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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12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Minutula Pluvial Imbrem Parit (작은 물방울이 모여 소나기가 된다)

“티끌 모아 태산”, “먼지도 쌓이면 큰 산이 된다”, “실도랑 모여 대동강이 된다” 그리고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같은 속담에 익숙한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살갑게 다가오는 격언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와 같은 표현들이 어김없이 쓰여 왔다는 것이 참 흥미롭습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모이고 쌓이게 되면 나중에는 큰 결과를 얻게 됨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로마 문학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시인 “오비디우스”(Pūblius Ovidius Nāsō)도 “흑해에서 온 편지”(Epistulae ex Ponto)에서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Gutta cavat lapidem)는 말을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단 한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극히 작은 것들이 모이고 모여서 이루어진 결과물들입니다.

한 시간에 1초씩 늦게 가는 시계가 있습니다. 그러면 매일 24초씩 늦어지게 됩니다. 일주일이면 2분 8초씩, 한달 후면 1시간 24분이 늦어지고, 1년 후에는 16시간 8분의 차이가 나게 됩니다. 시계로서 전혀 가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른 아침에 산책을 하다가 작은 돌을 들어 호수에 던지게 되면, 돌이 떨어진 지점부터 물보라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파장이 사방으로 퍼지게 되고 결국 돌을 던진 사람의 발 아래까지 영향이 미치게 됩니다. 작은 것에서 시작된 일이 일파만파로 퍼져 나아가서 큰 결과를 만들게 됩니다. 인문주의자 에라스뮈스는 “작은 물방울이 모여 소나기가 된다”(Many drops make a shower)는 격언을 자신의 글 속에서 자주 사용하였습니다. 작은 것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면 결국에는 큰 대가를 치르게 됨을 경계한 것입니다.

옛날 선비들이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서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세상과 단절한 채 열심히 학문에만 매진했습니다. 요즘에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청년들이 산속 깊은 암자나 기도원 아니면 사립도서실에 틀어 박혀서 공부에만 몰두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은 환경 온난화의 영향으로 온 세상이 많이 더워졌지만, 옛날에는 한 여름 삼복 더위에도 오랫동안 내린 눈들이 녹지 않고 그대로 얼어 있는 만년설 지대가 한국에도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 수백 년 동안 내린 눈덩이들이 나뭇가지 위에 녹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 있었습니다.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던 여름 철에는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좋은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되어서 눈이 오게 되면 나뭇가지 위에 다시 새 눈이 덧입혀지게 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에 더 이상 눈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나뭇가지가 부러지게 됩니다.

눈의 한 입자의 무게는 0.01 그램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작은 눈송이들이 긴 세월 동안 쌓이고 쌓여서 두꺼운 나뭇가지를 어느 한 순간에 자끈동 부러뜨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눈의 해를 입은 나무를 “설해목”(雪害木)이라고 불렀습니다. 깃털보다 가벼운 눈송이도 계속 쌓이게 되면 거대한 나무를 상하게 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비록 하찮은 것이라도 계속해서 반복하게 되면 엄청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나쁜 “습관”(習慣)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습관은 일상적인 행위들이 반복되어 만들어진 삶의 양식(樣式)입니다. 습관은 태어나면서부터 몸에 갖게 되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의지적인 행동을 반복적으로 행함으로써 습득된 삶의 틀입니다.

우리들의 행동 대부분은 습관의 결과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밖에서 친구들에게 매를 맞고 들어오면 그 아들을 대하는 부모님들의 모습이 각양각색입니다. “어떤 놈이 우리 아들을 때렸냐? 손 봐주러 가자!”(행동파), “아이고, 내 새끼!”하면서 우는 아이를 끌어 안고 함께 눈물을 흘리는 부모님(순정파), “왜 맞았어? 엉?” 하면서 단호하게 일어난 일들을 또박또박 설명할 것을 요구하시는 부모님(자초지종파), “이 놈의 자식, 또 맞을 짓을 했구만!” 야단을 치시면서 손찌검까지 하시는 부모님(맞불파), “눈물 뚝!” 사내 자식이 울지 말고 가슴을 활짝 펴라”고 훈계하시는 부모님(멋진 싸나이파), “너도 같이 때려야지 왜 일방적으로 맞고 오냐”(등신파), “담판에는 너도 콱 쑤세뿌려라!” 하면서 좋은 것을 가르치시는 부모님(사시미파), “맞지 말고, 도망을 쳐라”(쪽파), “괜찮다! 맞은 놈은 편히 잘 수 있다”(해탈파), “다음 판에 또 때리면 콱 누워 버려라. 깸 값이나 벌자”(막가파)

