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칼럼 목록가기

April 25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하나

금슬이 아주 좋은 한 중년 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산책하다가 실수로 발을 헛디뎌 아내가 깊은 연못에 빠졌습니다. 놀란 남편이 급하게 아내를 건지려 노력했으나 고질병인 허리 때문에 꼼짝없이 아내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소중한 아내를 바로 눈앞에서 잃어버렸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습니까? 남편은 앞으로 홀로 살아갈 길이 막막했습니다. 그는 땅바닥에 절버덕 주저앉아서 펑펑 눈물을 흘리며 아내의 이름을 연신 불렀습니다. 그때, 갑자기 연못 한가운데에서 펑하는 소리와 함께 그 연못을 지키는 ‘신령’(神靈)이 나타났습니다. 신령은 남편이 왜 그리 슬피 울고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남편은 일어난 모든 일들을 다 신령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신령은 “잠깐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연못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잠시 후, 신령은 화려한 미모의 금발 여인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녀의 화려한 미모에 남편은 할 말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신령은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이 여인이 너의 아내냐?” 그러자 남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호하게 부정했습니다. “아닙니다. 제 아내는 저렇게 화려하고 잘난 젊은 여자가 아닙니다. 제 아내는 투박하고 볼품없는 조그만 노파이지만, 아주 귀엽고 착한 여자입니다.” 신령은 한참 생각을 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그래! 그러면 잠시만 더 기다려 봐라” 그리고는 다시 연못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몇 분이 지난 후, 이번에는 아담하고 귀엽게 생긴 중년의 깜찍한 여자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신령은 남편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이 여자가 너의 아내냐?”

남편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더 크게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제 아내는 저 정도로 귀엽고 예쁘지는 않습니다. 제 아내는 제가 볼 때 귀엽고 예쁜 겁니다. 저렇게 요정같이 생긴 여자가 아닙니다. 여보, 어떻게 해!” 울고 있는 남편을 바라보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신령이 다시 연못 속으로 들어가더니 이번에는 정말 이 남편의 아내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신령이 “이 여자가 너의 아내냐?”라고 묻기도 전에 두 사람은 달려가서 서로 끌어안고 울면서 다시 만난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본 신령은 감동했습니다. “요즘 세상에 저렇게 정직하고 착한 남편이 어디 있을까! 저 나이쯤 되면 충분히 갈아탈 만할 텐데, 여전히 평생을 함께 살아온 아내만을 구하는 것을 보니 참 기특하고 갸륵하구나.” 신령은 착한 남편에게 큰 선물을 주었습니다. “여기 있는 금발의 미인 여성과 아담하고 깜찍한 예쁜 여성도 너에게 선물로 주노라. 모두 데리고 가서 행복하게 살거라.”

“과연 남편은 아내와 두 여인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한국 전래동화 “금도끼 은도끼”를 현대판 어른 동화로 바꾸어 본 이야기입니다. 주일 날, 설교를 시작하면서 도입부에 이 이야기를 성도들에게 들려주고, “과연 이 두 부부가 행복하게 살았을지” 질문을 했더니, 순식간에 회중이 크게 둘로 나누어졌습니다. 한쪽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고 핏대를 세우며 부인했습니다. 대부분 “아내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쪽은 아무말 없이 조용히 눈을 감고 빙그레 웃으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거의 모두가 “남편분들” 이었습니다. 연세가 많으신 몇몇 할머니들은 묘한 얼굴 표정으로 저를 보면서 “참, 짜내느라고 고생한다!”는 눈길을 보내주셨고, 연세 드신 할아버지들은 “오랜만에 피부에 와 닿는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흐뭇해하셨습니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을수록 좋다는 뜻입니다. 세상에는 많을수록 좋은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당연히 자본을 많이 가진 사람들을 “부자”(富者)라고 부르며 동경해 합니다. 많이 확보하는 것이 곧 힘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귀한 것은 언제나 “하나” 뿐입니다. 둘이 되는 순간, 그 귀한 것은 어김없이 빛을 잃어버립니다. 부부가 귀한 이유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인 아내는 오직 하나이어야 만 합니다. 하나에서 둘이 되는 순간, “깜찍한 동화”에서 “끔찍한 호러(Horror)”로 장르가 바뀌게 됩니다. 어렸을 때, 만년필을 선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너무도 귀해서 특별한 이유가 아니면 잃어버릴까 봐, 잘 가지고 다니지도 않았습니다. 너무도 소중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만년필 선물을 자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만년필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너무 많은 것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언제나 소중한 것은 하나입니다. 말도 그렇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 가장 가까운 것, 그리고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전부 다 한 글자입니다. 밥, 물, 숨, 옷, 잠, 집, 해, 달, 별 … 소중한 것 순으로 한 글자로 부르다가 더이상 붙일 한 글자가 동나자 두 글자를 붙이고, 또 그것이 바닥이 나자, 세 글자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한 글자, 정철 허밍버드)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지은 “어린 왕자”(Le Petit Prince)에는 어린 왕자를 그의 별 B612에서 떠나게 만들었던 시끄러운 불평쟁이 장미꽃이 등장합니다. 어린 왕자는 자존심 강하고, 불평 많고,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이 하나뿐인 붉은 장미꽃을 너무도 사랑했지만, 그녀의 잔소리가 견딜 수 없어서 결국 도망치듯 자기의 별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여러 별을 거친 후에 지구에서 수많은 장미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그곳에서 비로소 깨닫습니다. “이 장미들은 내 장미와 같지 않아. 여기 있는 모든 장미들을 다 합친다고 해도 내 장미는 될 수 없어. 나의 장미는 오직 하나뿐이야”

