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깁니다. 아니, 이름만 남깁니다. 아무리 대단한 학식과 권세와 재물을 가졌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일단 죽으면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소유할 수 없습니다. 남는 것은 오직 이름 뿐입니다. 생전에 아무리 대단하고 요란한 삶을 살았어도 죽은 후에 좋은 이름을 남기지 못한다면, 결코 잘 산 인생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름은 곧 기억입니다. 아름다운 기억은 그의 뒤를 이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도전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되고,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름은 곧 영향력이기도 합니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虎死留皮人死留名)라는 속담은 곧 영향력을 의미합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라는 말처럼, 사람은 반드시 자신이 살던 주변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들풀도 그 자리가 비게 되면 공허감을 남겨줍니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아무런 영향없이 증발해버린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하루가 멀다하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깡통을 들고 구걸을 하던 거지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동네 사람들이 불편해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그분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사람들은 궁금해하고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그에게 변고가 일어난 것입니다. 반 세기 50년이 훨씬 지난 후에도 제가 그 거지 아저씨에 대해서 여전히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떤 사람이든지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영향을 미칩니다. 어떤 이름은 향내를 내고, 또 어떤 이름은 악취를 풍깁니다. “이순신”이라는 이름처럼 두고두고 후세의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이름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이완용”처럼 대를 이어 혐오스럽게 기억되는 이름도 있습니다. 이름이 곧 “그 사람”입니다. 결국 남는 것이 이름 뿐이기 때문에 모두가 감동할 수 있는 이름을 남기겠다는 마음으로 산다면 결코 후회하지 않을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주는 것이 이름입니다. 1960년대 후반까지는 의료시설이 발전되지 못했기 때문에 단명(短命)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름을 멋있게 지으면 귀신이 그 이름을 탐내서 빨리 저승으로 데리고 간다는 미신(迷信)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똥이, 개똥이, 돌쇠, 언년이 같은 천박한 이름들을 지어주었습니다. 이름이 험악할수록 장수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경우는 대부분 자녀들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작명소를 찾아가서 많은 돈을 주고 이름을 짓기도 하고, 가정에서 가장 권위가 있는 어른이 이름을 지어 주기도 했습니다. 존경하는 분에게 부탁을 하기도 하고, 평소에 마음에 담아두었던 예쁜 이름을 자녀에게 붙여 주기도 했습니다. 모든 이름에는 그 이름의 뜻대로 자녀가 멋지게 살아 주기를 바라는 부모님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있습니다.
어떤 장로님이 자신의 딸 아이가 훌륭한 믿음을 가진 성도로 자라기를 바라면서 “신자”(信者)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장로님의 성이 김씨였기 때문에 딸의 이름은 “김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배”씨 성을 가진 남자와 결혼을 하는 바람에 그만 남편의 성을 따라 “배신자”로 바뀌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미국에서 신학교를 다닐 때 이름이 “블랙 화이트”(Black White)인 백인 남성이 있었습니다. 성이 화이트이고 이름이 블랙이었는데 헷갈릴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화이트라고 부르면, 자기를 앞으로는 블랙으로 불러 달라고 불쾌하게 말했습니다. 아직 영어가 낯설던 때라서 종종 그분을 “미스터 블랙”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그때는 “미스터 화이트”라고 불러 달라고 정색을 하면서 말을 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이 친구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 “화이트인지, 블랙인지” 고심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름이 꼬이면 본인 스스로도 힘들겠지만, 부르는 사람들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이 바로 그 존재의 모든 형상을 대변하는 현주소가 됩니다. 이름을 떠올리면 곧 바로 그 존재의 모습과 성격 그리고 삶의 모습까지 고스란히 복기 되어 떠오릅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사람 “아담”에게 하나님이 첫번째로 부여하신 임무는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아담에게로 보내셨고 아담은 그들에게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이름을 붙여주는 그 순간, 그들은 비로소 이 땅의 존재로서 등록이 되었습니다(창세기 2:19). 창조의 시작은 하나님이 하셨고, 그 마침표는 사람이 찍을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름이 곧 그가 살아가게 될 사명이기도 하고, 그가 살아온 삶의 모습이기도 하고, 평생 감당해야할 운명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만나시는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이름을 물어보시고, 그의 이름이 당신의 뜻에 적합하지 않으면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 사라, 야곱 그리고 베드로와 바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바뀌었고, 그러자 그들의 운명도 바뀌었습니다.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름 하나 만으로는 부족했는지 호, 아호, 별명, 예명, 애칭, 필명, 가명 같은 여러 이름들을 사용합니다. 이름이 촌스러워서 중간에 바꾸기도 하고, 연예인이나 정치인 같이 공인(公人)이 되면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 일들도 비일비재합니다. 알게 모르게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과연 그 이름에 걸맞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나보다는 남들이 더 많이 불러주는 나의 이름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면서 삶의 모습을 다잡는 시간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이름이 당신의 운명입니다(Your name is your destiny).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