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칼럼 목록가기

Mar 24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Acta non Verba” (말이 아닌 행동)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권모술수와 거짓말을 일삼고 권력이 있는 사람에게 붙어서 선취권을 쥐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일단 논쟁이 일어나고 싸움으로 번지게 되면 언제나 결론은 개싸움이 되고 맙니다. 모두가 상처와 아픔으로 도색된 더러운 세상을 맞이하게 됩니다. 특히 정치와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는 그 정도와 파장이 더욱 심합니다. 과학이나 이성으로 입증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각 종 말들이 난무하게 되고, 비난이 또 다른 비난을 낳으면서 예상치도 못한 최악의 비극으로 끝이 날 수도 있습니다. 조선 영조 때의 학자 김천택은 자신의 시조집 “청구영언”에서 이런 말을 기록했습니다.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말은 결국 행동을 위한 전주곡입니다. 말만 있고 행동이 없다면 그것은 공염불에 불과할 것입니다. “행동하는 신앙”(Faith in Action)이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진실한 것이라면 행동으로 입증하면 될 일입니다.

계몽주의 시대에 독일 문학사의 정금같이 빛나는 사람은 단연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입니다. 그가 활동하던 18세기는 전통적인 교회의 권위나 폐쇄적인 전제 군주의 통치력 보다는 누구나 보편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진리와 이성을 강조하던 시대였습니다. 관념적인 도덕이나 형이상학 보다는 실용적인 상식이나 과학 그리고 이성적인 경험을 중요시 여겼습니다. 그래서 미리 답을 규정하고 사람들을 거기에 꿰어 맞추는 교조주의적인 권위주의 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진보적인 교육과 지성에 많은 강조점을 두었습니다. 이 계몽주의 정신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혁명 또는 사회적인 개혁을 경험했습니다. 영국의 권리장전, 프랑스의 인권 선언 그리고 미국의 독립선언도 이 계몽주의 사상을 밑바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심지어 아이티 혁명을 시작으로 일어난 라틴 아메리카 개혁도 이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정치적, 종교적, 신학적인 이데올로기의 틀에 꽁꽁 갇혀 있던 인간의 이성이 대 해방을 경험한 것입니다.

이 시대에 가장 중요했던 정신은 “관용”(Tolerance)입니다. 서로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다투고 분쟁하기 보다는 서로를 용납하고 관대하게 대해주는 자세가 중요했습니다. 대신에, 자신들이 믿고, 구현하려고 하는 최고의 가치를 이론이나 말로 주장하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삶을 통해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강조되었습니다. 그것이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진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에게 시대적인 이정표가 되어 주었던 가장 대표적인 문학 작품이 “고트홀트 레싱”의 “현자 나단”(Nathan der Weise)입니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은 12세기 예루살렘입니다. 한참, 기독교 십자군과 이슬람교도들이 예루살렘을 서로의 성지(聖地)로 믿고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최대 격전지였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을 지배하고 있던 사람은 이집트와 시리아의 술탄이었던 “살라딘”(Saladin)이었습니다. 그는 온건하고 이성적이었으며, 자비롭고 덕망이 높은 이슬람 군주였습니다. 오히려 탐욕스럽고 무자비했던 십자군 지도자들과 달리 예루살렘의 주민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십자군으로부터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방어하느라고 탈진한 살라딘은 재정난까지 겪으면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유럽 여러나라에서 성공적으로 상업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나단”이라는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살라딘의 부하들은 나단이 재물이 많기 때문에 그의 것을 빼앗으면 모든 재정난이 해결될 것이라고 귀띔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선량한 군주였던 살라딘은 그런 무자비한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나단은 지혜로운 현인으로 정평이 나 있었기 때문에 잘못된 행동으로 민심을 잃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살라딘은 고민하다가 나단을 궁으로 불러 곤란한 질문을 한 후에, 그가 풀이 죽으면 그때 돈을 빌려 달라고 부탁하려 했습니다.

살라딘이 나단을 불러 물었습니다. “자네는 유대교인이고, 나는 회교도일세. 그런데 우리 사이에 기독교인이 있다면, 자네 생각에는 과연 이 셋 중에 누가 참 진리일 것 같은가?” 나단이 직문직답을 피하고 며칠 동안 말미를 얻어 생각한 뒤에 살라딘에게 다시 와서 해 준 이야기가 반지우화(The Parable of Rings)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 동방에 진귀한 반지를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반지는 영롱한 오팔(opal)이 박힌 반지였는데 그것을 손가락에 끼고 있으면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되는 신통력이 있는 반지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반지를 늘 끼고 살았습니다. 어느 덧 시간이 흘러 그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사랑했기에 그 반지를 누구에게 주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는 것처럼, 세 아들 모두가 다 사랑스럽고 귀했기에 이 남자는 결국 반지 세공업자를 불러 자신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은 모조품 반지를 두 개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천문학적인 돈을 주고 똑같이 만든 것이라 아무도 구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죽은 후에 일어났습니다. 아들들이 서로 자신의 반지가 진품이라고 우기면서 싸움이 일어난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재판관에게 갔고, 재판관은 깊이 생각하다가 세 아들을 불러 엄하게 꾸짖었습니다. “너희의 아버지가 너희들을 공평하게 사랑해서 아무도 구별할 수 없게 만든 반지를 왜 나 더러 구분하라고 하느냐? 내가 신이 아닌데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겠느냐? 단지, 이 반지들 중에 진품은 신통력이 있어서 끼면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고 하니 너희들이 사람들에게 그렇게 대우를 받는다면 그 반지가 진짜 아버지의 반지 아니겠느냐?” 이 나단의 “반지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살라딘은 감복하면서 자신의 잔꾀를 사과하고 나단에게 “돈은 빌려주지 않아도 되니 친구가 되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살라딘의 겸손하고 정직한 태도에 감동한 나단도 돈을 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벗이 되었다고 합니다. 나의 말과 나의 주장이 진짜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삶으로 입증하면 그 뿐입니다. 돈의 진폐와 위폐를 감식하는 지폐 감별사들은 하루에도 몇 십 만 장의 진짜 지폐들을 손으로 만지고 오감으로 확인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매일 진짜만 다루다 보면, 가짜 지폐를 쉽게 구별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사람도 자신이 진짜라고 생각한다면 행동으로 진짜 답게 살면 됩니다. 삶이 진짜를 판단해 줄 것입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