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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11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갈렙(Caleb)이 그립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한 아이가 학교에서 지리시간에 “5대양 6대주가 무엇인지 알아오라”는 과제를 받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언제나 바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숙제를 물어볼 수가 없어서 고심하다가 사랑방에 늘 홀로 계신 할아버지에게 가서 여쭈어 보았습니다. 항상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아서 속상했던 할아버지는 손자가 와서 “5대양 6대주”가 무엇인지 물어봐주니 고맙기 그지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도 배운지가 오래되어서 5대양이 무엇이고, 6대주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할아버지는 손자 윤구에게 언제까지 숙제를 해야하는지 물으신 후에 며칠동안의 말미를 받아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결국 답을 적을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생각하실 때에 ‘5대양은 다섯 개의 큰 양’이라는 뜻이니, 쉽게 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첫번째 양은 뭐니뭐니해도 얼굴이나 몸매가 뛰어나서 동네 할아버지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룸살롱의 강양’ 이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양은 말주변이 좋은 ‘단란주점의 김양’, 세번째 양은 언제나 생동감이 넘치는 ‘포장마차 집의 박양’, 네번째 양은 노래를 구성지게 잘 부르는 ‘노래방의 이양’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섯번째 양은 조금 등급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아직은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지하다방의 조양’ 이었습니다. 아직은 분별력과 기억력이 있어서 5대양에 대한 답을 쉽게 얻을 수 있었던 할아버지는 자신의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6대주’였습니다. 6대주는 5대양 보다 하나가 더 많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지끈거리는 머리의 관자놀이를 두 손으로 비비면서 정신을 집중해서 한가지씩 답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첫번째 주(酒)는 당연히 온 국민의 전폭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는 ‘소주’였고, 두번째 주는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누구나 즐겨 마시는 ‘맥주’, 세번째 주는 돗수가 조금 높은 ‘고량주’, 네번째 주는 친구들과 함께 반주로 마시면 딱 좋은 ‘포도주’ 그리고 다섯번 째 주는 너무 비싸서 좀처럼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없는 ‘양주’를 적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 개가 모자랍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할아버지는 용기를 내서 오랜기간 동안 서민들의 마음을 달래 주었던 ‘막걸리’라고 답을 적었습니다.

조금 시간은 걸렸지만, 일목요연하게 적은 답을 보면서 할아버지는 흐뭇한 마음으로 한 마디 했습니다. “나, 아직 죽지 않았어!” 손자는 할아버지가 적어주신 시험지를 들고 당당하게 학교로 가서 선생님께 제출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적어 주신 답을 본 선생님은 아연실색하며 아이를 불러 물었습니다. “윤구야, 누가 이 답을 알려 주었니?” 그러자 윤구는 자랑스럽게 “우리 할아버지요”하고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은 윤구 집에 전화를 해서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아니, 윤구 할아버님, 이게 웬일입니까? 5대양 6대주를 적어오라니까, 이게 뭡니까? 게다가 ‘막걸리’는 또 뭔 소리입니까?”

기가 막혀서 말을 잘 잇지 못하는 선생님에게 할아버지가 미안해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고! 선생님, 죄송합니다. 늙으면 다 이렇습니다. 6대주를 써야하는데, 아차하고 그만 ‘막걸리’라고 썼습니다. 용서하십시요. 막걸리가 아니라, ‘탁주’입니다.” 점입가경의 할아버지를 보면서 선생님은 말문이 막혔습니다. 누군가가 웃자고 만든 유머이겠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생산적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하기 보다는 이전에 자기가 알고 있던 것들로 삶을 채우려고만 하는 유혹을 받게 됩니다. 세상은 빨리 돌아가고, 그 시간의 공백을 채우지 못하는 노인들은 안타깝게도 젊은 세대들에게 무시를 당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구약성경을 차례로 읽어 내려가다 보면, 여호수아에서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한 노인을 만나게 됩니다. 85세라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비겁한 젊은이들을 부끄럽게 만들며 쩌렁쩌렁 사자후(獅子吼)를 발하는 인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족히 4,000년 전의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뛰고 흥분이 됩니다. 그의 이름은 ‘갈렙’(Caleb)입니다. 그는 성경에 별로 언급되지 않은 인물이지만, 항상 이스라엘 공동체가 무슨 큰 일을 당하게 되면, 언제든지 나타나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는 청량제와 같은 사람입니다. 암울한 현실이나 나쁜 조건에도 결코 메이지 않고, 언제나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으로 답을 찾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됩니다.

