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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1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지키려는 마음만 있다면

예전에 섬기던 교회에 시집살이를 아주 심하게 하신 권사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연세가 팔십 세 정도 되셨는데, 가끔 심방을 가면 당신이 그 가문에 며느리로 시집와서 힘들게 고생하시던 이야기를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특히 시어머니 되시는 분이 얼마나 심하게 구박을 하시던지 거의 죽을 뻔했다고 푸념을 하셨습니다. 밥 먹을 시간도 안 주고, 화장실 갈 시간도 안 주고, 하루 온종일 일을 부려 먹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시댁이 종갓집이었기 때문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꽃미남 남편 이야기를 하실 때는 아직도 분이 삭지 않은 듯 부르르 떨기까지 하셨습니다. 그 모진 시집살이를 이겨 낼 수 있었던 유일한 위안처가 남편의 잘난 얼굴을 보는 것이었는데 시어머니는 그 얼굴 마저도 볼 수 없도록 철저하게 시간을 빼앗았습니다. 밤 늦게 잠이라도 자려고 방에 들어가면, 심술 맞은 시어머니가 어김없이 방문 앞에서 이 권사님을 불렀습니다. “아가, 벌써 자냐?” 그리고는 깨워서 살을 애는 듯한 추운 영하의 날씨에 차가운 냇가에 가서 얼음을 깨고 이불이나 옷가지들을 빨아오도록 시켰습니다.

얼마나 힘든 시집살이를 하셨으면, 시어머니가 돌아가신지가 몇 십년이 지났고, 당신도 이제는 팔순을 훌쩍 넘기셨는데도 불구하고, 시집살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지셨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밥 먹을 시간도, 화장실에 갈 시간도, 쉴 시간도, 남편을 볼 시간도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권사님은 유독 자녀들을 많이 낳으셨습니다. 미스테리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다섯 명의 아들과 일곱 명의 딸을 낳는 생산적인 활동을 어떻게 하실 수 있었는지! 모두 열 두명의 자녀들을 낳으셨습니다. 성경에서는 열 둘이 완전 수입니다.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완벽하게 다 했다는 소리입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권사님께 여쭤 보았습니다. “권사님, 그렇게 힘들고 바쁘셨는데, 어떻게 자녀들을 많이 두셨어요?” 그러자 그 권사님은 빙그레 웃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이 너무 거룩하셔서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마음만 있으면 세상에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 소중한 남편 하나 바라보면서 시집살이를 참고 이겨냈는데, 숨어서라도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이 없었더라면, 제가 어떻게 여태까지 살 수 있었겠습니까?”

그 날 저는 두 가지 사실을 배웠습니다. 첫째는, “마음만 있으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 그리고 둘째는, “정말 소중한 것만 지킬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어려움은 다 참아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아도 마음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는 것은 다 핑계이고 변명에 불과합니다. 해야 한다는 사명감만 있으면 세상에 못 할 일이 없습니다.

플로리다 주에 거주하는 “자흐 무어”(36)씨는 체중이 226Kg이 넘는 초고도 비만자였습니다. 패스트푸드 중독에 걸려서 허리 둘레만 70인치가 넘었습니다. 얼마나 뚱뚱했는지 잘 걷지도 못했고, 숨쉬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장기가 눌려서 잠잘 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습니다. 의사는 무어씨가 머지않아 심장마비에 걸릴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습니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무어씨는 사랑하는 아내와 여덟 살 난 아들이 자기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동영상의 유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랑하는 아들이 자신의 생일 날, 케익의 촛불을 끄면서 한 가지 소원을 빌었는데, “자기는 아버지가 건강하게 자신과 함께 오래오래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그날, 무어씨는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결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아들을 아빠 없이 홀로 살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살을 빼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즉시 술, 담배를 끊고, 설탕도, 야식도 모두 끊었습니다. 위를 잘라내는 “위우회술”도 담대하게 받았고, 매일 쉬지 않고 만보 이상을 죽을 힘을 다해 걸었습니다. 아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습니다. 이년 뒤에 그는 63Kg의 홀쭉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살을 빼면서 축 늘어진 너덜너덜한 피부는 열번의 수술을 통해서 제거했고, 근력 강화 운동을 통해 누구보다도 건강한 모습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오로지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죽기 살기로 살을 뺐다”고 말을 하면서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은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입니다.

예전에 캔자스에서 목회를 할 때, 일년에 한 번씩 열리는 연회(Annual Conference)에 참석했다가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주제 강연을 하시던 목사님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 멋진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을 가장 중요하게 지키는 것입니다”(The most important thing is to keep the most important thing the most important thing.) 사람들은 종종 “어떤 것을 지킬 수만 있다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합니다. 자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있다는 소리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서라도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한 가지 씩은 다 있습니다. 신약성경 히브리서 11장에는 이름이 언급된 16명의 믿음의 선조들과 이름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고 다만 “선지자들”, “어떤 이들”, 그리고 “여인들”과 같은 불특정인들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향과 친척과 정든 사람들을 버렸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지위와 소유물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까지도 구차한 것으로 여겨 순교의 길을 걷기도 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믿음을 자신의 어떤 것보다도 귀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사자굴에 던져 지기도 하고, 칼에 맞기도 하고, 심한 고문과 조롱과 채찍질과 결박되어 옥에 던져지는 시련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돌에 맞아 죽는 투석형을 당하기도 하고, 톱으로 썰리는 참담한 고통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도 않았고, 타협하지도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광야와 산과 토굴로 피해 다니며 유리하기도 했고, 궁핍과 환란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많은 여인들이 사랑하는 가족들의 죽음을 “천국의 약속과 소망”으로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게 그들의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 믿음을 자신들이 이 땅에서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담대한 삶에 대해서 성경은 한 마디로 이렇게 증거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히브리서 11: 38). 우리는 유혹과 갈등이 많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신앙인은 그 속에서 무엇보다도 믿음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지키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반드시 우리 주님께서 지켜 주시고 도와 주실 것입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