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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3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어머니는 사랑입니다

‘사람’이라는 단어는 ‘살’이라는 말과 ‘암’이라는 말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복합명사라고 합니다. 먼저, ‘살’은 우리의 육체 즉, “살덩어리”(flesh)를 말합니다. 어렸을 때는 보드랍고, 젊을 때는 탱탱하다가, 늙으면 쭈글쭈글해져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살입니다. 미국의 한 의료협회에서 사람의 몸을 값으로 환산해 보았다고 합니다. 팔과 다리 그리고 몸 안의 장기들을 하나씩 계산해 보았더니 얼추 5억 원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요즘 한국에서 황소 한 마리의 가격이 1,000만 원 정도라고 하니까, 황소 50마리에 해당되는 엄청난 가격입니다. 하나님께서 깊은 생각을 가지고 오묘하게 창조하셨기에 우리의 몸값이 그렇게도 비싼가 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집에서 아이들이 듣는데 함부로 “돈 없는 집구석이라”고 푸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 한 명의 가치가 5억 원입니다. 자녀가 세 명이 있는 분은 적어도 15억 원을 품 안에 품고 계신 분입니다. 결코 적지 않은 부자입니다. 저는 아들이 둘이니까 10억 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남편은 값이 조금 덜 나간다고 합니다. 이미 전성기가 지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저의 집은 남자들만 계산하면 거의 10억 3,000만원 정도의 재산을 보유한 가정입니다. ‘살’이 곧 “힘”입니다.

