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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14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Satius est Initiis mederi quam Fini” (끝보다 처음을 고치는 것이 낫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죽은 뒤에 약을 찾는다는 뜻입니다. 인생은 타이밍이 가장 중요한데 모든 일이 끝난 뒤에 비로소 해결책을 찾으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는 말로도 응용해서 많이 사용합니다.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는 그의 격언집 “아디지아”(Adagia)에서 이 말을 이렇게 풀어 쓰고 있습니다. “끝보다 처음을 고치는 것이 낫다”(It is better to heal the beginning than the ends). 영국 속담에서는 “제 때의 바늘 한 땀이 아홉 땀을 덜어낸다”고 말하기도 하고, “부상당한 뒤 방패를 찾은 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는 격언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위중한 병이라도 제때 치료를 받으면 고칠 수 있지만, 이미 병이 깊어진 뒤에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고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집을 다 지은 뒤에 물을 떠 온다”는 말로 적절한 시간과 시기를 놓치지 말 것을 권면합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언론인 중의 하나인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이 쓴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From Beirut to Jerusalem)에 보면, 한 베두인 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노인이 칠면조를 먹으면 몸에 좋다는 말을 듣고 칠면조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도둑이 들어 이 칠면조를 훔쳐가고 말았습니다.

이 노인은 아들들을 불러 칠면조를 도둑 맞았으니 빨리 칠면조를 다시 찾으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아들들은 아버지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그까짓 칠면조 한 마리가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난리이십니까? 그것을 찾는데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다 허비하란 말입니까?” 아들들이 아버지의 말을 무시한 며칠 후, 이번에는 낙타를 도둑 맞았습니다. 이제는 상황이 조금 심각해졌습니다. 당황한 아들들이 아버지에게 이 사태를 보고하자 노인은 아들들에게 똑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빨리가서 칠면조를 다시 찾아와라” 그러나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 어디에서 칠면조를 다시 찾겠습니까? 아들들이 난감해하고 있을 때, 이번에는 비싼 말을 도둑 맞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아들들에게 똑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빨리가서 칠면조를 다시 찾아와라”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이번에는 이 노인의 외동 딸이 납치되어 강간을 당했습니다. 노인은 아들들을 불러 모으고 말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칠면조 때문이다. 도둑이 처음 나의 집에서 칠면조를 훔쳐 갔을 때, 우리가 찾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대담하게 우리의 모든 것을 훔쳐갈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 사소한 것을 가볍게 여기면, 나중에는 큰 것을 잃을 수 있음을 가르쳐 주는 이야기입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기 전에 빨리 바로 잡지 않으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큰 재앙에 빠지게 됩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출발한 초대교회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타락의 길을 걷다가 결국 16세기에 이르러서는 종교개혁이라는 뼈아픈 수술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탄생한 개신교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망가지더니 100년이 지나기도 전에 개혁의 주체에서 개혁의 대상이 되는 아픔을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독일의 신학자 “한스 큉”(Hans Küng)은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est)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예전에 위 절제 수술을 받은 권사님이 있었습니다. 당뇨가 너무 심해서 의사의 권유를 받아 멀쩡한 위장을 잘라낸 것입니다. 언뜻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당뇨와 위(胃)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요? 이분이 음식 먹는 것을 너무 좋아하셔서 당 수치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은데도 계속 먹는 것에 집착하시자 결국 의사 선생님이 극단의 조치를 하신 것입니다. 위장은 참 건강하셨지만, 몸이 너무 비대하고, 고혈압과 고지혈증으로 이미 많은 장기들이 심각하게 망가진 상태였습니다. 주변에서는 이 분에게 “걸신”(乞神) 들렸다고도 하고, “걸귀”(乞鬼)에 씌었다고도 했습니다. 심각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은데도 도무지 식탐을 조절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심정으로 큰 수술을 단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병의 출발점이 어렸을 때 잘못 길들여진 식습관 때문이었습니다. 항상 밤 늦게 음식을 먹고, 단 것과 기름진 것을 유독 좋아했습니다. 처참한 수술 후에 권사님은 항상 “그때, 바로 잡았어야 했다”는 말을 늘 되 뇌이셨습니다. 처음에 바로잡지 못하니까, 결국 나중에는 위 전체를 잘라내야 하는 혹독한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것이든지 고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개인의 습관도 그렇고, 공동체 전체의 문화나 사회구조를 바꾸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끊임없는 노력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처음에 바꾸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큰 아픔과 상처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남이 나를 바꾸게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에게 주님께서 주신 사명은 땅끝까지 이르러 주의 증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행 1:8). 그러나 교회가 이 사명을 망각하고, 교회 안에서 여러가지 갈등과 분열 회복에만 집중하게 되자, 주님께서는 교회 외적으로 큰 박해의 소용돌이를 일으키셔서 교회를 산산이 흩어 버리셨습니다(행 8:1).

이로 인해, 교회의 지도자들에게만 의존하던 신앙생활이 소규모 공동체들 중심의 증인 공동체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복음 증거의 대상도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으로 그리고 기독교 역사의 중심 축도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그리고 다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하는 로마를 거쳐 온 세상으로 뻗어가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모든 것을 다 잃은 후에 수동적으로 바뀌어 가기보다는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바꾸어 가는 것이 더 유효할 것입니다. “끝보다 처음을 고치는 것이 낫다”(Satius est Initiis mederi quam Fini) 다시 한번 깊이 되새겨 볼 말입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