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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7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Multa Cadunt Inter Calicem, Supremaque Labra" (컵과 입술 사이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데키무스 라베리우스”(Decimus Laberius)라는 로마의 마임 작가는 “컵과 입술 사이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Many things fall between the cup and the lip)라는 격언을 남겼습니다. 어느 충직한 하인이 주인의 포도원에서 포도나무를 잘 가꾸었습니다. 그는 많은 소출을 냈고 극상품의 포도주를 짜냈습니다. 흡족했습니다. 그는 주인에게 포도주를 진상하기 전에 먼저 한 모금을 맛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신선한 포도주를 컵에 담아 입술로 가져가려는 순간 갑자기 다른 하인의 다급한 절규가 들려왔습니다. 포도원에 멧돼지 한 마리가 들어와서 포도나무들을 짓밟고 있다는 외침이었습니다. 하인은 곧장 멧돼지를 포도원 밖으로 내어 쫓으려고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달려드는 멧돼지에게 받혀 죽고 말았습니다. 그토록 기대했던 포도주를 한 잔도 마시지 못하고 삶을 접은 것입니다.

세상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끝나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쉬워 보이는 일이라 할지라도 호언장담해서는 안됩니다. 컵에 담긴 음료를 입술까지 가지고 가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렵겠습니까? 그러나 실수로 컵을 놓쳐서 땅바닥에 떨어뜨리거나, 넘어져서 내용물을 쏟을 수 있기 때문에 컵 속의 음료를 입 속으로 삼키기 전까지는 결코 안심하거나 방심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스페인에도 비슷한 속담이 있습니다. “입에 든 떡도 넘어가야 내 것이다”. 프랑스에도 이것과 비슷한 격언이 있습니다. “포도주는 입술과 컵 사이에서 땅에 떨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다잡은 토끼라고 생각해서 마음을 놓게 되면, 자칫 이미 잡았던 토끼들까지도 함께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캔자스 주(State of Kansas)의 수도인 토피카(Topeka)에서 국제 변호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던 한국인 여자 유학생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외국어 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곧 바로 큰 꿈을 가지고 태평양을 건너왔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했던지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녀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백인들이 주로 사는 동네였는데 모든 인종을 초월해서 작고 다부진 그녀를 모두가 “똑순이”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한 이유는 한국에 홀로 계신 어머니 때문입니다. 그녀는 외동딸이었는데 아버지는 일찍이 돌아가셨고, 어머니만 홀로 남아 시장에서 옷장사를 하시면서 근근이 생활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녀는 빨리 졸업을 하고, 국제 변호사가 되어 어머니를 미국으로 초청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녀는 이 목표 만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접고 오직 공부만 몰두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5년 만에 국제 변호사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모두가 혀를 내둘렀습니다. 일주일 후에 허친슨(City of Hutchinson)이라는 곳에서 요식 행위에 가까운 인터뷰만을 남겨 두었습니다. 인터뷰 후에는 그 자리에서 변호사 자격증이 주어집니다. 인간 승리의 전형적인 모델입니다. 며칠 후, 그녀는 이른 아침에 3시간 정도 떨어진 목적지를 향해 차에 힘찬 시동을 걸었습니다. 출발 전에 그녀는 한국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고 합니다. “엄마 기대해요. 이제부터 고생 끝, 행복 시작!”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녀의 이 한 마디가 이 땅에서의 마지막 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고속도로를 주행하던 중에 중간 지점인 “설라이나”(City of Salina)를 지나갈 때, 갑자기 예상치 못했던 폭우가 미친듯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앞이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어서 그녀는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미끄러지는 차와 함께 도로 밖으로 내동댕이쳐져 구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숨을 거둔 그녀의 몸은 제가 목회를 하던 위치타(City of Wichita)로 이동이 되었고 한인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장례식을 치룰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한 줌의 재가 되어 작은 상자 안에 안치되었고, 그토록 사랑했던 한국에 계신 어머니의 품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대성통곡하며 목놓아 우시다가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으셨습니다. 며칠 동안 이 허망하고 절망스런 쳇바퀴를 반복해서 돌리셨습니다. 그녀를 잘 알고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그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깊은 슬픔의 문신이 되어 가슴 속 깊이 새겨졌습니다. 인생이 얼마나 덧없고 허망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힘든 긴 세월을 잘 이겨내고 그토록 소망하던 국제 변호사가 되는 문턱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바로 코 앞에서 운명이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성경말씀 한 구절이 머리속을 사로 잡았습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야고보 4:14).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인생인데, 그 짧은 안개 시간 조차도 한치 앞을 알 수 없으니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초라합니까?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는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컵과 입술 사이”라는 말을 들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삼국지의 영웅호걸 “관우”입니다. 역적이었던 “동탁”의 군대를 섬멸하기 위해 나선 관우는 적의 명장이었던 “화웅”과 일전을 벌이게 됩니다. 대장군이었던 조조는 일개 마궁수에 불과했던 관우에게 술잔을 따라주며 잘 싸워보라고 격려합니다. 무서운 화웅에게 전혀 상대가 안될 것을 너무도 잘 알았기에 기대는 하지 않지만, 적어도 그의 패기를 인정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관우는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술잔이 식기 전에 다시 돌아오겠소!”라는 말을 남기고 불과 30초만에 대장수 화웅의 목을 베어 돌아왔습니다. 모두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순간, 관우는 삼국지 전체를 관통하는 최고의 영웅으로 등극합니다. 그러나 훗날 너무도 역설적이게도 오나라의 손권에게 붙잡혀 회유를 받던 관우는 손권이 건네 준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지 않고 그냥 땅바닥에 쏟아 버리며 자신의 절개를 지킵니다. 그리고 다음날 목이 잘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컵과 입술” 사이에서 영웅이 되기도 하고, 다시 “컵과 입술” 사이에서 유명을 달리하며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그 짧은 순간에 극과 극을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