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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uarary 17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가장 소중한 것

박은서 작가가 지은 “소중한 사람에게 주고 싶은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소녀가 도쿄의 어느 호텔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신출내기 사회 초년병입니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업무는 화장실 청소였습니다. 이 호텔은 신기하리만치 화장실 청소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 호텔에 유명한 화장실 청소의 좌우명(Motto)이 있었는데, “오늘 새로 설치한 변기처럼 항상 깨끗하게 닦아라”였습니다.

화장실을 담당하는 직원은 변기 안까지 손을 넣어서 구석구석 깨끗하게 오물을 닦아야 했습니다. 냄새가 아주 역겨웠고, 여기 저기에 붙어 있는 대 소변의 파편을 손으로 일일이 닦아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음으로는 열심히 해보겠다고 다부지게 결심을 했지만, 막상 일을 할 때마다 구역질이 나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번은 변기를 닦다가 매스꺼움을 참지 못하고 입을 틀어 막고 밖으로 뛰어나가는데, 때마침 화장실로 들어오던 호텔 선배 여성과 딱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선배 여성은 전후 사정을 다 짐작하는 듯,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조용히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던 “쇠 수세미”를 빼앗아서 그녀를 데리고 화장실로 갔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직접 변기를 닦는 시범을 보였습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소녀가 감탄할 정도로 정말 최선을 다해 변기들을 아주 깨끗하게 닦았습니다. 방금 전에 갓 만들어진 변기인 양 타일이 반짝반짝 빛이 나고 윤기가 흘렀습니다. 변기 청소를 마친 이 여자 선배는 주머니 안에 있던 손수건을 꺼내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갑자기 바가지로 변기 속의 물을 떠서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아, 시원하다!”하는 탄성과 함께 변기 청소의 휘날레(finale)를 장식했습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소녀는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그 선배는 후배 직원에게 단지 보여주려는 목적으로 과도한 코스프레(cosplay)를 한 것이 아니라, 정말 아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일상생활의 한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물 맛을 즐기는 그녀를 보면서 소녀는 인생을 다시 한번 배우게 되었습니다. 백 마디의 말이나 잔소리 보다도 마음이 담긴 한번의 행동이 더 효과적이고 유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선배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이 소녀에게 “변기를 항상 새 것처럼 닦고 관리하라”는 호텔의 경영철학을 직접 행동으로 가르쳐 준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호텔의 최고 으뜸 계명을 후배에게 가르쳐 준 것입니다. 선배의 모습에 감동한 소녀는 그날 아주 많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평생 변기를 닦는 일만 하게 되더라도, 반드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전문가가 되겠다고 굳게 다짐을 했습니다.

그날부터 소녀는 몸과 마음을 다해 변기를 항상 새 것처럼 닦았습니다. 물론 자신도 갈증을 느끼면 변기 속에서 물을 떠서 꿀떡꿀떡 마시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호텔 안에서 가장 사명감이 강한 사람으로 부각되었고, 훗날 일본의 “우정상” 이라는 높은 관직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녀가 바로 “노다 세이코”(野田聖子)라는 일본 최초의 여성 상급 관리입니다. 변기 하나 같은 작은 것까지도 전문가처럼 최선을 다해 관리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통해 일본 최고의 재상 자리까지 올라 간 것입니다. 우리는 사소하게 보이거나, 개인의 것이 아닌 공공의 것에 대해서는 등한시하고 소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영향을 미칩니다. 작은 것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이 큰 일이라고 해서 최선을 다 할리 없고, 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작은 것이라고 해서 결코 소홀하게 다루지 않을 것입니다. 으뜸과 딸림은 높낮이의 개념이 아니라,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는 보완의 관계입니다.

어느 날, 율법에 통달한 서기관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이 땅의 율법과 계명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율법에 으뜸되는 것이 어디 있고, 무시해도 되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두 다 중요하지요. 당시, 율법은 613개 정도로 잘 규격화 되어 있었고, 이것은 십계명을 통해 두 그룹으로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제1계명부터 제4계명까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지켜야 할 계명들이고, 제5계명부터 제10계명까지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지켜야 할 계명들입니다. 이 두 가지가 전체 율법의 큰 틀입니다.

이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율법사가 예수님께 어떤 계명이 으뜸 계명이냐고 묻는 것은 질문을 통해서 예수님을 곤란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든지, 아니면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예수님과의 논쟁을 통해서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던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의 검은 속내를 너무도 잘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께서는 시원하게 율법을 다시 정리해 주셨습니다.

“첫째는 내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둘째는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은 율법을 다시 한번 둘로 정리하여 주신 말씀이고, 십계명을 당시의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맞게 풀어 주신 말씀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이것이 우리 신앙의 가장 중요한 두 뿌리입니다.

항상 어떤 일을 하든지 이 두 계명을 염두에 두고, 윤리와 행동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 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에게 질문을 던진 율법사를 향해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도 가서 그와 같이 하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아는 것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한다는 것은 전인적인(holistic) 노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너의 모든 것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의 이웃을 네 몸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라는 것도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다해 사랑하라는 뜻입니다.제가 병원에 가서 수술을 준비하는 환우들을 위해 기도할 때면, 빼놓지 않고 꼭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다. “집도의사”를 위한 기도입니다. “자기 몸을 다루는 것처럼 환자를 잘 다룰 수 있도록 사랑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의사가 자기 자신을 수술하는 것처럼 환자를 수술한다면, 성공과 실패의 여부를 떠나서, 수술의 결과가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지금도 감동적인 순간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로스앤젤레스에서 목회를 할 때, 간 이식 수술을 세번째로 받던 성도님을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고통과 두려움에 잔뜩 질려 있던 아픈 성도님의 부탁으로 저는 수술실 입구까지 집도의사 선생님과 함께 이동용 침대를 밀고 갔습니다. 환자는 저에게 마지막 기도를 부탁했고, 저는 의사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수술실 입구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먼저, 환자를 위해 한국어로 뜨겁게 기도를 드렸고, 그 옆에 있던 의사 선생님을 위해서도 그가 잘 들을 수 있도록 영어로 또박또박 힘주어 기도를 드렸습니다. “의사 선생님에게 지혜와 건강을 주셔서 한 가지도 놓치지 않고 잘 수술하게 해주시고, 자기 몸을 수술하는 것처럼 최선을 다해 수술하게 해달라”는 약간의 압력이 담긴 기도(?)였는데, 놀라운 것은 그 권위있는 의사 선생님이 바른 자세로 눈을 감고 저와 함께 기도를 드린 후에 “아멘”하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우면서도 고마운 순간 이었습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사람에게 치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자동차에게 치이면 시간이 지나면 회복이라도 되지만, 사람에게 치이고 나면 시간이 갈수록 더 고통스럽고, 견디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번은 사람들이 싫어서 사람을 멀리하기로 결심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목사이다 보니 사람을 멀리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한국의 국회의원도 아니고 마음에도 없는 미소를 지으면서 살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목회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랑 없이 설교를 하면, 아무리 설교를 잘해도 잘 꾸며진 거짓말일 뿐입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나누는 성찬과 세례 예식이 아니라면, 그것은 위선과 기만으로 가득 찬 허튼 몸짓에 불과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모든 것이 다 “쑈”(Show)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내가 사는 길”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장 작은 것이면서도 가장 큰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웃 그리고 나 자신을!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