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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31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깨달음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것들이 아닙니다.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인생 속에 들어와서 “나의 것”이 된 것들입니다. 그리고는 원래부터 내게 있었던 것처럼, 나의 의식 속에 “내 것”으로 깊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내가 너무도 익숙하게 나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자동차도 원래는 나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에 처음 올 때, 한국에서 자동차를 가지고 온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어느 날부터 인지 알게 모르게 내게 다가와 나의 차가 된 것입니다. 집도 그렇고, 일터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그대로 빼 닮은 자식들도 원래는 내게 없었던 것들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놀랍게도 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나와 한 몸이라는 나의 아내도 원래부터 나와 함께 있던 사람이 아닙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의 반쪽”으로 등장한 것 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편하게 사용하는 물건들도 어느 한 순간부터 우리와 연관을 맺게 된 것들입니다. 볼펜, 전화기, 지갑, 안경, 컴퓨터, 시계, 신발, 모두 다 원래는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부터 나의 것이 된 것들입니다.

어떤 분은 자기가 좋아하는 볼펜을 잃어버리고 화를 내시는데, 가만이 생각해보면 결코 화낼 일만은 아닙니다. 원래는 없던 것인데, 언제부터 인지 수중에 갖게 된 것입니다.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기에 언젠가는 다시 잃어버리게 될 물건이었습니다. 그냥 그날이 온 것뿐입니다. 마음을 비워 “원래 내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갖는 연습을 하게 되면, 나중에는 모든 물건에서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예전에 중년의 여성 권사님 한 분이 저 하고 말씀을 하시다가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셨다”고 푸념을 하시면서 하나님을 원망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화 중에 계속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이러실 수는 없다”는 말씀을 반복하셨습니다. 남편 장로님의 사업이 기울면서 많이 속상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거두어 가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동안 그 분들께 당신의 것을 누릴 수 있도록 “은혜로” 허락하셨던 것들입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편하게 누리면서 그것들이 원래부터 당신들의 것이었던 것처럼 생각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 우리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많은 분들은 우리가 태어나면서 유일하게 가졌던 “벌거벗은 붉은 몸뚱이”(赤身)만 우리의 것이고 나머지는 하나도 우리의 것이 없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적신”(赤身) 조차도 나의 것이 아니라, 부모님에게서 받은 것들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은혜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소리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것은 모두 다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조건에서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원망이 아니라, 감사 뿐입니다. 예전에 섬기던 교회에 화재로 인해서 모든 것을 다 잃은 젊은 집사님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 동안 고생하면서 모았던 현금과 각종 패물들이 뜨거운 열기와 함께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아들과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나누었던 아름다운 추억이 담긴 사진들과 비디오테이프 그리고 DVD도 다 불타 버렸습니다. 화마로 인해서 물건 뿐만 아니라, 집사님 가정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꺼번에 다 도난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 내외는 하나님께 감사만 했습니다. 원망이나 불평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도 소중한 아들과 두 딸이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는 바람에 모두 무사했고, 자신들이 운영하는 페인트 공장도 멀쩡했습니다. 언제든지 다시 일어나면 그 뿐이고, 이 화재를 통해서 너무도 값진 교훈을 배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화재로 인해 모든 것이 다 타서 없어지게 되자,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없어도 되는 것”인지를 분명하게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바보처럼 헛된 것에 목숨을 걸지 않고, 정말 소중한 것에만 집중하겠다는 각오를 다지셨습니다. 게다가, 모든 것이 다 타버리면서 없어지게 되자, 비로소 그 동안 자신들이 누려왔던 것들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욕심에 눈이 멀어서 소중한 것과 없어도 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영원한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잊고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진정한 지혜는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지키는 것입니다.인생을 자기 잘난 맛으로 살아가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머리가 좋아서 자기가 “노력하면,”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다고 믿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운명”이나 “팔자” 같은 단어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비겁하고,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의 핑계거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전형적인 “Can-do” Spirit의 청년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야곱”(Jacob)입니다. 그에게는 형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은 “에서”(Esau)였고, 사나이 기질을 가진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회는 오직 장자가 아버지의 모든 권한을 상속했습니다. 재물과 명예와 권위 그리고 가문을 대표하는 영적인 기득권까지 모두 큰 아들의 몫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 이삭(Isaac)이 늙어 죽을 나이가 되자, 야곱은 형의 권리였던 장자권도 빼앗기로 결심합니다. 야곱은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무엇이든 빼앗으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단 한번도 빼앗기는 형의 마음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없어도 되는 것들을 차지하기 위해서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린 똑똑한 바보였습니다.

