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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5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Spero Spera (나는 희망한다, 너도 희망하라)

“숨을 쉬는 한 희망은 있다”라는 말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실제 문장의 뜻은 “나는 희망을 갖는다. 너도 희망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숨을 쉬다”라는 “Spirare”(breathe)와 “희망하다”라는 “Sperare”(hope)가 혼동을 일으켜서 뜻이 와전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숨을 쉬고 살기 위해서는 희망이 있어야 하고, 반대로 희망이 있어야 숨을 쉴 수 있다는 점에서는 두 단어가 서로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운동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현대인들은 바쁜 일정 속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따로 운동 시간을 갖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겸연쩍게 대답하는 말이 “숨쉬기 운동”입니다. 숨쉬기 운동은 특별한 노력 없이도 저절로 일어나는 호흡 현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멋쩍은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운동 중에서 가장 힘이 많이 드는 운동이 “숨쉬기 운동”이라고 합니다. 호흡기 질환 의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숨쉬기 운동만 제대로 해도 모든 질병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사람은 보통 1분에 15~17회, 하루에 2만 회, 그리고 1년에 800만 회 정도의 호흡을 한다고 합니다. 살아가면서 깨어 있을 때나 잠을 잘 때나 잠시도 쉬지 않고 호흡을 하며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한 때 호흡이 생명의 근원이라고 믿었습니다. 숨을 쉬면 사는 것이고, 숨을 멈추면 그것이 곧 죽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숨”이 곧 “생명”이라고 믿었습니다. “숨”은 크게 “들숨”과 “날숨”으로 구분됩니다. 몸 안에 있는 노폐물을 날숨과 함께 밖으로 내보내고, 외부에 있는 신선한 공기를 들숨과 함께 들이마셔야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

종종 한문(漢文)을 살펴보면, 다른 말들과 달리 예리한 통찰력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호흡”(呼吸)이라는 말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호흡”은 “내쉴 호(呼)”와 “들이마실 흡(吸)”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단어입니다. “들이 마시는 것”(흡)보다 “내 쉬는 것”(호)을 더 먼저 사용하는 것이 신기합니다. 쉽게 말하면 “숨”은 먼저 잘 내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잘 들이마실 수 있습니다. 체내에 있는 모든 독소와 노폐물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밖으로 다 내보내고 텅텅 비어 있어야 새로운 맑은 공기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날숨이 들숨보다 먼저라는 이야기입니다. 체내에 있는 모든 노폐물을 길게 숨을 쉬어서 밖으로 다 배출하지 못하면, 몸에 독소가 쌓여서 병이 됩니다. 또, 숨이 짧으면 근육도 다 펴지지 않아서 나중에는 등이 굽고, 몸 안의 장기들도 변형이 일어나게 됩니다.

사람들은 항상 날숨보다는 들숨에 더 신경을 씁니다. 그래서 공기가 맑고, 자연 환경이 좋은 곳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먼저 날숨을 잘 쉬는 법을 배워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들숨도 끝까지 넉넉하게 들이마시는 연습을 잘 해야 합니다. 그래야 허리뼈가 펴지고 오장육보가 다 원만하게 작동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신선하고 오염되지 않은 맑은 공기가 들숨을 통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일입니다. 결국, “숨쉬기 운동”을 잘 한다는 말은 이 날숨과 들숨의 과정을 균형을 맞춰 능숙하게 잘 한다는 말입니다. 건강 하려면 입을 통해 숨을 쉬지 말고, 횡격막을 크게 늘려서 코로 숨을 길게 쉬는 법을 연습해야 합니다. 코 속에는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고, 코로 들어오는 모든 이물질들을 걸러내는 “코털”이 있습니다. 반드시 코로 숨을 쉬어야만 건강을 지킬 수 있습니다.

많은 폐질환 의사들은 현대인들의 병이 분명히 잘못된 호흡법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 크게 심호흡을 하는 법을 매일 30분 이상 연습해야 건강할 수 있다고 합니다. 공기가 맑은 이른 아침에 팔을 45도 각도로 벌리고, 들숨 때는 양손날을 바깥 쪽으로 약간 벌려주어 공기를 들이마시고, 반대로 날숨 때는 양손 날의 각을 안쪽으로 틀어주면서 깊이 숨을 내뱉어야 합니다. 가끔씩 숨이 조절이 되지 않아서 일정하지 않을 때는 숨을 잠시 참았다, 다시 뱉어내는 과정을 반복해서 숨 고르기와 다잡기를 해야 합니다. 숨의 리듬이 일정해야 합니다. 숨도 부정맥(arrhythmia)처럼, 일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숨이 막히거나, 가빠지지 않도록 자주 작은 숨, 큰 숨을 반복하면서 망가진 숨을 바로잡는 숨쉬기 운동 시간을 가져야만 합니다.

가슴으로 만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도 숨을 쉬어야 합니다. 폐에는 근육이 없습니다. 대신 횡격막과 여러가지 “불수의근”(involuntary muscle)들로 포진되어 있습니다. 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작용하는 근육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불수의근(不隨意筋)을 잘 작동시키려면 반드시 정신도 함께 숨을 쉬어야 합니다. 날숨을 통해서 정신과 영혼에 쌓여 있는 상처와 아픔과 분노, 그리고 좌절과 불신 같은 부정적인 노폐물들을 다 뱉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들숨을 통해서 다시 희망과 용기와 사랑 그리고 감사와 기쁨 같은 생기(生氣)를 들이마셔야 합니다. 그냥 공기만 들쑥날쑥하면서 들이마셨다 내쉬었다를 반복하면 그것은 “짐승의 숨”이지, “사람의 숨”은 아닙니다. 미칠 것 같은 세상에서 우리의 숨을 바로 잡을 때 우리는 희망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숨쉬기 운동”이 가장 쉽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만나 다시 숨이 제대로 돌아오는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인생의 “틈”이 보이지를 않아 숨막히는 시간을 보내다가 정신줄을 놓아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곱 귀신에 사로 잡혔던 막달라 마리아, 거라사 무덤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가던 귀신들린 사람, 치명적인 천형에 걸려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 받은 여리고의 나병환자들, 12년 동안 숨 줄을 놓아버렸던 유출병 여인, 갑작스러운 딸 아이의 죽음으로 숨이 멈춰버린 회당장 야이로의 집 그리고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숨막히는 이유로 희망의 끈을 놓아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만나 주셨고, 그들에게 치유와 회복의 안식(安息)이 되어 주셨습니다. 안식은 곧 “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숨”은 곧 “쉼”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의 쉼이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 숨을 회복하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