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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3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Bis Pueri Senes (노인이 두번째로 맞는 유년)

인생은 두 번의 유년시절을 겪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어렸을 때 한 번, 그리고 다시 노년이 되어서 거동이 불편하게 될 때, 또 한 번의 유년시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유년기의 특징은 무력(無力)과 의존(依存)입니다. 홀로서기에는 너무도 약해서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입니다. 부모의 보호 아래 살게 되는 첫번째 유년 시절에는 독립을 갈망하면서 살게 됩니다. 부모처럼 성인(成人)이 되면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꿈과 기대를 가지고 멋진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 나아갑니다. 사춘기를 지나게 되면서 비로소 성년이 됩니다. 이제 자신의 의지대로 인생을 펼쳐 볼 수 있는 기회가 열립니다. 독립이 가능하고 모든 것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게 됩니다. 더 이상 부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습니다.

이제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자유가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얻기위해 지난 삼십 여년을 잔소리, 신소리 다 들으면서 견뎌 온 것입니다. 감동적입니다! 그런데, 막상 성인이 되고 보니 세상이 녹록하지 않습니다. 주변에는 책임져야 할 일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이제는 모든 것을 자신이 다 책임져야 합니다.

아무도 봐주지 않습니다. 참으로 냉철하고 냉혹한 잣대질만 존재합니다. 주체적으로 산다는 것이 결코 행복한 것 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람은 시나브로 늙어갑니다.

모든 것이 부담스럽고 버겁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금방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위로해 줍니다. 그런데 머지않아 다시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두번째 유년시절이 찾아옵니다. 초로(初老)에 접어든 것입니다. “설마!” 하면서 막연하게 생각해 왔던 노년이 시작된 것입니다. 고작 삼십 여년 아등바등 살아왔는데, 다시 두번째 유년기를 맞이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선인들은 인생이 너무도 빨리 지나가기 때문에 “인생에 목숨을 걸고, 인생과 싸우면서 살지 말고, 인생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조언을 해 준 것입니다. 일과 삶을 즐기면서 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성년의 시기는 금방 끝이 납니다. 다시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두번째 유년 시절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성년의 시기는 한 번 주어지지만, 어린아이의 시기는 두 번 주어진다”(Once a man, twice a child)는 말이 생겨난 것입니다. 요즘에는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다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떠버려 댑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우리의 몸뚱이는 자신의 한계와 부족을 너무도 잘 압니다. 노인들의 모습은 연약한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빼박았습니다. 처음에는 잘 견뎌내도 노화가 진행될수록 점차 혼자서 행동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됩니다. 잊어버리는 것도 많아지고, 음식을 먹을 때도 자주 흘리게 됩니다. 나중에는 치아도 빠져서 딱딱한 음식은 자동으로 피하게 됩니다. 눈도 상당히 흐려져서 돋보기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글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게 됩니다. 손 발이 떨리고, 누군가가 옆에서 큰 소리로 계속 말해주지 않으면 좀처럼 알아들을 수도 없게 됩니다.

옛날에는 기억력 하나 밖에 자랑할 것이 없었습니다. 한번 만 보면 다 기억을 했습니다. 한번 들은 것도 까먹는 일이 없었습니다. “살아 있는 전화번호부”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전에 머릿속에 저장해 두었던 정보나 기억들이 다 흐릿해졌습니다. 툭하면 냉장고 안에서 전화기를 찾게 됩니다. 안경을 쓰고도 안경을 찾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반복됩니다. 행여, 치매라도 걸리게 되면 형편이 더 나빠집니다. 눈도, 귀도, 혀도 모두 둔해지고, 나중에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망각의 세상에 갇혀 버리게 됩니다.

나중에는 너무 무기력 해져서 어린 아기처럼 기저기를 착용하게 됩니다. 다시 완전한 유년으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노년”이 무섭다고 생각했던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 기억은 대부분 “치매”와 연관된 것들이었습니다. 치매는 아름답고 행복했던 기억들까지 모두 송두리째 잡아먹는 무서운 괴물입니다.

맑고 깨끗한 이미지의 여성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미 팔순이 훨씬 지나셨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흐트러짐이나 빈틈이 보이지 않는 철저한 분이셨습니다. 항상 고우면서도 대쪽 같은 강직한 언행을 통해서 그 분이 어떤 인생을 살아오셨는지를 단번에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항상 남에게 베푸는 것을 즐기면서도, 반대로 신세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셨습니다. 참으로 반듯한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인지, 가끔 물건 놓은 자리를 잊어버리고, 약속한 시간이나 장소도 잘 기억하지 못하게 되셨습니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보았는데, “알츠하이머”(Alzheimer’s disease) 초기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며칠 동안 말씀도 없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피하시다가 저에게 전화를 거셔서, 시간이 되면 한번 만나 달라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당신이 살아오신 이야기를 잠깐 하시다가 마치 뒷정리를 하는 사람처럼 저에게 몇 가지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후로 급속도록 건강이 나빠지셨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곡기를 끊으시더니 정확하게 일주일 만에 하나님의 나라로 가셨습니다.

가뜩이나 치매라는 노년 병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었는데, 그 병을 대하시는 목사님의 단호한 모습을 보면서 노년의 삶이 참으로 버겁고 무겁게만 느껴졌습니다.

예부터 노년을 한탄하는 시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고려시대 문신 “우탁”(禹倬)은 세월의 무상함을 이렇게 읊조렸습니다. “한 손에 막대를 쥐고, 또 한 손에는 가시를 들고, 늙는 길을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을 막대로 치려했더니, 백발이 제가 먼저 알고서 지름길로 오는구나.” 노년의 두려움과 염려는 한국의 선조들 뿐만 아니라, 서양의 선조들에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노년을 두번째로 맞는 유년시절(Bis pueri senes)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60대에는 매 해 대하는 “연년이 다르고”, 70대에는 계절마다 맞이하는 “철철이 다르고”, 80대에는 한 달, 두 달 맞이하는 “다달이 다르다”고 합니다. 90대에는 하루하루 “나날이 다르고”, 100세가 되면, 매 “시간 시간이 다르다”고 합니다.

늙는 것을 어떻게 멈출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첫번째 유년이 운명적이고,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맞이하게 되는 수동적인 유년이었다면, 두번째 유년(노년)은 우리의 노력과 훈련에 따라서 언제든지 다르게 맞이할 수 있는 가변적인 유년일 것입니다. 좀 더 맑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소신을 가지고 바르게 생활하고,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간다면, 훨씬 건강하고 행복한 유년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깊은 묵상으로만 살아갈 수밖에 없는 힘든 시간이 오기 전에 규칙적인 활동과 아름다운 기억들을 끊임없이 만들고, 해묵은 나쁜 감정들을 털어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갖는다면 훨씬 더 행복한 노년이 되지 않을까요? 다시 만나게 될 제2의 유년 시절은 좀 더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