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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13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Malum Vas Non Frangitur (쓰지않는 그릇은 깨질 일이 없다)

건너 마을 최부자의 집에 엄청나게 큰 화재가 일어났습니다. 99칸이나 되는 거대한 집이 화마(火魔)에 휩싸이자 모여든 마을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타까워했습니다. 멀리서 그 화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거지 부자(父子)가 있었습니다. 거지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우리는 얼마나 감사하냐? 우리에게는 불에 탈 집이 없으니 근심 걱정이 없구나! 다, 이 아버지 잘 둔 덕분인 줄 알아라.” 그러자 멍청한 아들이 말을 받았습니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우리는 집 자체가 없으니 불 날 염려도 없고 너무 좋네요.” 그 아버지에 그 아들입니다. 본래부터 없으면 분실(紛失)이나 망실(亡失)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상실의 아픔”은 있는 사람에게나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쓰지 않는 그릇은 깨어질 염려가 없습니다(Malum vas non frangitur). 정확하게 말하면 쓰지 않는 그릇은 없는 것과 똑같습니다. 너무 귀해서 사용하지 못하고 고이고이 모셔 놓은 것은 -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아무런 존재 가치가 없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용기(容器) 중에 빨간색 혹은 파란색 플라스틱 바가지가 있었습니다. 손잡이가 길쭉하게 달려 있는 것이 있었고, 탈바가지 마냥 둥글 넙적하게 생긴 바가지도 있었습니다. 시장의 작은 구멍가게나 동네 슈퍼마켓에서 쉽게 살 수 있었고, 교회나 사회 단체에서 무슨 행사를 하게 되면 어김없이 경품으로 등장하던 것이 바로 이 바가지였습니다. 심지어는, 길거리에서 기생충 약을 파는 장돌뱅이 돌팔이 약장수들도 이 바가지를 호객용품으로 사용했고,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던 아주머니들도 서로 돌려가면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또, 웬만한 약수터에 가면 어김없이 동아줄에 손잡이가 묶여 이미 받아 놓은 물 위에 동동 떠 있기도 했습니다.

그게 무슨 대단한 방탄 철모도 아닌데, 동네 개구장이 아이들은 놀 때마다 이 바가지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놀았습니다. 값이 저렴해서 부부 싸움이 잦던 시절에는 남편이 술을 마시고 주정을 부리면서 제일 먼저 박살내는 품목이 이 바가지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당히 서민적입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분노를 가장 효과적으로 잘 표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바가지는 물통에 담겨 물바가지로 사용되기도 했고, 쌀독에서 쌀 바가지, 화장실에서는 똥바가지, 양조장에서는 언제든지 술 항아리에 담긴 막걸리를 퍼 담을 수 있는 술 바가지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안에 어떤 내용물이 담기느냐”에 따라서 이 바가지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 바가지는 대한민국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다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많이 애용되고, 가장 많이 파손되는 비품이었습니다. 반면에, 너무 귀하고 소중해서 꽁꽁 모셔 두는 바람에 구경조차 어려웠던 그릇들도 있었습니다. 결코 파손되는 일도 없었습니다.

미국 이민 생활사 속에는 한국에서 가져 온 애틋한 물건을 소중히 간직하고 계신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갓 결혼을 하고 시어머니께서 혼수로 장만해 주신 식기 세트와 자개장을 “생”고생하면서 미국으로 공수해 온 분이 있었습니다. 너무도 귀중해서 그릇의 이가 빠지지 않도록 신문지에 잘 싸서 장롱 깊숙이 넣어 두었습니다. 자개장도 장식이 떨어지거나 깨어지지 않도록 늘 조심조심하면서 매일 쓸고 닦으면서 깨끗이 보관해 두었습니다. 시어머니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따뜻한 온정을 그대로 담아 미래의 “며늘아기”에게 주려고 정성껏 보관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첫째 며느리가 그 소중한 것들을 오래된 고물이라고 달가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이 각각의 취향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큰 며느리 하는 짓이 내심 섭섭하고 괘씸합니다. 귀한 것도 모르는 천하고 형편없는 아이라고 결론 짓고 마음을 접습니다. 하지만, 곧 들어오게 될 둘째 며느리를 생각하면서 소중한 여러 도자기 찻잔 세트나 장롱 자개장을 잘 보관해 둡니다. 그런데 결과는 똑같습니다. 둘째 며느리는 한술 더 뜹니다. “아니, 어머니, 요즘 세상에 이런 고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이런 것들은 도네이션 센터에서도 받지 않아요. 어머니 당장 버리셔요.” 부끄러울 정도로 핀잔을 줍니다. “싫으면 말아라” 다시 한번 마음을 접습니다. 그러나, 아직, 세째 며느리가 남아 있기 때문에 마음을 잘 다잡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미국에서 상스럽게 자란 아이가 아니라, 한국에서 품위 있게 배우면서 성장한 아이를 며느리로 삼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몇 년 동안 한국을 오가면서 자신이 직접 셋째 며느리를 선봐서 데리고 옵니다. 처음에는 만족스럽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셋째 며느리는 한마디로 “못된 잡년”(雜女)이었습니다. 막돼먹었습니다. 자기가 준 그 소중한 혼수품을 고스란히 창고에 쌓아 두었습니다. 다음 달에 교회에서 하는 바자회에 전부 내놓을 것이라고 기염을 토합니다. 치미는 분노를 다잡으면서 “버릴 것이면 다시 달라”고 해서 집으로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비로서 60년 전에 시어머니께서 큰 맘 먹고 주셨던 그 “고(故)귀한” 찻잔에 커피를 타서 마십니다. 그리고 자신이 허드렛일을 하면서 입었던 옷들을 감히 자개 옷장에 걸어 봅니다. 혹시나 역한 냄새가 밸까바 자개장 안에 걸지 못했던 옷들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예전에 막 사용했을텐데, 뒤늦은 후회를 하며 쓰디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데, 갑자기 이유를 모를 눈물이 흐릅니다. 그리고 새롭게 다짐을 합니다. “아끼면 똥된다. 이제부터는 다 편하게 쓰다가 하나님의 나라에 빈 마음으로 가리라” 사도 바울은 젊은 사역자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딤후 2:20-21)

큰 집의 찬장에는 금 그릇, 은 그릇, 질그릇, 나무 그릇 같은 여러 종류의 그릇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릇의 재질”에만 관심을 갖지만, 하나님은 그 “그릇의 용도”에 관심을 갖습니다. 뚝배기에 커피를 담아 마실 수 없고, 예쁜 금 찻잔에 얼큰한 매운탕을 담아 먹을 수 없습니다. 전부 다 사용하는 용도가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주인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깨끗하게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이는 곳에 있어야 하고, 깨끗해야 하고, 주인의 손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비록, 너무 자주 쓰이다가 실수로 금이 가고, 깨어져서 수명이 다 할지라도 멋지게 쓰임 받는 것이 행복한 일 아닐까요? 아니면, 장롱 깊숙이 오래오래 묵으면서 쓰임 받지 못하고 고물 골동품으로 늙어가는 것이 좋을까요? 선택은 언제나 우리들의 몫입니다. 짧은 시간, 적은 기회, 놓치지 말고 잘 잡아서 값지게 쓰임 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