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에 만드라불루스(Mandrabulus)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엄청난 보물이 묻혀 있는 광산을 발견하고 너무 기뻐서 헤라 신전에 황금 양을 바쳤습니다. 그는 엄청난 보물을 보면서 해마다 이 정도의 제물은 헤라 신에게 쉽게 바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만드라불루스는 씀씀이가 헤펐습니다. 이미 많은 재물이 보물창고에서 시나브로 빠져나갔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그 다음 해에는 은으로 제물을 드리고, 그 다음 해에는 동으로 제물을 드렸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보물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기쁨과 감동이 식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나중에는 매년 드리던 제물을 야마리없이 건너 띄게 되었습니다.
한문에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말이 있습니다. 용의 머리에 뱀의 꼬리라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아주 거창하고 대단하게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잘것없는 뱀의 꼬리로 끝이 난다는 뜻입니다. 살다 보면 용두사미로 마감되는 일들이 부지기수입니다.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라는 말도 비슷한 의미의 뜻입니다. 중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태산이 흔들릴 만큼 큰 울림이 있어서 놀라 나가보니 고작 쥐 한 마리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요란하고 거창하게 시작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 별 볼 일 없는 몸짓으로 끝날 때 흔히 이 말들을 사용합니다.
처녀가 아기를 낳아도 핑계가 있다는 말처럼, 우리는 하려고 했던 일들을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포기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시간적인 이유, 경제적인 이유, 관계의 이유 그리고 아직 때가 아니라는 핑계를 대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원래 계획했던 것들을 축소하거나 백지화합니다. 이런 일들이 너무 많아서 그럴까요? 세상의 많은 지혜자들은 “물은 깊을수록 소리가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계획을 떠버리지 않는 것이 지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스페인의 최고 지성이라고 불리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사람을 지배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계획을 끝까지 지키기가 어렵기에 나온 말들입니다.
새해를 맞아서 여러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건강을 위해서 술과 담배를 끊겠다던지, 마지막 기회로 알고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보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한 해 동안 열심히 운동을 해서 체중을 줄이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했습니다. 자칫 자신만의 해프닝으로 끝이날까 주변 사람들에게 시키지 않은 공언을 하면서 난리를 쳤습니다. 그런데 한달도 지나지 않아 결국 만드라불루스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큰 변화가 일어날 것처럼 난리를 피웠는데, 역시 결과는 예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러다가 인생 전체가 후회와 아쉬움으로 끝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어떤 권사님 한 분이 이번 새해에는 체중을 20파운드 줄이겠다고 다짐을 하셨습니다. 몸이 부니까 피곤하고 병이 많아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매년 초에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젊었을 때도 줄이지 못했던 몸을 노년에 무말랭이처럼 말린다는 것이 쉽겠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무리하지 말고 매일 아침마다 “국민체조”를 시작해 보시라고 권해드렸습니다. 유투브 채널에 들어가서 “국민체조”라고 입력하면 그 옛날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반강제적으로 해야 했던 정겨운 국민체조를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아침 수업을 시작하기 바로 직전에, 학교 전체가 터져 나갈 듯한 큰 소리로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지던 소리가 새롭습니다. “국민체조, 시작!”
당시에는 대부분의 개구장이 아이들에게 이 국민체조 시간이 짜증스러운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두 손을 높이 들었다 내렸다, 머리를 좌우로 비틀었다가 몸을 양쪽으로 꺾기도 합니다. 나중에는 놀란 망아지처럼 펄쩍펄쩍 뜁니다. 가뜩이나 공부 안하고 까불까불 놀면서 심한 몸 장난에 익숙했던 우리들에게 그런 로봇 같은 어색한 몸짓을 국민체조라는 이름으로 시키니 기분 좋을리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건성건성 따라했다 가는 무서운 체육선생님에게 치도곤을 맞게 됩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따라하면서 몸과 생각을 분리하는 유체이탈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제는 그 시간도 아련하게 그립습니다.
저도 요즘에는 아침마다 국민체조를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만나는 국민체조는 예전과 아주 많이 다릅니다. 앉고 일어설 때마다 별이 번쩍번쩍 보이고, 심지어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이 보이기도 합니다. 앉고 일어설 때마다 무릎에서 사기그릇이 빠각빠각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납니다. 그래도, 제일 큰 문제는 허리입니다. 이미 딱딱하게 굳어서 조금만 움직임이 커져도 “우두둑우두둑” 대들보 부러지는 소리가 납니다. 어느 동작 하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저절로 진땀이 나고 헛웃음이 나옵니다. “이제 나도 한물갔구나!” 푸념이 절로 나옵니다.
그 옛날 우리 선생님들이 아직 뼈도 여물지 않은 팔랑개비 같은 아이들에게 왜 그렇게 국민체조를 시키셨는지 반 세기가 지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이 다음에 나이가 들었을 때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좋은 운동 습관을 넣어주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어른들의 지혜가 놀라울 따름입니다. 조금 힘이 들었지만 천천히 몇 주 따라해 보니 몸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게 이렇게 대단한 것이었구나!” 매일 입 주문을 외우면서 생기를 회복합니다. 큰 병이 나서 후회하기 전에 작은 체조부터 조금씩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하는 것이 만드라불루스의 전철을 밟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벌써 2023년의 첫번째 달이 지나고 두번째 달을 맞이 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작은 것부터 다시 시작하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