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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0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생각의 차이

고릴라와 침팬지는 사람과 같은 유인원(類人猿)이라고 합니다. 염색체의 구조가 단지 2%만 다르고 모든 것이 다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 2%의 차이 때문에 고릴라와 침팬지는 동물원 우리(cage) 안에 있고, 사람은 우리 밖에 있습니다. 2%의 차이가 곧 생각의 차이 입니다. 사람의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입니다. “지혜롭고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사람이 지혜로울 수 있는 이유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동시에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도 깊은 자기 반성(self-reflection)과 성찰을 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또, 사람은 생각할 수 있기에 다른 동물들이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는 영적인 세계에도 관심을 갖습니다. “종교적인 사람”(Homo religious)으로 성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이 곧 사람입니다. 생각이 사람을 사람 되게 하고, 생각의 범위와 수준이 곧 그 사람의 참 모습입니다. 생각을 바꾸면 모든 것이 다 바뀝니다. 생각이 모든 환경과 감정을 규정하고 지배합니다.

어떤 부인이 남편에게 금반지를 생일 선물로 받았습니다. 번쩍번쩍 빛나는 무거운 순금 반지입니다. “정말 결혼을 잘 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남편은 항상 다정다감하고 매사에 변함이 없습니다. 때마침, 그 다음 날이 모이기로 약속한 “여고 동창회”입니다. 남편이 사준 멋진 금반지를 끼고 나갔습니다. 어떻게 든 자랑을 할 요량으로 눈치를 보며 기회만 엿보고 있었습니다. 음식을 주문하고 나서 잠깐의 공백이 있을 때, 그녀는 놓치지 않고 그 자리에 모인 친구들에게 손을 뻗어 금반지를 자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네번째 손가락에 툭 불그러져 나온 금반지를 보고 친구들이 환호하며 부러워했습니다. “어머, 너 정말 결혼 잘 했구나, 부럽다!” 여기저기서 찬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남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이 “뿜뿜” 뿜어져 나왔습니다. 이 많은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체면을 세워준 남편이 너무도 자랑스럽고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맞은 편에 앉아있던 학창시절의 라이벌인 “밉순이”가 양 미간을 찌푸리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한 마디 했습니다. “친구들, 여기를 좀 보세요! 나도 며칠 전에 남편에게 약소하나마 이 반지를 선물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손등을 높이 들어 반지를 보여주었는데, 놀랍게도 손가락에 더 큰 순금 반지가 끼워져 있었고, 금반지 정 중앙에 엄지 손톱만한 다이아몬드가 “퍽” 박혀 있었습니다. 그 순간 날카로운 비수가 날아와 그녀의 가슴에 박히는 듯했습니다. 이번에는 그녀의 입술에서 남편에 대한 원망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등신! 반지 중앙에 빛나는 것 좀 박으면 누가 잡아가나, 쫌생이 같으니라구!”

남편은 바뀐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자신의 형편과 처지에 맞게 그리고 변치 않는 자신의 사랑을 담아 아내에게 반지를 선물한 것 뿐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 반지 때문에 천당과 지옥을 왔다리 갔다리 한 것입니다. 생각이 바뀌면, 시각이 바뀌고, 시각이 바뀌면 감사도 언제든지 원망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생각이 모든 것을 규정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시는 권면의 말씀이 나옵니다.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는 것입니다. 뜨뜻미지근하게 살아가는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결단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안약을 눈에 넣으라는 말은 눈을 뜨라는 소리이고 곧 생각을 바꾸라는 요구입니다.

생각을 바꾸면 모든 것이 다 바뀝니다. 예전에 섬기던 교회에 큰 십자가 탑이 있었습니다. 미국 본토에 처음 세워진 교회의 100주년을 기념하는 탑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언제나 그 탑 앞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수동 카메라로 어떤 분의 사진을 찍어 드리다가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그 분에게 초점을 맞추니까 십자가가 불투명해져서 잘 보이지 않게 되었고, 반대로 십자가 탑에 초점을 맞추니까 그 분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생각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서 정반대로 보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스라엘 성지를 여행하는 것을 상당히 오랫동안 꺼려했습니다. 성지 순례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일부러 피했습니다. 자칫하면 믿음에 혼란이 올 것 같아서 그렇게 했습니다. 우주보다도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중근동의 작은 나라 이스라엘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셔서 갈릴리라는 작은 동네를 배경으로 사역하시다가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근본적인 믿음이 흔들릴 것 같아서 였습니다. 신앙의 고백으로는 잘 정리가 되더라도 자칫 눈 앞의 현실로 성경말씀을 보게 되면 뜻밖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성지순례를 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곤란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다소 염려 속에서 함께 성지 순례를 떠났는데, 아니나 다를까 마음 속에서 많은 물음이 생겼습니다. 한강보다 작아 보이는 갈릴리 바다에 너무도 익숙한 수많은 도시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습니다. 디베랴, 막달라, 게네사렛, 가버나움, 벳세다, 거라사, 벧세메스, 고라신 등, 성경에 등장하는 웬만한 도시들이 전부 한 군데 모여 있었습니다. 실망스러웠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조막만 했습니다.

“이 작은 지역이 우리가 사는 넓은 세상을 대표한다고?”

안내하시는 분의 설명을 들으며 함께 움직였는데,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마치 성경에 끼워 맞추려는 시도처럼 보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그런데, 권사님 한 분이 해맑은 얼굴로 저에게 오셔서 한 말씀해 주셨는데, 그 말이 저의 모든 생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목사님, 저는 성지 순례 참 잘 온 것 같아요. 매 순간 순간이 은혜입니다!” 그 권사님의 상투적인 말씀을 듣는데 갑자기 짜증이 났습니다. 도대체 뭐가 은혜라는 것인지? 그래서 뭐라고 대답을 하시는지 보려고, 제가 권사님께 조금 삐딱하게 질문을 드렸습니다. “권사님, 뭐가 그렇게 은혜가 되셨어요? 저도 좀 알려주세요. 가시는 곳마다 관광지 기념품만 열심히 사시던데!” 그러자 권사님이 눈을 감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밟고 서 있는 땅이 그 옛날 예수님께서 태어나셔서, 자라시고, 말씀을 전하러 다니셨던 곳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감격스럽습니다. 행여, 어느 지점에서는 예수님의 발자국과 제 발자국이 서로 겹쳐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감동이 되서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가슴이 뛰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고, 설명과 논리로만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 권사님의 말씀을 들은 이후로 저는 성지순례를 간 것에 대해서 늘 감사했습니다. 세상에 몇 명이나 예수님이 사셨던 그 땅을 밟을 기회를 갖겠습니까? 생각을 바꾸니 모든 것이 다 기쁨이고 감사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이 참 신기해서 조금만 크게 생각하면 온 우주를 담을 만큼 크고 넓지만, 반대로 마음을 조금만 옹졸하게 닫으면 콩알 하나 들어갈 틈도 없습니다. 마음을 넓히는 것은 곧 생각을 여는 길입니다. 생각을 닫아버리면 도무지 견딜 수 없는 힘든 일들 때문에 생지옥을 경험하게 되지만, 반대로 생각을 크게 열면, 세상에 못 받아 들일 일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생각을 바꾸는 영적인 작업입니다. 편협하고 옹졸한 생각으로부터 십자가 마저도 기쁨으로 달게 지셨던 주님의 생각으로 자리 바꿈 하려는 노력입니다. 언제나 자신의 이득과 욕심 만을 추구하던 이기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을 먼저 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곧 신앙생활입니다. 생각의 차이가 우리를 멋진 신앙인으로 만들어 줍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