그리고 ‘암’이라는 말도 깊은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암은 자기하고 똑같은 후손을 번식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여성”을 의미합니다. 소나 닭 그리고 양과 같은 동물을 부를 때는 ‘암컷’이라고 부르고, 사람에게 적용할 때는 ‘에미’(어머니)라고 합니다. ‘암’과 연관된 대표적인 단어가 있는데 ‘암죽’입니다. 옛날 가난했던 시절에는 어머니가 아기를 낳았는데 젖이 나오지 않으면 산에 올라가서 도끼로 참나무를 잘라다가 그것으로 미역국을 걸쭉하게 끓여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머니가 그 죽을 먹고 힘을 내서 아기에게 젖을 물렸습니다. 그것이 암죽의 기원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설이 있는데, 그것은 젖이 잘 나오지 않는 어머니가 쌀을 잘 씻어다가 쇠붙이에 닿지 않게 나무 방망이로 찧어서 정성스럽게 죽을 쑤었는데, 여기에 설탕을 넣어 젖과 비슷하게 만들어서 아기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이것도 ‘암죽’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암죽은 한 마디로 정의하면 ‘어머니의 죽’이란 뜻입니다. 결국 ‘사람’은 어머니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어머니의 젖과 사랑을 먹고 자란 ‘어머니의 살붙이’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근본은 ‘어머니’입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첫 번째로 만나는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母性愛)입니다. 살을 주시고, 암죽을 주신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 때문에 비로소 한 개인의 인생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 귀한 어머니들을 홀대하고 무시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어머니를 무시하는 것은 곧 나의 존재와 가치를 부정하는 일입니다. 몇 년 전에 라스베가스의 거리를 배회하던 한국인 할머니 한 분이 순찰 중이던 경찰차에 발견되어 한인사회에 인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말끔한 차림새로 보아 노숙자는 아닌데,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도는 모습이 경찰에게는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할머니를 도우려고 한국인 통역사가 두 명이나 동원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한국말로 물어봐도 이 할머니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자신의 신상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할머니는 운전면허증이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경찰서 안에 있던 많은 분들이 할머니의 거처를 찾기 위해서 진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나중에 라스베가스의 한인 교회에 계시는 한 목사님이 오셔서 할머니를 달래면서 설득한 끝에 할머니에 관한 정보를 얻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로스앤젤레스에 사시는 분이었고, 큰 아들 가정과 함께 사셨는데, 아들 내외가 봄나들이를 가자고 권해서 가족들과 함께 라스베가스에 왔다가 길을 잃고 거리에 홀로 버려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들 부부를 간신히 수소문해서 찾아내고, 아들의 휴대폰으로 수없이 전화를 했는데도 아들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경찰들이 직접 아들의 집을 찾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은 할머니가 아들 내외에게 소위 “현대판 고려장”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아들의 사업이 밑바닥을 치게 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치매까지 걸려서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라스베가스 사막에 내다 버린 것입니다. 그 와중에도 이 가엾은 어머니는 아들 내외가 행여 법적인 처벌을 받을까 봐 입을 굳게 다물고 끝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할머니는 로스앤젤레스의 한 위탁시설로 인도된 후에도 계속해서 자신이 실수로 길을 잃어버린 것이지, 아들 부부가 결코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고 쉬지 않고 변명을 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자신의 몸에서 나온 ‘같은 살덩이’라는 생각하시는데, 왜 자식들은 어머니를 자신과는 상관없는 “다른 몸”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예전에도 술망나니 아들에게 상습적으로 매를 맞아서 온몸에 멍이 들었는데도, 자신이 넘어져서 다친 것이라고 끝까지 자신을 탓하던 어머니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또, 사기꾼 아들이 이웃 사람들에게 거액의 돈을 빌려 멀리 도망을 쳤다가 체포된 적이 있었는데, 홀로 남은 어머니가 다 자신이 한 짓이라고 눈물을 흘리며 아들의 선처를 호소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 때 알았습니다! 어머니들은 자식의 문제라면 언제든지 “바보”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 분들입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본능처럼 가슴에 새겨진 그 몹쓸 사랑 때문에 이 땅의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위해라면 언제든지 전혀 사고하지 못하는 “금치산자”(禁治産者)가 됩니다. 아버지의 사랑도 훌륭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사랑에 더 큰 방점을 찍는 이유는 언제나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첫 번째 희생과 사랑을 선사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중범죄자들이 많이 가는 교도소가 “오클라호마 연방교도소”입니다. 대부분이 중 범죄자들이라서 그랬을까요? 교도소 안에서도 언제나 사건, 사고율이 높았다고 합니다. 한번은 교도관들이 묘안을 내서 5월달에 있는 어머니 날(Mother’s Day)을 준비하며 복도에 감사카드를 비치해두고 제소자들이 원하는 대로 카드를 가져가서 어머니께 글을 쓰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갑자기 사건, 사고율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어떤 제소자는 카드를 쓰면서 눈물을 흘리며 소리내서 울었다고 합니다. 교도관들은 기뻐하며 6월달에 있는 “아버지의 날”(Father’s Day)에도 똑같은 결과를 기대하며 아버지께 보낼 감사의 카드를 복도에 비치해 두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반대로 범죄율이 두 배로 높아졌다고 합니다. 어떤 제소자는 “아버지, 그 인간 때문에 내가 여기에 오게 되었다”고 분노하며 치를 떨었다고 합니다. 사랑은 언제나 어머니의 것이 우성인가 봅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의 줄거리를 이끌고 가는 것이 아버지들 같지만, 실제로 배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어머니들입니다. 사라, 리브가, 요게벳, 십브라와 부아, 마리아, 유니스 같은 어머니들의 희생과 헌신이 결국 성경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이끌어갑니다. 이번 주는 어머니 주일입니다. 새 찬송가 578장 “언제나 바라봐도”는 어머니의 대한 깊은 사랑을 애절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바라봐도 늘 보고 싶은 분 / 기쁠 때나 슬플 때 늘 보고 싶은 분 / 모든 것 주시고도 더 주시려는 이 / 어머니 한 분이 외 또 어디 있으랴” “나 항상 거슬려도 다 용서하시고 / 날 웃게 하시려고 어머니 우시네 / 집 떠나 먼 곳에서 나 방황하여도 / 어머니 기도음 성 귓가에 들리네 / 죄인을 구하시려 독생자 보내신 / 그 사랑 알게 하려 어머니 주셨네 / 그 손을 마주 잡고 드리는 예배는 / 천년도 하루같은 즐거운 때 일세 / 어머니 크신 사랑 뉘 감히 알리요/ 안다고 하는 것이 모르는 것이요 / 갚은다 장담해도 못 갚는 것이니 / 내 평생 기도 중에 어머니 부르리”

이보다 더 아름답고 감동적인 어머니 예찬이 과연 어디 있을까요? 어머니가 없으면 우리도 없습니다. 어머니는 곧 나의 몸이며, 사랑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