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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0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Festina Lente” (천천히 서두르라)

세상에는 서로 다른 뜻을 가진 말들이 함께 쓰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슬픈 미소, 침묵의 절규, 텅빈 충만, 비폭력의 폭력 같은 서로 모순된 말들이 절묘한 결합을 이룹니다. “Festina Lente”도 “천천히”(Lente)와 “서두르라”(Festina)는 서로 부딪치는 두 단어가 함께 섞여 사용된 말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학자였던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는 수많은 라틴어 문구 중에서 이 말을 좋아해서 자신의 격언집 “아다지아”(Adagia)에 우선적으로 선별해서 집어넣었습니다. 이 격언은 원래 로마의 첫번째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Augustus)의 인생 좌우명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옥타비아누스 (Octavianus)로 더 잘 알려진 아우구스투스는 “안토니우스” 그리고 “레피두스”와 함께 소위 제2차 삼두정치를 통해 로마를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수많은 로마 안의 정적(政敵)들과 숨막히는 긴장 관계 속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외부의 적들을 토벌해야만 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았던 옥타비아누스는 항상 진중하면서도 주도면밀하게 계책을 세우고, 전광석화같이 빨리 일을 처리해야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천천히 서두르라”(Festina lente)는 원칙으로 로마 정국을 안정시키고 번영과 풍요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또, 이 “천천히 서두르라”(make haste slowly)는 격언은 350년 동안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르네상스 운동을 이끌었던 메디치 가문의 모토이기도 했습니다. 금융업으로 엄청난 떼돈을 번 메디치들에게는 급변하는 시대상황과 긴박한 정치 권력의 흐름을 진중하게 간파하면서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빨리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탁월한 감각 능력을 갖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이처럼 “Festina lente”는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호소력을 지닌 말이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세계 어느 민족들보다 속도감이 뛰어난 민족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항상 “빨리” 달성합니다. 한국의 또 다른 국호가 “빨리빨리”라고 말할 정도로 한국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서둘러 성취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 신호등이 아직 빨간 불인데도 절반 정도는 이미 도로에 내려와서 기다리고 서 있습니다. 컵라면에 물을 붓고 적어도 5분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 짧은 시간을 가만히 기다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변기 앞에 서기도 전에 대부분의 한국 남성들은 바지의 지퍼를 이미 절반은 내리고 있습니다.

미국 중부 캔자스 주에 살 때, 동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설치 작업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십년 정도를 살았는데 그 기간 내내 쉬지 않고 도로공사를 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라면 도로 보수공사를 여러 번 했을 기간이고, 조금 과장하자면 충분히 도로철거를 시작했을 기간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배달업을 하는 음식점들이 호황을 누렸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많은 한국 음식점들이 호황을 누렸다고 합니다. 음식을 주문한지 얼마 지나지도 안았는데 너무도 빨리 오토바이로 음식을 배달하는 종업원에게 아주머니 한 분이 신기해서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오세요?”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 종업원은 딱 한마디로 질문의 정곡을 찔렀습니다. “우리는 배달의 민족입니다.”

배달 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든 일을 빨리 처리하는 부지런한 민족입니다. 좋은 점도 많이 있지만, 반대로 그로 인해서 생기는 실수도 적지 않습니다. 빨리 행동하면 먼저 점유하고 주도권을 쥘 수 있지만, 반대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계속 생겨나서 쉽게 일을 그르치는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격언 중에 “일언전십사”(一言前十思) 라는 말이 있는데, 한마디 하기 전에 먼저 열 번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말이든 행동이든 현실로 옮기기 전에 항상 깊이 생각해보라는 조언입니다. 모든 것이 빨리 흘러가는 시대 속에서 생각과 행동의 간격을 맞춰가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숙제가 될 것 같습니다.

한번은 타주에 살고 있는 저의 큰 아들이 자기 회사에서 주관하는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애틀랜타에 왔습니다. 잠깐 틈을 내어 아버지, 어머니를 만나보려고 저희 집에 왔습니다. 효심이 강한 아들이라 고맙기는 한데, 괜히 실수를 할까봐 걱정이 됐습니다. 우리 두 부부가 행여 아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어 연신 늦지 않도록 빨리 돌아가라고 아들을 채근했습니다. 하지만 아들 놈은 늦장을 부리면서 최대한 우리와 함께 있고 싶어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집을 나서는 아들에게 걱정스럽게 한마디 건넸습니다. “아들아, 천천히 서둘러서 가!” 저의 애매한 말에 아들은 헛헛한 웃음을 남기고 천천히 떠났습니다. 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담긴 말은 참 어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