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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19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Gygis Annulus (귀게스의 반지)

대표했던 단편 작가 “루키아노스”(Lucianus)가 자신의 책 <진실한 이야기>에서 언급한 말입니다. 이 말은 원래 고대 철학자였던 플라톤(Plato)의 책 <국가>(Politeia)의 제2권과 제10권에 나오는 격언인데, 윤리적인 딜레마를 설명하면서 예로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만약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결과를 책임질 필요가 없다면, 과연 그래도 윤리적으로 행동할 것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입니다. 플라톤은 책 속에서 자신의 형인 “글라우콘”(Glaucon)의 입술을 빌어 전설로 내려오는 이 “귀게스의 반지”(Gyges’s Ring) 이야기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리디아 왕국의 창시자가 되는 “귀게스”(Gyges)라는 목동이 있었습니다. 그는 원래 왕의 양들을 돌보던 목동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귀게스가 양을 돌보던 중에 갑자기 천둥 번개가 몰아치고 땅이 크게 갈라지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모든 목동들이 겁에 질려 도망쳤고, 오직 귀게스만 남았습니다. 그는 그 갈라진 땅의 틈 속으로 내려갔는데, 그 안에는 거대한 청동 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뒤꽁무니 쪽에 작은 문이 달려 있어서 그 안으로 들어가 보니, 한 큰 사내의 벌거벗은 시신이 누워 있었습니다. 그 시신의 손가락에는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반지가 끼워져 있었고, 다른 부장품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귀게스는 얼른 그 반지를 그의 손가락에서 빼내 밖으로 가지고 나왔습니다.

며칠 후, 귀게스는 왕의 가축들을 돌보던 다른 목동들과 함께 있었는데, 그의 손가락에는 그 죽은 사내의 반지가 끼어져 있었습니다. 귀게스는 문득 끼고 있던 그 반지의 홈을 발견하고 무심코 안쪽으로 돌려 보았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자신이 보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귀게스가 바로 앞에 있는데도 전혀 알아 보지 못했습니다. 놀란 귀게스가 반지의 홈을 다시 바깥쪽으로 돌리자 사람들이 귀게스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반지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마법의 반지였던 것입니다. 여러 번 시도를 해보았는데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비로소 엄청난 것이 자기 수중에 들어온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런 마법의 반지를 소유하게 된다면, 과연 무슨 일을 제일 먼저 하고 싶습니까?” 무조건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좋은 쪽보다는 나쁜 쪽의 결정을 하지 않을까요? 귀게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 반지의 능력을 이용해서 왕궁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신비로운 힘으로 사람들을 지배하고, 온 천하에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왕비를 겁탈해서 자신의 여자로 만듭니다. 또, 오래지 않아 그는 왕을 살해하고, 자신이 새로운 왕으로 등극합니다. 국가의 이름도 “리디아 왕국”으로 바꿉니다. 이 모든 일이 갑자기 생기게 된 반지 때문입니다. 반지 하나가 귀게스의 인생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던 것입니다.

“글라우콘”이 이 “귀게스의 반지”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갑자기 엄청난 힘과 권력을 손에 쥐게 되면, 마음 속에서 끓어오르는 탐욕과 이기심을 억누를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말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라도 일단 귀게스의 반지를 끼게 되면, 결국에는 백화점이나 멋진 매장에서 물건을 훔치게 될 것입니다. 은행이나 보석 상점에 들어가 진귀한 보물들을 마음껏 탐하는 도둑질의 끝판왕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시키지 않아도 남몰래 흠모하던 여인의 침대 속으로 기어 들어갈 것입니다. 또, 원수 같은 놈을 처절하게 응징하고 앙갚음 할 것입니다. 평소 자기를 힘들게 했던 별의 별 인간들을 다 찾아내서 반드시 “본때”를 보여줄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착하거나, 착하지 않거나 와는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일어나게 될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게스의 반지를 낀 권력자가 자발적으로 정의와 평화를 지킬 것을 기대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라고 “글라우콘”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플라톤은 이 <국가>라는 책을 통해서 귀게스의 반지는 아무나 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통치 철학을 가지고, 사리를 분별하고,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전문가들 만이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이 바로 정의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 귀게스의 반지 이야기는 플라톤의 정치 철학의 근간을 이루게 되는 “철인왕”(philosopher king) 사상의 배경이 됩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귀게스의 반지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도 귀게스의 반지를 끼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모든 공동체 안에는 반드시 이 귀게스의 반지를 끼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야 그 공동체가 잘 돌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과 일터 그리고 삶의 현장 속에 어김없이 귀게스의 반지를 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드러나는 리더십을 가진 사람일수도 있고, 뒤에 숨어서 사람들을 움직이는 배후 조종자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귀게스의 반지로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게 되면, 그것이 곧 폭력이 되고, 범죄가 될 것 입니다. 최소한, 요즘에 사회적 문제로 자주 회자되는 소위 “갑질”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얼마 전에 결혼식을 준비하던 두 예비 신혼 부부가 “예물 반지”를 가지고 와서 저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목사님, 예쁘지요? 저희들이 일주일 동안 싸우면서 고른 반지입니다.” 신부는 결혼식을 위해서만 잠깐 쓸 것인데, 괜히 낭비하지 말고 싼 것으로 구입하자고 알뜰을 떨었고, 신랑은 평생에 한번 있는 결혼식인데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다이아몬드의 눈알 만큼은 조금 더 컸으면 좋겠다고 살뜰을 떨었습니다. 두 사람은 며칠동안 티격태격하면서 이 적당한 규모의 반지를 기적적으로 찾아냈다고 기뻐했습니다. 두 사람의 형편을 너무도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어떤 사치도 마냥 순수하고 예뻐 보였습니다. 다소 꺼벙해 보이는 두 사람의 풋풋한 반지를 보면서 반지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보았습니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항상 반지에 대해 여러가지 미신적인 생각을 가져왔습니다. 반지에는 추문이나 액운을 막고, 행운을 불러오는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좋은 반지를 끼면 재물운, 건강운, 그리고 취업, 승진운과 같은 다양한 생명의 기운들이 스며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반지에 애착을 가져왔습니다.

영국의 소설가 “톨킨”(J. R. R. Tolkien)이 1950년대에 발표한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은 사랑과 추억을 표현하는 순수한 반지가 얼마나 무섭고 탐욕스러운 재앙의 반지로 둔갑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반지를 끼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귀게스의 반지라면, 주변 모든 사람들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 그 힘을 헌신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