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칼럼 목록가기

July 10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Spem Pretio Emere (희망을 돈으로 사다)

“머니 머니 해도 머니(Money)가 최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위,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전형적인 말버릇입니다. 또,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자주 눈에 뛰는 광고판이 있는데, “Money Talks”(돈이면 다된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홍보 판입니다. 모두 황금만능주의의 오만한 얼굴을 보여주는 문구들입니다. 대부분 변론이나 변호업과 연관된 일들 아니면 선착순을 요구하는 일들과 관련이 있는 광고물들입니다. 어쩌면 이 시대의 정신을 여실히 보여주는 말들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돈이면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별로 없습니다. 흑을 백으로 바꿀 수도 있고, 진실과 거짓도 순식간에 바꿀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개나 고양이들도 자기 주인들이 돈으로 맛있는 사료나 간식들을 사주는 것을 보면서 돈이 얼마나 귀한 줄을 안다고 합니다. 참으로 돈의 힘과 권세에 대해서는 아무도 그 능력을 부인할 수 없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최고의 가치(價値)인 돈으로 “희망”이라는 확실하지도 않은 공수표(空手票) 같은 추상명사를 산다(Spem Pretio emere)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돈보다도 희망이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물을 마시지 못하면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음식을 먹지 못하면 며칠을 견딜 수 없습니다. 산소는 더 중요해서 잠시라도 호흡을 멈추면 생존이 불가능 합니다. 그런데 희망은 더 치명적입니다. 희망이 끊기면, 그 순간부터 이미 죽은 목숨입니다. 희망은 곧 꿈이고, 우리의 모든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수학 선생님이 늘 하시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수학은 살아가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지만, 이 수학보다 더 중요한 것은 꿈이다. 희망이 없는 인생은 이미 죽은 것이다.” 광신적일 만큼 독실한 기독교인이셨던 선생님은 늘 꿈과 희망을 예찬하셨습니다. 어떤 때는 교회에 온 것인지, 학교에 온 것인지 헷갈려서 짜증스럽기도 했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정말 좋은 스승이셨습니다. 그 선생님이 많이 그립습니다.

희망은 정말 소중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어떤 희망을 가지고 있는지를 물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희망이 인생을 이끌어가는 나침반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희망하는 대로 인생이 움직입니다. 그런데 “Spem Pretio emere”(희망을 돈으로 사다)라는 글귀는 원래 희망을 강조하려고 만든 격언이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확실하고 분명한 돈을 버려서 눈에도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희망을 사는 것은 마치 “그림자를 얻기 위해서 실물(實物)을 버리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한 말입니다. 아직 현실로 일어나지도 않은 먼 미래에나 있을 법한 허망한 것을 위해서 지금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리면 안 된다는 말을 하려는 것입니다. 당시 종교개혁 시대에는 미래의 일들이 너무도 불확실 했기 때문에 이와 비슷한 격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내일의 암탉보다는 오늘의 달걀이 낫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 했었고, 영국에서는 “손 안의 새 한 마리가 덤불 속의 두 마리 새보다 낫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말들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귀하더라도, 그 보다 더 귀한 것은 “희망”입니다. 인생의 행복은 언제나 희망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희망이 없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비록 돈은 없어도 희망이 가득하면 언제든지 새로운 세상을 열어 갈 수 있습니다. 재산 중의 최고의 재산은 희망이라는 소리입니다.

아무리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삶이라고 해도 희망이 있으면 열심히 살 수 있습니다.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이 없으면, 아무리 부유하고 부러움을 사는 삶이라고 해도 재미도 없고, 보람이나 긍지도 찾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희망이 곧 생명입니다. 농부는 아무리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어도 종자씨앗까지 잡아 먹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씨앗은 미래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씨앗까지 다 먹어버리면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미래는 없습니다. 희망이 곧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매우 가난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이 농부에게는 아주 똑똑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농부에게는 큰 기쁨이었고 삶의 에너지였습니다. 하루는 그 아들이 자신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꼭 의사가 되어서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습니다.” 농부는 너무 뿌듯하고 기뻤습니다. “이런 훌륭한 아들이 나의 아들이라니!”

그러나 농부의 마음은 무겁기도 했습니다.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하기도 힘이 드는데, 어떻게 아들을 대학에 보낸단 말인가?” 그러나 아무리 가난해도 아들의 꿈을 꺾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농부는 아들에게 커다란 상자를 하나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들아, 네가 나의 아들이라는 것이 기쁘고 자랑스럽다. 내가 이제부터 너를 위해 돈을 많이 벌어서 이 상자에 저금하겠다. 너는 열심히 공부해서 이 다음에 의사가 되면, 여기 있는 상자 안의 돈으로 큰 병원을 짓고, 꼭 훌륭한 의사가 되거라. 돈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거라” 축복하면서 그의 꿈을 응원해 주었습니다.

농부의 아들은 열심히 공부를 했고, 마침내 의사가 되었습니다. 아들이 의사 자격증을 받고 사회로 나아갈 준비를 할 때쯤 되었을 때, 아버지는 이제는 까맣게 손때가 묻은 그 나무 상자를 꺼내 아들에게 주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가난한 농부 아버지는 아들에게 무거운 입술로 이렇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아들아, 이 못난 아비를 용서해라. 어린 너의 꿈을 꺾을 수 없어서 아비가 거짓말을 했단다!” 농부가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 상자 속에는 아버지가 저에게 주신 희망으로 가득 차 있네요. 아버지의 사랑도 가득하구요. 이 상자는 저에게 희망의 상자입니다.” 사람은 희망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바다에서 그물질을 하고 있던 베드로와 다른 형제들을 부르실 때, 희망을 주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그러면 너희가 이제부터는 사람을 낚는 어부들이 될 것이다.” 패망을 앞둔 이스라엘 땅을 보면서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질 때 하나님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포도원 땅을 사게 하셨습니다. 폐허가 된 포도원 땅 구입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희망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잘려 나간 나무의 그루터기에서 새 순(筍)이 돋는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또한 에스겔 선지자를 환상 가운데 에스골 골짜기로 인도하셔서 마른 뼈다귀들이 하나님의 군대로 회복되는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모두 절망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 넣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말씀들입니다. “희망”은 내일을 위해 오늘 형편 없는 저녁 식사를 먹게 하지만, 동시에 근사한 아침 식사를 맞이하게 하는 힘 입니다. 그 아침 식사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