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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딜리트(Delete)의 미학(美學)

컴퓨터 자판에는 많은 글자와 숫자들 그리고 기호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딜리트”(Delete)라는 작은 자판이 있는데, 이 자판을 누르면 지금까지 했던 모든 작업들이 한꺼번에 다 사라집니다. 어떤 경우는 밤 새워 글을 쓰고, 조금씩 시간을 내어 원고 작성을 완성했는데 한번의 실수로 딜리트 버튼을 누르는 바람에 모든 수고가 수포로 돌아갑니다.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딜리트 버튼의 위력을 절감하게 됩니다. 저는 한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할 때, 몇 달 동안 준비한 논문을 잠결에 딜리트 해 버리는 바람에 자칫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하는 위기를 맞은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지도 교수님의 배려와 도움 덕분에 다시 급하게 처음부터 논문을 복기해서 감사하게도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워드 프로그램들이 많이 발전해서 복안을 만들었기 때문에 단번에 모든 작업이 종료되는 일이 거의 없지만, 예전에는 프로그램이 갑자기 정지되어 버리는 경우가 자주 있었습니다. 그러면 안타깝지만 컴퓨터를 재가동 시키기 위해서 눈물을 머금고 딜리트 버튼을 눌러야만 했습니다. 모든 글들이 단번에 날아가는 충격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다시 컴퓨터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딜리트 버튼은 언제나 서로 다른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모든 것을 날려버리는 파괴적인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다시 새롭게 작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길을 여는 창조의 얼굴입니다.

이 두 가지 얼굴은 항상 동시에 존재합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고 하면 반드시 기존의 생각이나 방식들을 모두 딜리트 시켜야 합니다. 기존의 것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절대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그릇에 새로운 음식을 담기 위해서는 먼저 그릇 안에 있던 과거의 음식을 버려야 합니다. 새로운 기술을 익히려고 하면, 이전에 알고 있었던 구식 방법들을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방식의 기술을 섭렵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집착하면 결코 새로운 것을 익힐 수 없습니다. 딜리트는 새로운 창조를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작업입니다. 어렸을 적에 살던 시골 동네에 한 거지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부잣집 며느리였는데 정신 이상으로 소박을 맞아 쫓겨난 다음부터 이집 저집 돌아다니면서 구걸을 해서 먹고 산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어디서 구했는지 작은 손수레 하나를 항상 끌고 다녔습니다. 그 안에는 온갖 잡동사니 물건들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한번은 동네 아주머니들이 회의를 하고 그녀를 동네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기로 결정했습니다. 보잘 것 없지만, 그녀가 머물 수 있는 거처도 구해주고, 작은 일자리도 찾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먼저 그녀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알 수 없는 고약한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서 그녀를 목욕탕으로 데리고 가서 여러 사람들이 달라붙어 깨끗하게 씻겨 주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사람들이 불쌍히 여겨서 옷을 사주면, 이전에 입었던 케케묵은 썩은 옷을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그 위에 새 옷을 계속 껴입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껴입은 한 번도 갈아 입지 않은 옷이 모두 여섯 벌이었다고 합니다.

옛 것을 버리지 못하면 아무리 새 것을 가져도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새롭게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먼저 이전의 것을 딜리트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고인(故人)이 되신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1993년에 미국을 방문했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 “베스트 바이” (Best Buy) 전자제품 상점에서 자신들이 만든 삼성 제품이 미국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진열대 정 중앙에 전시된 제품들은 대부분 미국 기업에서 만든 제품들이거나, 일본의 소니(Sony), 파나소닉(Panasonic) 그리고 토시바(Toshiba)와 같은 전설적인 기업에서 만든 제품들이었습니다. 한국에서 큰 꿈을 가지고 미국으로 수출을 했던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등은 모두 매장 한 귀퉁이에 잔뜩 쌓여서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사람들은 아무리 가격이 저렴해도 삼성 제품을 신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제품이 있는 것 조차도 알지 못했습니다. 충격을 받은 이건희 회장은 곧 바로 귀국해서 삼성전자의 모든 임원들을 불러 심하게 질타했다고 합니다. 그는 삼성의 모든 계열사 대표들까지 불러 모아 전략회의를 하면서 너무도 유명한 말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이 영원한 이류 회사였던 삼성을 미국 최고의 일류 기업으로 도약하게 만들었습니다. “마누라와 자식들만 빼고 모두 바꿔라!”