등등 반복을 통해 고정화된 삶의 모습이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게 습관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어렵지만, 사람이 목표를 세우고 “21일 동안” 끊임없이 반복을 하게 되면, 그것은 반드시 “습관”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얼굴 표정, 말투, 행동 양식 그리고 사고 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되고, 정형화된 삶의 모습이 결국 자신의 인생이 되고, 운명이 됩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적응하기 어려워도 3주 동안 포기하지 말고 반복하게 되면, 결국 그것이 내 인생의 모습이 됩니다. 2002년 솔트레이크 시티 (Salt Lake City)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스티븐 브레드버리” (Steven Bradbury) 선수가 예상을 뒤엎고 오스트레일리아 역사 상 첫번째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게 됩니다. 그는 원래 우승권에 드는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그가 메달을 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선에서 앞서 달리던 선수들이 무더기 넘어지면서 그는 본의 아니게 1등의 성적으로 준준결승에 진출합니다. 그리고 준준결승에서도 역시 꼴찌로 달리다가 앞에서 달리던 두 선수가 서로 몸싸움을 하다가 동시에 자빠지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2등으로 준결승에 진출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준결승 전에서 네 명의 기라성 같은 선수들과 시합을 벌였는데 역시 꼴찌로 달리게 됩니다. 그런데 마지막 바퀴에서 결승점을 바로 앞두고 마치 주술에 걸린 듯, 세 명의 선수가 또 무더기로 넘어집니다. 덕분에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는데, 비디오 판독 결과 1위로 들어온 선수가 실격 판정을 받으면서 조 1위로 대망의 결승전에 진출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승전에서는 각 조에서 올라온 선수들이 모두 세계적인 스타들이었습니다. 처음부터 함께 겨룰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최종 결승에 올라온 선수들 다섯 명 중에서 “스티븐 브레드버리”는 출발부터 반 바퀴 이상 떨어지는 수모를 겪게 됩니다. 앞에서 달리는 네 명의 선수들은 모두 쟁쟁한 금메달 후보들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경쟁이 한층 더 치열합니다. 똑같은 일이 세번 이상 반복되면 그것은 “운명”이라고 하는데, 그 말 그대로 그들은 모두 마지막 바퀴에서 서로 엉겨 붙으면서 일순간에 다 쓰러집니다. 그리고 멀리서 따라오던 브레드버리가 놀랍게도 어부지리로 금메달을 획득하게 됩니다. 그러자 관중들은 그 동안 참았던 격렬한 야유를 브래드버리에게 퍼부었습니다. 금메달 감이 아닌데, 다른 선수들의 실수와 다툼 때문에 운 좋게 금메달을 땄기 때문입니다.

오스트레일리아 국민들도 브레드버리의 금메달을 수치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저건 금메달도 아니다”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스티븐 브래드버리”는 오스트레일리아의 국민 영웅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그의 끊임없는 노력과 집념을 사람들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13년 동안 부상과 불운에 시달렸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자기의 불운한 운명과 싸움을 했습니다. 그는 기자 회견에서도 “저는 금메달 감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압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매달리니까, 운명도 저의 미래를 열어준 것 같습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오스트레일리아 사전에도 등재될 만큼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Do a Bradbury”(브레드버리하다), 즉 “끊임없는 연습이 모이게 되면 운명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그의 삶을 통해 보여준 것입니다. 작은 것도 계속하면 인생이 바뀝니다(Minutula pluvial imbrem parit).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