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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4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거룩한 책임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 남북조 시대에 남조를 다스렸던 양(梁) 나라에 장승요(張僧繇)라는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의 남경에 있는 안락사(安樂寺)라는 절의 부탁을 받아 사찰 벽에 아주 섬세하고 역동적인 네 마리의 용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용들의 눈동자는 그려 넣지 않았습니다. 벽화를 보는 많은 사람들마다 “왜 용들의 눈에 검은 동자를 그려 넣지 않았는지”를 물었습니다. 장승요는 눈동자를 그려 넣으면 용이 살아나서 하늘로 날아가기 때문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의 황당한 말을 들은 사람들이 박장대소하며 장승요에게 핀잔을 주었습니다. “여보게, 말 같은 소리를 하게. 용의 눈에 먹물로 점을 찍으면 용이 살아나서 하늘로 날아간다니 그런 허황된 말을 과연 누가 믿겠는가?” 손가락질을 하면서 비웃자, 기분이 몹시 상한 장승요가 붓을 들어 차례로 용들의 눈에 점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첫번째와 두번째 용의 눈을 완성시키고, 세번째 용의 눈으로 붓을 가져가는 순간, 갑자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늘에서 번개가 일고, 천둥이 치더니 벽이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눈알이 완성된 두 마리의 용이 트림을 하더니 큰 바람을 일으키며 하늘로 승천하고 말았습니다. 놀란 장승요는 붓을 멈추었고, 다행히 두 마리의 용은 승천하지 못하고 그대로 벽화 속에 남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비롯된 말이 “화룡점정” 입니다. 문자적인 의미로는 “용의 그림에 검은 눈동자를 그려 넣는다”는 뜻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어떤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지칭하는 말로 많이 사용됩니다. 최선을 다해 많은 일을 하더라도 마지막 마름질을 잘하지 못하면 결코 완성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의 마름질”을 의미할 때, 이 화룡점정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중국사람들이 하도 허풍이 심하고, 과장을 잘해서 장승요의 용 그림이 정말 그렇게 신묘막측(神妙幕測)했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어떤 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화룡점정의 단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깊은 공감을 갖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마지막으로 그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되었다”(창세기 2:7)는 구절이 나옵니다. 아무리 사람을 잘 만들었어도 그냥 내버려두면 흙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언제고 햇빛이 강하게 내려 쪼이고, 비바람이 불어 치게 되면, 부숴지고 무너져서 다시 흙조각으로 돌아갈 존재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그 흙덩이의 코에 “생명”을 불어넣으셔서 살아있는 존재(living thing)로 만드신 것입니다. 생기를 불어넣는 마지막 단계가 바로 “화룡점정”입니다. 물론, 모든 일의 과정들이 다 중요하지만, 그 과정들을 마무리 짓는 화룡점정은 결코 침범하거나 훼손시킬 수 없는 최고의 가치일 것입니다.

요즘에는 아침에 눈을 뜨면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로운 단어들을 듣게 됩니다. 참으로 온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것을 언어들을 통해 절감하게 됩니다. “대화형 인공로봇”, “챗봇”(ChatGPT), “Open AI” 그리고 “UAV” 같은 최첨단 과학과 연관된 단어들을 너무도 쉽게 생활 속에서 접하게 됩니다. 어렸을 때는 건전지만 집어넣으면 쉬지 않고 가요와 뉴스를 전해주던 라디오가 신기하다 못해 신비로웠습니다. 바로 코 앞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게 만들어 주던 흑백 텔레비전도 기적의 산물이었습니다. 24시간 싱싱하게 먹거리를 지켜주었던 냉장고나 전자 밥통도 놀라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온 세상이 섬찟해할 만큼 기상천외한 발명품들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인공지능 청소기, 스마트폰, PC 감시 모니터 그리고 자동주행 자동차 같은 최첨단 기기와 장비들이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로봇이나 드론을 이용한 전쟁의 모습이 요즘에는 텔레비전을 통해 생생하게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챗봇”이나 “AI”같은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이 나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과 함께 큰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이런 발명품들 때문에 혹시 지구의 종말이 오는 것은 아닌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 잡히고 있습니다.