이전에 가졌던 모든 생각이나 가치관 그리고 생산기술이나 판매전략들을 모조리 딜리트 해 버리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이류”나 “삼류”는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살고 싶으면 반드시 “일류”가 되어야만 합니다. 일류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무조건 다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삼성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만든 정신입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참신한 전략은 우선 너무 익숙해진 것들, 그리고 습관화되어 버린 것들을 과감하게 딜리트 해 버리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가 세계 최고의 화가로 인정하는 “피카소”는 당시 거의 대부분의 화가들이 당연하게 생각했던 “원근법”을 과감하게 버렸습니다. 그 결과 자신 만의 미술 세계를 갖게 되었습니다. 공장의 노동자 출신 디자이너였던 “코코 샤넬”도 그 동안 일반화되어 왔던 옷이나 가방의 불편한 장신구들을 떼어내고 간편한 옷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젊은 여성들의 치마 단을 과감하게 잘라 버렸습니다. 소위, 미니스커트(Miniskirt)의 시대를 연 것입니다.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큰 충격이었지만, 그로 인해 온 세상의 패션 트랜드가 새롭게 바뀌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사카모토 료마”도 무사(武士)로서의 칼을 내려놓고 기업가로 변신하면서 암울하고 피비린내 나는 “에도 막부”의 시대를 끝내고, 중앙 집권 체제의 “메이지 유신” 시대를 여는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역사를 바꾸는 것은 새로운 것을 찾아서 첨가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들을 딜리트 해 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지나간 기억 때문에 힘들어하던 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술주정과 욕설 그리고 심한 매질에 시달리면서 자랐습니다. 그녀가 열 살 되던 해에 아버지의 계속적인 횡포에 시달리던 어머니는 결국 모든 희망의 줄을 놓고 가출해 버렸습니다. 그것이 어머니와의 마지막 작별이었습니다. 어느 날, 무정한 아버지는 만취된 채 집으로 돌아와 이 자매와 여 동생을 방 안에 가두고 집에 불을 질러 버렸습니다.

이 화재로 아버지와 동생은 죽고, 이 자매는 간신히 목숨을 구했지만 왼쪽 다리에 심한 화상을 입고 말았습니다. 화상보다 더 큰 상처는 그녀의 마음에 남겨진 절망감이었습니다. 그후, 이 자매는 보육원으로 옮겨져 지내게 되었는데, 그녀의 시련은 끝나지 않고 다른 모습으로 계속 이어졌습니다. 같은 보육원 오빠들에게 윤간을 당하기도 했고, 그녀 이전에 보육원으로 들어온 선배 언니들에게도 극심한 따돌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녀의 인생은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로 다니고 있던 가방 공장에서 착실한 오빠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인생 처음으로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 너무도 행복한 자신의 모습에 두려움까지 느꼈습니다.

그녀의 진짜 고통은 결혼 후 일년이 지난 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과거의 족쇄가 그녀를 늘 괴롭혔던 것입니다. 딸 아이를 하나 낳았는데,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불에 타 죽은 여동생의 모습이 오버 랩(Overlap) 되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잠자리에 들 때에는 자기를 욕보였던 보육원 오빠들의 환형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어디선가 자신의 행복한 모습을 비웃는 아버지의 음성이 끊임없이 들렸습니다. 당시, 출석 중이었던 교회에서 작은 문제 때문에 사소한 다툼이 일어나도 남들은 다 별 탈없이 지나쳤지만, 자신은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집사님, 권사님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마치 자신을 왕따 시키려는 모습으로 느껴졌습니다. 다시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결국,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았는데, 의사 선생님은 조현병(schizophrenia)의 증상이 보인다는 진단과 함께 시간을 갖고 지켜보자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제가 섬기던 교회의 담임 목사님과 오랜 기간동안 상담을 하면서 점차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모습은 목사님이 그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시던 장면입니다.

“주님, 지나간 시간을 끊어버릴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을 주시옵소서!” 점점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 가면서 - 좋던, 나쁘던 -“딜리트”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딜리트”는 힘든 일입니다. 끊을 것은 끊고, 버릴 것은 버릴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