미국은 여태까지 화성에 탐사우주선을 모두 다섯 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미래를 걱정하며 새로운 행성을 개척하려는 것입니다. 언제고 지구의 모든 자원이 고갈되고, 더이상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서 생존할 수 없는 때가 오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다른 별로 이주를 해야 합니다. 지구와 가장 비슷한 환경을 가지고 있는 별이 “화성”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화성도 지구 환경과는 거리가 멉니다. 주변의 다른 모든 별들이 인간이 생존하기에는 불가능한 여건들 투성이입니다. 먼저, 손봐야 할 것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산소, 물, 태양, 온도 등등 모든 것이 지구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영하 수 백도의 추위를 쫓아내고,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꾸기 위해서 행성 테라포밍(Terraforming)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별의별 기상천외한 방법들을 다 동원해 보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것을 하든지 전부 다 지구에서 조달해가야’ 합니다. 심지어 흙 한 줌에서, 물 한 방울까지 모두 지구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주 과학자들은 은하계의 별들을 탐사하면 할수록 마지막에는 모두 똑같은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삶의 공간은 오직 지구 하나뿐이다.” 마치 또 다른 여분의 행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그동안 지구를 훼손하고 약탈하면서 함부로 대해 왔습니다.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지구를 오염시켜 왔습니다. 이제 지구가 많이 망가져서 피를 토해내고, 이상 증세를 보이게 되자 사람들은 비로소 지구에 대한 뒤늦은 후회와 죄책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공간은 지구 하나뿐이었고, 지금도 그 지구에 살고 있고, 미래의 후손들도 모두 변함없이 같은 지구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지구가 귀한 이유는 하나뿐이기 때문입니다. 귀한 것은 모두 “하나”입니다.

하나라고 생각할 때 사람은 최선을 다해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많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 가치를 놓쳐 버리고, 언제나 뒤늦은 후회의 주인공들이 되고 맙니다. 교회는 어떨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애틀랜타에는 이민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한인 교회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교회가 많이 있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내가 섬기고 사랑해야 할 교회는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여기뿐이냐!”, “내 참 더러워서 다른 데로 간다” “교회는 모두 하나님의 것이고, 그래서 모든 교회는 다 똑같은 것이다” 기분 나쁘고, 자존심 상해서 이런 말을 던지고 교회를 옮길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섬기는 교회는 오직 하나뿐입니다. 본질에 있어서는 모든 교회가 똑같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나” 개인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이 섬기도록 주신 교회는 오직 하나뿐입니다. 개척교회일 수도 있고, 중형교회일 수도 있고, 대형교회일 수도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많을 수도 있고,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은 교회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모양이든지 내가 섬기고 누려야 할 교회는 지금 여러분이 섬기고 있는 그 교회뿐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목회자와 성도들이 있는 나의 교회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곳을 떠나지 마십시오. 그곳에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 할 것입니다. 소중한 것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