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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17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Cognatio Movet Invidiam (가까울수록 시기심도 크다)

엘리자베스라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아담한 체구에 귀여운 얼굴을 가진 예쁜 처녀였지만, 몸이 조금 통통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단짝 친구 루시와 제니는 유난히 마른 체형이었는데, 유독 자기만 푸짐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늘 하나님께 자신이 날씬해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서원기도나 작정기도를 드리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말을 듣고 여러 번 시도해 보았지만, 몸매는 그대로였고, 심지어 날마다 입맛이 더 좋아졌습니다. 그녀는 마침내 하나님께 항의성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그렇게 내 살을 빼 주실 마음이 없으시다면, 좋습니다. 대신에 제 친구 루시와 제니를 저보다 뚱뚱하게 만들어주세요. 그건 하실 수 있겠지요?”

사람의 마음 속에는 누구나 시기심이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일 뿐입니다. 시기심은 “내가 남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면 견디지 못하는 질투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남”(他人)이라는 말은 정의하기가 상당히 애매합니다. 대부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성공이나 행운에 대해서는 거의 시기심을 느끼지 않습니다. 축구스타 손흥민 선수가 매주 3억원씩 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좋겠다”라는 가벼운 말을 던지고 곧 바로 잊어버립니다. 또, 뉴욕에 사는 아무개가 1조 원에 해당하는 복권에 당첨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도, “와우!”하는 탄성을 보낸 후에 금방 기억에서 털어버립니다. 그들이 어떻게 되든 나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시기심이 거의 발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가까운 사촌이 땅을 사거나, 나의 친한 벗이 예쁜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또, 동년배의 친구가 멋진 직장에 취직하게 되면 오래동안 불편한 생각이 머리 속에 잔상으로 남게 됩니다. 아랫배가 쓰리고 아픕니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참기 어렵습니다. 사람은 가까이에 있는 잘 아는 사람일수록 시기하는 마음이 더 강해집니다. 우리가 시기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때는 혹시 시기심이 “사랑의 숨은 뒷모습”이 아닐지 의문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항상 비슷한 신분이나 업종 그리고 같은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시기와 질투의 감정을 갖습니다.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뒤통수를 맞는 경우에는 그 대상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스쳐 지나가던 사람이 등에 칼을 꽂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까울수록 시기심도 크다”(Relationship excites envy)는 고대 그리스의 격언은 언제나 진리입니다. 우리는 “시기”와 “질투”라는 말을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기”(envy)와 “질투”(jealousy)를 구분하여 사용했습니다. “시기”는 자기 자신 보다는 “타인”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단어이고, 대부분 두 사람 간의 갈등을 표현할 때 사용합니다. 반면에, “질투”는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고, 보통 세 사람 이상의 불편한 감정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라고 합니다. 아무튼 두 단어 모두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타인이 가지고 있을 때, 느끼게 되는 슬픔이나 비애를 의미합니다. 이 감정들은 분노로 표출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시기와 질투에 대해서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강조합니다. 한편은 긍정적인 측면인데, 사람에게는 이 “시기심”이 있기 때문에 자기에게 없고 남에게는 있는 것을 쟁취하려는 목적으로 부단히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반면에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측면인데, 이 시기심의 초점이 타인에게 맞춰져 있어서 나의 노력으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될 때에는 성실하게 노력하기 보다, 남을 깎아내리고 헐뜯고 모함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내가 시기하는 대상의 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악한 짓도 저지릅니다. 분명히 시기심에는 두 얼굴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발전과 도약보다는 배신과 파멸로 끝이 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이었던 사울은 구약 성경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시기와 질투의 아이콘 입니다. 이스라엘의 영원한 숙적인 블레셋이 거인 장사 골리앗의 지휘 하에 쳐들어 왔을 때, 목숨을 걸고 나가서 싸웠던 청년 목동 다윗은 사울과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에게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모두 자기 목숨 하나 건지려고 조용히 숨죽여 떨고 있을 때,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지만, 나는 네가 모욕하는 만군의 주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가노라”(삼상 17:45)하면서, 사자후를 뿜고 달려들어 골리앗과 블레셋군을 무찌른 다윗은 너무도 고마운 민족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철없는 아낙들이 내뱉은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삼상 18:7)는 말은 사울의 질투를 유발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시기심은 가장 가까워야 할 다윗을 가장 먼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다윗이 모든 것을 다 가졌으니 이제 남은 것은 나라를 갖는 것 아닌가!” 질투와 복수심에 사로잡힌 사울은 누구보다도 훌륭한 왕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남은 시간을 오직 다윗을 제거하는 일에만 집중하다가 길보아산 전투에서 블레셋 군대와 싸우다가 종말을 고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 잠언의 말씀은 말합니다.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잠언 14:30) 가까운 사람일수록 얕잡아 보고, 멀리 있는 사람은 경험해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존경하고 떠받드는 태도는 어리석음의 극치일 것입니다. 소중한 사람은 멀리서 큰 일하며 있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내 주변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옛날 중국에 의 좋기로 소문난 형제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두 형제는 배를 타고 건너 마을로 농작물을 팔러 갔습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두 형제는 밭에서 큰 금덩어리 두 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하늘이 주신 복이라고 감사해하면서, 사이좋게 각각 금 한 덩이씩 나누어 가졌습니다. 그런데 배를 타고 강을 건너오다가 배가 강의 중앙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동생이 자신의 금덩이를 강에 던져버렸습니다. 깜짝 놀란 형이 동생에게 그 이유를 묻자 동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님은 내 인생의 최고의 보물이었는데, 저 금덩이 때문에 처음으로 ‘만약 형님이 없었더라면, 금덩이 두 개가 모두 나의 것이 되었을텐데’하는 못된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버렸습니다.” 동생의 말에 감동한 형도 가지고 있던 금을 던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크게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일수록 미워하고 시기하기 보다는, 더 소중히 여기고, 귀하게 대해야 행복하지 않을까요?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