모세의 지도 아래, 출(出)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데스바네아’ 지역에 이르렀을 때,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들어갈 12명의 정탐군을 각 지파 별로 뽑게됩니다. 그 때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유다 지파의 대표가 바로 갈렙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10명의 사람들은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보고를 해서 가뜩이나 막막하고, 암울한 현실에 놓인 이스라엘 공동체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습니다.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센 그들 앞에서 우리는 메뚜기와 똑같았다. 이제 다 죽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희망찬 보고를 했습니다. “과연 그 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만한 땅이었다. 모든 것이 비옥하고 좋았다. 그 땅은 분명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고 예비하신 땅이 맞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정탐 보고는 좌절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도전과 희망의 길을 열었고, 결국 온 백성들이 힘을 합쳐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을 이끄는 명실상부한 지도자가 되었지만, 갈렙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갈렙이 그렇게 된 이유가 이방인 출신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민수기 32장과 여호수아 14장의 말씀에 보면, 갈렙을 소개할 때마다 문신처럼 따라 다니는 관형사가 있습니다. ‘그니스 족속’입니다. 그니스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그들을 따라 함께 나온 주변의 잡족, 곧 에돔 족속의 일부입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주변의 이방민족들에 대해 관용적인 정책을 취했던 “유다 지파”에 흡수 되었습니다.

이 출신성분 때문에 항상 갈렙을 소개할 때는 “그니스 사람”이라는 말이 따라붙었습니다.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 어찌 보면, “이 사람은 우리 이스라엘의 원래 종족이 아니다”라는 선긋기처럼 느껴집니다. 그가 영원한 2인자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그리고 45년의 세월이 흘러 모세는 이미 죽었고, 여호수아가 그의 뒤를 이어 명실상부한 최고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입성해서 수많은 전쟁을 치뤘고, 이제 땅을 분배해야 하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큰 문제는 이제부터 였습니다. 아무도 선뜻 자신들의 지파를 위한 땅을 선택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잘못하면 영원히 후회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합니다.

목숨을 걸고 이방민족들과 싸울 때는 하나가 되었지만, 정작 그 결과물인 땅을 나눌 때는 편협한 이기심에 사로 잡혀서 아무도 나서지 않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좋은 땅을 차지 하려고 선취권을 주장하게 되면 망신을 주어 밀어내려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의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분열의 아픔을 겪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때, “저 산지를 지금 내게 당장 주소서” 외치면서 나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갈렙입니다. 많은 세월이 흘렀고, 이미 85세의 노인이 된 갈렙은 여전히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지금의 헤브론 땅인 “기럇 아르바”를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그 옛날 모세가 자신에게 주기로 약속했던 땅입니다. 헤브론 땅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비옥한 땅입니다. 산지에 있으면서도 물이 풍족한 곳입니다.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입니다. 그런 곳을 요구했으니, 이 또한 이기심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곳은 전쟁의 강한 용사들, 거인 아낙 자손의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과연 그들에게 도전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도 일찌감치 마음을 접은 땅입니다. 그런데 갈렙이 그 땅을 요구하고 나선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신과 유다 지파는 땅 분배에서 지분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입니다. 그의 호령에 다른 모든 지파의 사람들은 이기적인 마음을 접고, 땅 분배 싸움을 멈추었습니다. 모두가 숙연해졌고, 여호수아는 미안함과 동시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갈렙과 유다 지파를 축복하고, 점령 불가능한 땅, “헤브론”을 내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땅은 훗날 갈렙의 외침과 비전대로 유다의 땅이 되었고, 미래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지났어도 갈렙처럼, 호령하는 가슴 뜨거운 노인들이 있어야 이 젊은이들의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아직도 내가 강건합니다. 그들이 아무리 강하고 견고할지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우리는 저 산지를 차지할 것입니다. 저 산지를 지금 당장 내게 주소서!” (수 14: 11~12)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