이삭이 자신의 마지막 시간이 온 것을 알고 큰 아들인 “에서”를 불러 들에 나가 짐승을 사냥해 올 것을 명합니다. 그가 사냥해 온 짐승으로 요리를 해 먹고 에서에게 마지막 축복 기도를 해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이틈을 타서 어머니 “리브가”를 움직여 음식을 준비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음식을 가지고 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가서 형 에서가 받을 기도를 가로챕니다. 앞을 잘 보지 못하고, 귀가 어두워서 잘 듣지 못하는 아버지를 감쪽같이 속입니다. 팔에는 양털 가죽을 두르고, 매 순간마다 에서인 척 말하고, 행동합니다. 형 에서에게 돌아갈 기득권을 교활하게 빼앗습니다. “장자권”이라는 것이 빼앗는다고 빼앗겨지겠습니까? 그러나, 야곱은 그 어려운 짓을 정말로 해냅니다. 한마디로 사악한 동생 놈입니다. 이 일로 인해서, 아버지 이삭은 자기 아들도 구분하지 못하는 노망난 늙은 노인이 되었고, 어머니 리브가는 달랑 있는 두 자식 중에서 한 아이 만 “편애”해서 형을 동생에게 내어준 비정한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형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인생을 말아먹은 성경에 나오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에서는 이 사건 이후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게 됩니다. 부모와의 관계도 망가지고, 결혼생활도 망치고 남은 생애를 천덕꾸러기 같이 살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동생 야곱의 작품입니다.

야곱 자신도 형 에서의 앙갚음이 두려워 정든 집을 떠나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삼촌 라반이 사는 하란으로 도망치게 됩니다. 그는 먼 길을 가다가 “루스”라는 곳에서 노숙을 하게 됩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길거리 한뎃잠을 자는 것입니다. 그는 평평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잠을 청합니다. 인생이 자신의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했던 날입니다. 똑똑하게 잘 사는 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니, 작은 욕심 때문에 너무도 소중한 가족들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날! 잠자리가 불편해서 그랬을까요? 야곱은 그곳에서 심상치 않은 꿈을 꾸게 됩니다. 꿈 속에서 갑자기 하늘과 땅을 잇는 거대한 사다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다리로 수많은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저쪽 사닥다리의 끝자락에 하나님이 서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따라오신 것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고,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분들의 장막에 거하시는 가족의 신(神) 같은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황송하게도 자신과 함께 허름한 길에 계신 것입니다.

놀란 야곱은 꿈에서 깨어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창세기 28:16). 야곱이 하나님을 처음으로 만난 순간입니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 야곱의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여기에, 나와 함께 계신 것을 알지 못하였도다”라는 고백 속에는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그가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담겨 있습니다. 여태까지 자신이 잘 살아온 것은 자신의 꾀와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단지, 그것을 알지 못했을 뿐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자신이 베개로 삼았던 돌을 세워 돌기둥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기름을 붓고, 그 지역을 “벧엘”(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습니다. 자기가 잘나고 똑똑해서 일이 잘 풀려 온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하나님이 옆에 계셔서 도와 주시고, 인도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 순간부터 야곱은 하나님과의 동행을 시작하며 믿음의 선조가 됩니다. 사순절 막바지 기간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간증하고 증언하는 “그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고 경험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