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칼럼 목록가기

Apr 21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Aegroto Dum Anima Est Spes Est" (삶이 있는 한 희망이 있다)

로마의 철학자이며 정치가인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의 말입니다. 살다 보면 엄청나게 힘든 일들이 끊임없이 몰려옵니다.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너무 힘이 들 때는 삶의 줄을 놓아버리고 싶은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생명을 포기하지 않으면 언제나 희망이 있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 다시 되돌아보게 되면,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생명의 줄을 끝까지 붙잡는 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희망만 포기하지 않으면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셔서 누구에게나 희망을 주십니다. 단지, 그것을 알지 못할 뿐입니다. 희망을 완전히 놓은 모습이 바로 “죽음”(Death)입니다. 생명은 희망을 먹고 살아갑니다. 희망을 붙잡고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언제든지 다시 기회가 찾아오지만, 희망을 접어버린 사람에게는 두 번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이라는 영국의 이론 물리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영국의 최고 명문대학인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30년 동안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우주론과 천체 물리학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대(大)학자입니다. 그러나 그의 화려한 이력 뒤에는 그것 못지 않은 절망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는 스물 한 살 때부터 치명적인 루게릭 병을 앓았습니다. “앞으로 2년 밖에는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가 일흔 여섯 살을 일기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는 침대에서 손가락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이었습니다. 그가 이런 말을 남겼는데 언제나 뼈 때리는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내 생각에 나의 가장 큰 업적은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인생은 아무리 나빠 보여도 살아 있는 한 누구에게나 희망이 있고, 또 성공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당신의 삶에 항상 무언가의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당신은 해낼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 나를 보라!” (라틴어 격언집, 노마드 출판사 106쪽). 과연, 우리 중에 스티브 호킹 박사 앞에서 인생의 절망을 논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항상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보면, 제우스의 위대한 불을 훔쳐 인류에게 전해 준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프로메테우스는 매일 극심한 추위와 흑암 속에서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는 불쌍한 인간들을 보면서 연민의 정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뒷일은 생각지도 않고 제우스의 불을 훔쳐 가엾은 사람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 사실을 안 제우스는 분노해서 프로메테우스를 갈라진 바위 틈 사이에 끼워 두고 매일 독수리들이 그의 “간”을 파먹게 하는 형벌을 내렸습니다. 고통과 비명 속에서 간이 다 뜯겨져 나가면 죽어야 하는데, 놀랍게도 밤새 찢겨 나간 간이 깨끗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침이 되면 독수리들이 날아와서 또 다시 간을 파먹는 영원한 형벌이 반복 되었습니다. “반복”(repetition)은 제우스가 인간에게 부여한 최고의 천형(天刑)이었습니다.

프로메테우스와 함께 불을 훔치는데 공모했던 동생 에피메테우스(Epimetheus)에게도 잔혹한 형벌이 내려졌습니다. 그의 이름의 뜻은 “나중에 생각하는 사람”이었는데, 그 이름대로, 프로메테우스와는 달리, 두고두고 곱씹으며 고통 받을 수 있는 다른 방식의 형벌이 주어졌습니다. 제우스는 대장장이들의 신이라 불리는 “헤파이스토스”를 시켜 “판도라”(Pandora) 라는 이름의 절세미녀를 창조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신들에게도 명령해서 그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마력을 그녀에게 불어넣도록 했습니다. 제우스는 그렇게 만들어진 판도라를 에피메테우스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예전부터 “제우스가 주는 것은 절대로 받아서는 안된다”는 형 프로메테우스의 간곡한 당부가 있었지만, 에피메테우스는 아름다운 판도라를 보는 순간 얼빠진 멍청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는 사랑에 빠졌고, 판도라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우스는 에피메테우스와 판도라의 결혼을 축복하면서 항아리(pithos) 하나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 안에는 인간을 증오하는 제우스의 악한 속 마음이 듬뿍 담겨 있었습니다. 욕심, 분노, 시기, 질투, 각종 질병 등등의 온갖 사악한 것들이 그 항아리 속에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제우스는 그 항아리를 에피메테우스에게 선물로 건네 주면서 아리송한 말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절대로 이 항아리를 열어보아서는 안된다!” 특히, 판도라는 호기심이 아주 많은 여성이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강력하게 주의를 주고, 절대로 그녀가 찾을 수 없는 곳에 항아리를 숨겨두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하지 못하도록” 금지를 시키면, 목숨을 걸고라도 일을 내고야 마는 인간의 반항심을 자극한 것입니다.

결국, 판도라는 남편 에피메테우스가 집에 없을 때 큰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우리에게 “판도라의 상자”(Pandora’s box)로 잘 알려진, 그 “항아리의 뚜껑”을 열어 젖히고 말았습니다. 순식간에 항아리 안에 있던 온갖 악들이 다 빠져나왔고, 세상은 극도로 험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놀란 판도라는 급하게 항아리의 뚜껑을 닫았지만, 이미 모든 악이 다 빠져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오직 딱 한 개의 항목만 빠져나오지 않고 항아리 속에 남겨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희망”(Hope)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의 말을 어기고 세상에 온갖 악을 퍼뜨린 아내 판도라가 얼마나 미웠겠습니까? 또, 인류는 세상에 나온 악들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겠습니까? 에피메테우스가 두고두고 생각하면서 고통을 받게 하려는 것이 제우스의 사악한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사람에게는 언제나 “희망”이 남겨져 있어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희망이 삶의 뿌리가 된 것입니다.

얼마 전에 암(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가신 성도님 한 분이 극심한 통증과 반복적인 구역질에 시달리면서 저에게 해 준 말이 있습니다. “많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아직 살아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것이 너무도 감사합니다.” 그는 남은 시간 동안 삶을 잘 정리하고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셨습니다. “후회되는 일들”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시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삶을 마감한 것입니다. “살아 있는 한 희망이 있다”(As long as there is life, there is hope)는 말의 의미를 그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던 다윗은 끊임없이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정적들에게 수모를 당하고, 도망을 치면서도 끝까지 하나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고, 이스라엘 왕중의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산 자의 땅에 있음이여 하나님의 은혜 볼 것을 믿었도다.(시편 27:13)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