 그 대안으로 세워지기 시작한 것이 바로 “대학”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많은 대학이 유럽에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대학교마다 그 나름대로의 모토(motto)가 있었는데, “학문”(Scientia), “지혜”(Sapientia or Sophia), “빛”(Lux) 그리고 “진리”(Veritas)같은 단어였습니다. 훗날, 그 전통을 따라서 하버드 대학은 “진리”(Lux), 예일 대학은 “빛과 진리”(Lux et Veritas), 한국의 서울대학은 “진리는 나의 빛”(Veritas Lux Mea), 그리고 서강대학은 “진리에 복종하라”(Obedire Veritati) 같은 말들을 사용했습니다.

대학 뿐만 아니라, 어쩌면 이 시대의 우리 모두가 결코 놓쳐서는 안될 소중한 단어가 진리일 것입니다. 빌라도가 아무 생각없이 던졌던 허튼 소리 “진리가 무엇이냐?”(Qu est veritas?)는 말은 놀랍게도 우리가 말과 삶 속에서 늘 되새겨야 할 소중한 물음입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