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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Veritatis Simplex est Oratio (진실의 언어는 단순하다)

“사실(fact)과 진실(truth)은 다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은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나 현재에 있는 일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진실”은 한마디로 “진짜 사실”, 달리 말하면, “거짓이 빠진 사실”을 말합니다. 사실과 진실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우선, 사실은 겉으로 드러난 것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아무리 속마음이나 의도가 달랐다고 하더라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유관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드러난 실제적인 것만이 “사실”의 주 내용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뛰어넘어 마음 속에 있는 진짜 의도까지 다룹니다. 진짜 의도와는 달리 겉으로 들어난 사실은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과 “진실”은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여성이 밤 중에 술에 취해서 길에 쓰러졌는데, 때마침 지나가던 한 청년이 그녀를 병원으로 옮기려고 몸에 손을 댔다가 갑자기 깨어난 여성이 비명을 질러 성추행범으로 입건이 되었습니다. 경찰과 법원에서는 사실에 입각해서 그를 처벌하려고 하지만, 인권단체에서는 그가 원래 의도했던 진실을 따라서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이 경우 외적으로 드러난 사실과 숨겨진 진실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 그리고 실제로 법원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종종 듣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실이라고 믿는 것과는 달리 진실은 이렇습니다.” “진실”의 반대말은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의 반대말은 “거짓”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일어나지 않은 것” 즉, “허구”(虛構)라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허구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마치 일어난 것처럼 가상의 인물이나 상상력을 동원해서 조형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은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났었는지?” 그 “유무”(有無)를 묻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리고 “진실”은 “숨겨진 사실”, 조형되지 않은 본래의 모습을 판가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아무리 실제적으로 일어난 “사실”이라고 해도 무조건 진짜라고 다 받아들일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해서 분명히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거짓이라고 반박할 수도 없습니다.

세상이 날이 갈수록 지능화되고 교묘해지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있었던 “사실”이라고 해도 언제든지 보는 각도와 받아들이는 이해 방식의 차이에 따라서 편집과 조작이 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진실”만 받아들이자고 주장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은 진실보다는 드러난 사실이 더 중요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법(law)과 역사(history)는 주로 사실을 다루는 반면에 문학(literature)과 심리학(phycology)은 언제나 사실보다는 진실에 주안점을 둡니다. 언론(press)이나 과학(science)도 진실보다는 사실에만 관심을 집중합니다. 객관화될 수 없는 진실 따위보다는 모두가 보편 타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화된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에서는 진실이 더 중요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사실보다는 원래의 의도와 숨겨진 속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의 중심을 꿰뚫어 감찰하시고 평가하십니다. 아무리 사실을 잘 조작하고 왜곡해서 자신은 그 사실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모르쇠로 일관해도 이미 진실을 간파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악한 마음을 헤아리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일점일획도 숨겨진 것이 없이 다 드러납니다. 그래서 심판(judgement)이 가능합니다.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교묘하게 사실들을 만들어서 회피하고 모면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결단코 피해 갈 수 없을 것입니다.

신앙인들도 진실을 중요시 여깁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솔로몬의 재판”입니다. 어느 날 솔로몬 왕에게 두 명의 창녀가 자신들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왔습니다. 두 창녀는 거의 같은 시점에 각각 사내아이를 낳았습니다. 어느 날, 한 어미가 자다가 부지중에 자신의 아기를 깔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잠에서 깨었을 때, 자신의 아기가 죽어 있는 것을 보고 깜작 놀랐지만, 그 보다도 방 건너편에서 아기를 안고 평화롭게 잠을 자고 있던 그 동료 창녀의 모습을 보는 것이 더 화가 났습니다. 왜 그 창녀 모자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자기에게만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났는지” 분통이 터져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질투와 분노에 쌓여 자신의 죽은 아기와 그 창녀의 산 아기를 바꿔치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직업이 창녀인지라 아기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아버지만 알 수 있었다면 단번에 아이의 생김새를 보고 친자를 가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불가능 했기 때문에 결국 두 여자는 지혜의 왕이라는 솔로몬을 찾아온 것입니다. 솔로몬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사실에서 답을 찾으려고 했다면, 솔로몬도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진실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병사를 시켜 칼로 아기를 반으로 잘라 두 여자에게 각각 절반씩 나누어 주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자 가짜 어머니는 너무도 “좋은 생각”이라고 솔로몬을 극찬을 했고, 진짜 어머니는 아기를 살리기 위해서 무조건 자신의 “친모권”을 포기했습니다. 진실이 사실을 이긴 것입니다.

사실을 설명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논리가 필요하지만, 진실을 말할 때는 복잡하고 거창한 치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진실은 오히려 가장 적게 꾸몄을 때 더 설득력이 있고, 빛이 납니다. 그래서 “세네카”는 진실의 언어는 단순하다(The language of truth is simple)고 말했습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한 공공 건물을 짓는 일에 두 건축가가 지원을 했다고 합니다. 워낙 비중이 있는 공사였기 때문에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두 건축가 중에서 한 사람은 화려한 수사와 과장스러운 몸짓으로 열변을 토하며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건물의 모든 부분을 세세하게 열거하면서 동원할 장식까지 거창하게 설명했습니다. 그의 발표가 끝났을 때, 옆에 있던 다른 건축업자가 크고 굵은 목소리로 딱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각하! 이 분이 지금 말한 것을 제가 해보이겠습니다.” 두 번째 발표자가 건축의 적임자로 선택되었다고 합니다(라틴어 격언집, 노마드출판사, 191쪽). 그것이 진실입니다. 진실은 언제나 단순하고 강합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