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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6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Que Sera Sera (될 일은 결국 된다)

우리는 이 말을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성의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이해해 왔습니다. “케 세라 세라”는 그 어원이 스페인어나 이탈리아어에서 왔다고 생각을 하지만, 실제로는 16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말이라고 합니다. “Whatever will be, will be”(무엇이 되든지 될 것은 된다)라는 영어를 문자 그대로 이탈리아어나 스페인어로 번역하다 보니 라틴어로 사용을 할 때는 문법에도 전혀 맞지 않는 짝퉁 라틴어가 되고 만 격언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배우들이 술에 잔뜩 취해서 “될대로 되라”고 고함을 지르는 퇴폐적인 모습을 많이 보았는데, 실제로는 “지금은 일이 잘 되지 않고, 상황이 좋지 않아도 결국에는 잘 되게 되어 있다”라는 운명론적인 긍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한 때는 영국 프리미어 축구 리그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Manchester United FC) 팀의 응원구호 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 축구의 영웅 “박지성 선수”를 키워낸 알렉스 퍼거슨(Alex Ferguson) 감독은 “맨유”의 전설적인 감독인데, 아무리 맨유가 부진에 빠져서 연패를 경험하고, 많은 주전 선수들이 부상으로 출전을 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 할지라도 결국에는 퍼거슨 감독이 맨유를 우승으로 이끌 것이라는 의미로 이 응원구호를 외쳤습니다. “Who is que sera sera?”(누가 결국에는 되게 만들 것인가?) 물론, 답은 퍼거슨 감독입니다.

아무리 희망이 없어 보여도 결국에는 퍼거슨 감독이 잘 되게 만들 것이니까, 너무 안달하거나 초조해하지 말고 느긋하게 기다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순간적인 일들에 너무 조급하게 좌절하거나 우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차피 될 일은 되게 되어 있으니, “케세라 세라 세라”의 정신으로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결국 될 것은 된다”라는 의미를 전해주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시골에서 목회를 하던 가난한 젊은 목사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서울에서 내려온 딸과 함께 지내고 있는 권사님 댁에 심방을 갔습니다. 딸에게는 이제 태어난 지 8개월 된 사내 아기가 있었는데 남편이 외국으로 장기 파견근무를 떠나는 바람에 시골에 계신 어머니와 몇 년 동안 함께 지낼 작정으로 내려와 있었습니다.

당시, 이 젊은 목사님은 밥 세끼를 다 찾아 먹는 것이 쉽지 않은 형편이었는데, “오늘 점심 식사는 이 권사님의 집에서 얻어 먹어야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은 함께 대청 마루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마지막 축복기도를 마치고, 목사님은 눈을 감고 계속 묵상 기도를 드리고 있었고, 딸과 어머니 권사님은 모두 부엌에 가셔서 급히 점심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방에서 잠자고 있던 아기가 깨서 마루로 엉금엉금 기어 나왔습니다. 아기는 마루에 놓여있던 밥주걱을 손에 쥐고 앉아서 입으로 핥기도 하고 빨기도 했습니다. 목사는 조용히 기도를 드리고 있다가 갑자기 자기 앞에서 밥주걱을 핥고, 빠는 소리가 들리게 되자 잠깐 새 눈을 뜨고 아기를 바라보았습니다. “저 아기가 서울에서 내려온 아기구나!” 생각하던 차에 밥주걱을 빨던 아기가 갑자기 낯선 목사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목사는 짓궂은 생각이 들어 아기에게 “이노옴!” 하면서 장난을 쳤는데, 아기는 놀라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기저귀도 차지 않은 아기가 울면서 동시에 오줌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금방 아기 주변의 마루 바닥에 오줌이 질펀하게 고이게 되었습니다. 아기가 손에 쥐고 있던 주걱을 그 오줌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주걱에 오줌이 잔뜩 묻었습니다.

목사는 기겁을 하며 그 모습을 다 보았습니다. “혹시, 저 주걱으로 밥을 푸는 것은 아니겠지?” 잡념에 사로 잡혀 있을 때,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은 딸이 부엌에서 나와 오줌을 싼 아들을 들쳐 엎고 얼른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머니 권사님도 부엌에서 밥을 다하시고, 밭에서 따온 싱싱한 오이와 가지로 무침을 다 만드신 후에 마루에 뒹굴고 있던 주걱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염려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권사님은 시골사람 답게 그 주걱을 물에 씻지도 않고, 행주로 두 번 닦은 후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밥을 밥그릇에 퍼 담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권사님은 감기까지 걸리셔서 “훌쩍 훌쩍”하셨는데, “아뿔싸!” 그 목사는 권사님의 콧물이 밥그릇 속으로 떨어지는 것까지 보고 말았습니다. “야! 저 밥을 어떻게 먹나!” 걱정하고 있을 때, 권사님이 부엌에서 밥상을 들고 대청 마루로 나오셨습니다.

권사님은 목사 앞에 밥상을 내려놓으시면서, “목사님, 바쁘실텐데 누추한 저희 집까지 찾아와 예배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은 변변치 않지만, 밥은 햅쌀로 지었으니 사양하지 마시고 많이 드셔요!” 권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젊은 목사님은 배를 움켜쥐며 “권사님, 저 오늘 배가 아파서 식사를 못할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면서 울상을 지었습니다. 때마침 방에서 나온 딸도 목사에게 “목사님, 성의가 있으니, 사양치 마시고 조금만이라도 드세요” 하며 강권했습니다.

목사도 웬만하면 밥을 먹으려고 했지만, 아까 본 모습이 있어서 죽었다 깨어나도 그 “오줌과 콧물”로 버무려진 밥을 먹을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목사는 처음의 계획과는 달리 배 아픈 시늉을 계속 하면서 그 집을 도망치듯 나오고 말았습니다.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젊은 목사는 그때의 기억이 머리 속에서 영 가시지를 않아 미안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권사님 집으로 심방을 갔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아이가 잠을 자고 있었고, 권사님도 감기가 다 나셔서 집 옆에서 밭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목사는 다시 그 가정을 위해서 간절히 예배를 드렸는데, 이번에는 밥상이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권사님은 목사님에게, “목사님, 아직도 속이 편치 않으실텐데, 식사 대신에 저희가 감주와 한과를 준비했으니 편하게 드세요!” 하면서 다과를 내왔습니다. 젊은 목사는 좀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감사하면서 감주와 한과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시원하고 바삭바삭한 것이 둘 다 참 좋았습니다.

권사님은 목사 옆에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하시다가 갑자기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 목사님, 오늘 목사님이 드신 감주와 한과는 지난 번에 목사님이 손도 대지 않으셨던 햅쌀 밥으로 만든 것입니다. 맛은 괜찮으신가요? 이따가 가실 때, 더 가지고 가셔요”

갑자기 “우웩!”하면서 비위가 상했지만, 깊이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일어나게 될 일은 결국 일어나고 만다”

결국 될 일은 되게 되어 있습니다. 너무 염려하거나 근심하지 말고 좀 더 편하게 삶을 맞이하는 지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태 6:34).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