이제는 매일 사람이 하던 직업을 AI 로봇이 대체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10년 안에 우리가 알고 있는 직업의 2/3 이상이 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뭘하지?”라는 궁금증을 자동으로 갖게 됩니다. 과연 미래의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요즘, 학생들이 학교에서 내주는 과제물들을 자신이 직접 하지 않고 ChatGPT에게 대신 시켜서 가져오는 바람에 학교가 골머리를 썩고 있다고 합니다. 각 기업에서도 업무보고를 회사원들이 ChatGPT를 이용해서 하기 때문에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목사가 주일날 설교를 준비할 때도 ChatGPT에게 명령을 내리면, 기발하고 정교한 원고를 즉석에서 써준다고 합니다. “Chatbot, 내일 부활절 설교 좀 써줘! 묶은 것 말고 신선하고 감동적으로 부탁해요”하고 명령을 내리면, 몇 초 안에 잘 짜여진 설교 원고가 준비된다고 합니다. 어떤 연세 드신 목사님이 “기계는 기계일 뿐, 세상에 그런 물건은 없다” 하시면서 시험삼아 Chatbot에게 설교문을 한번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3초 안에 원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잠시 동안 챗봇이 준비해준 설교문을 자세히 읽으시던 목사님이 푸념하시면서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 나는 끝났네!” 40년 목회 경력을 가지신 목사님이 몇 일 동안 고생하며 준비하셨던 설교문보다 챗봇이 3초만에 만들어낸 설교원고가 훨씬 더 논리적이고, 가슴에 와닿고, 군더더기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비단 교회 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분야에서도 똑같이 경험하고 있는 충격적인 현상들입니다.

얼마 전에 로스앤젤레스에 사시는 성도님 한 분이 전화로 푸념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목사님, 요즘 여기는 약방들(Drug Store)이 다 문을 닫아서 약 사기가 너무 어려워요!” 이제는 굳이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빠르고, 정확하게, 약품을 구입할 수 있는 방법들이 활짝 열렸기 때문에 그 많던 약방들이 서서히 문을 닫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기존의 모든 가치관들을 다 부숴버리려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기존 구조들이 다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번역가, 스포츠 심판, 부동산 브로커, 사진촬영기사, 호텔 안내원 같은 업종들도 이제는 기계로 바뀌어 가는 추세입니다. 얼마 전에 끝난 아시안 컵 축구대회에서는 심판의 오심이 너무 많기 때문에 자주 경기를 중단시키고 “비디오 판독 시스템”(VAR)으로 오류를 바로 잡는 장면들을 보았습니다. 이 “VAR”은 “Video Assistant Referee”라는 말의 약자입니다. “비디오 보조 심판”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보조 심판이 아니라 주심이 되는 날이 금방 올 것입니다. “이제는 사람보다 기계가 훨씬 낫다”라는 생각으로 결혼생활도 로봇으로 대체하는 날이 금방 올 것이라고 합니다. 진력나면 로봇 배우자의 외모도 쉽게 바꿀 수 있고, 또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눈치를 보거나 애교를 떨어야 할 필요도 없고, 성생활도 훨씬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로봇을 선호하는 날이 금방 올 것이라고 합니다.

언제부터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해마다 연말이 되면 다음 해의 소비 트렌드나 관심의 동향을 알려주는 책들이 활개를 치며 팔립니다. 실제로 거의 일치할 때가 대부분입니다. 예전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소비 성향이나 관심사를 일일이 묻기도 하고, 각 기관의 설문조사(survey)를 통해서 다음 해의 판도를 예측하고, 또 키워드를 확정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ChatGPT에게 물어보면 오차 범위까지 정확하게 알려준다고 합니다. 트렌드 코리아 팀을 이끄는 김난도 교수는 2024년도 한국의 소비 트렌드를 AI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AI가 뽑은 8개를 키워드를 보고 개인적으로 안도했다고 합니다. 아직 인공지능이 뛰어넘을 수 없는 사람 만의 영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멋진 미래의 청사진이나 걸작물이라고 해도 “휴먼 터치”(Human Touch)가 있어야만 가능한 부분들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열연했던 영화 “터미네이터”(The Terminator)에서 처럼, 기계가 사람을 지배하고,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에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보았다고 합니다. 따뜻한 사랑과 감성으로 인류를 위해 기계나 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화룡점정은 오직 사람 만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신 복, “즉,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관리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잘 지키고 다스려라”(창세기 1:28) 화룡점정의 이 책임은 사람이 결코 포기하거나 게을리 할 수 없는 사명 중의 사명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삶 속에 거룩한 화룡점정의 책임이 들어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