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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4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Imi Subsellii Viri (가장 낮은 의자에 앉는 자)

이 격언은 경멸과 조소의 의미가 담긴 말입니다. 높은 자리일수록 앉는 의자의 쿠션이 푹신푹신하고 안락합니다. 등받이도 높고 두텁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높은 분들의 자리는 앉기만 해도 잠이 저절로 쏟아질 정도로 편안하고 좋습니다. 그리고 그 밑의 말석으로 내려 갈수록 의자의 재질이나 품질이 점점 떨어집니다. “가장 낮은 의자에 앉는 자”(Imi Subsellii Viri)라는 말은 지체 높은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나눌 때 맨 끝자락에 준비된 자리를 일컫는 말입니다. 보통 이 자리에는 식사의 흥을 돋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초대된 어릿광대나 기술자들, 폭삭 망한 귀족 가문의 사람들, 그리고 심지어는 모욕을 줄 작정으로 초대를 한 천민이 된 관료들에게 배정이 되었습니다. 물론 의자는 쿠션이 전혀 없는 딱딱한 나무 의자였고, 등받이도 없었습니다. 잘못 엉덩이를 움직였다가는 굴러 떨어지기 십상인 부실한 의자였습니다. 이 자리에 앉는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치욕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고대 로마의 시인이었던 “데키무스 유베날리스”(Decimus Iunius Iuvenalis)는 특정한 사람을 불러 이런 자리에 앉히는 것은 치욕스러운 가혹 행위라고 꼬집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높은 상석에 앉아 권위있게 음식을 먹던 사람을 “가장 낮은 자리로” 보내서 음식을 먹게 하고, 대화하게 만드는 것은 당시의 최고 권력자가 밑에 있는 신하들을 굴종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자주 사용하던 통치술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높은 자리에 앉고 싶어합니다. 높은 자리에 앉으면 마음껏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높은 자리에서 짊어져야 할 책임이나 부담보다는 누리게 될 특권에 더 많은 관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유년시절부터 끊임없이 높은 자리에 앉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남보다 더 공부를 잘해야 하고, 특별한 재주도 많이 갖추어야 합니다. 소위, 스펙(Spec) 쌓기를 합니다. 미국에서 청소년 시절부터 높은 자리와 낮은 자리를 확연하게 구분해 주는 때가 “졸업식”입니다. 가장 앞 자리에 앉는 사람들을 “숨마 쿰 라우데”(summa cum laude)라고 부릅니다. 최고 성적 우수자에게 수여하는 상(賞)입니다. 보통 2~5%에 해당되는 학생들에게 이 영예가 주어집니다. “summa”는 “최고”를 뜻하는 형용사이고, “cum”은 “함께”라는 의미의 전치사입니다. 그리고 “laude”는 “영예, 영광”이라는 뜻의 명사입니다. 그러니까 “숨마 쿰 라우데”는 “최고의 영예와 함께”라는 찬사의 말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자리에 앉는 사람들에게 수여되는 상이 “마그나 쿰 라우데”(magna cum laude)입니다. 마그나(magna)라는 단어의 뜻은 “위대한”(great), “큰”(big)이라는 뜻입니다. 보통 졸업자들 중에서 10~15%까지의 학생들이 이 범주에 들어갑니다. 그 다음에 앉는 자리는 그냥 “쿰 라우데”(cum laude)인데, 우리 말로 “우수상”에 해당됩니다. 30%까지의 학생들이 이 우수상을 받습니다. 이들은 다른 졸업생들과는 다른 자리에 차례대로 앉게 됩니다. 목에는 노란색의 줄이 자랑스럽게 주렁주렁 걸려 있습니다. 그들의 자리는 그들이 이미 다른 평범한 학생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식입니다.

자리에는 언제나 그 사람의 정체성이 담겨 있습니다. 매 주일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오시는 분들을 보면 항상 같은 자리에 앉습니다. 앞 자리에 앉는 분들은 언제나 앞 자리에 앉고, 뒷자리에 앉는 분들은 늘 뒷자리를 찾아 앉습니다. 신기하게도 오른쪽 열에 앉는 분들은 언제나 오른쪽에 앉고, 왼쪽 열에 앉는 분들도 항상 왼쪽에 앉습니다. 그래서 어떤 성도가 그 주일에 출석을 했는지 안 했는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 주에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교회에 오시지 않았더라구요!”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사님, 쪽집게시네요!”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자기가 항상 무의식 중에라도 그 자리에 앉는 것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한번은 예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큰 싸움이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권사님 한 분이 자기가 늘 앉던 자리에 앉으려고 가보니 딴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새로 출석하신 분인 것 같은데, 감히 황금자리를 넘본 것입니다. “여보세요, 여기 제 자리입니다. 딴 자리로 가시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먼저 자리를 잡은 분이 퉁명스럽게 말을 받았습니다. “아니, 여보세요. 아무 데나 앉으면 되지, 내 자리, 네 자리가 어디 있습니까? 기분 더럽네” 그 다음부터는 어떤 대화가 오고 갔을지 금방 유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 교회를 나왔던 분은 기분이 상해서 아예 다른 교회로 자리를 옮겼고, 자기 자리를 주장하던 권사님도 기분이 몹시 상해서 몇 주 동안 교회에 오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자리 하나에도 목숨을 거는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높은 자리를 추구하지만, 은혜와 감동은 언제나 낮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위나라에 “오기”(吳起)라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는 병법에 아주 탁월한 재능이 있는 지략가였습니다. 어느 날, 전쟁 중에 부하들의 막사를 둘러보다가 등허리에 종기가 나서 죽어가던 병사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등허리에 고름을 짜 주어야 하는데 문제는 전쟁 중이라, 의사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등창을 손으로 잘못 짰다가는 괜히 더 심각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오기 장군은 누워 신음하던 병사의 등허리 종기를 자신의 입으로 빨아서 고름을 빼 주었습니다. 그 높은 분이 자신의 집으로 손수 고름을 빨아주었다는 이야기가 모두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병사의 어머니가 좋아하기는 커녕 땅을 치면서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병사의 아버지도 전쟁터에 나가서 등창 때문에 죽어가다가 오기 장군이 입으로 고름을 빨아주는 바람에 살아나서 전쟁에 나아가 죽기 살기로 싸우다가 전사했는데, 이제 아들 마저도 은혜를 갚겠다고 분명히 목숨걸고 나가서 싸우다가 죽을텐데, 꼼짝없이 남편도 잃고, 또 아들도 잃게 되었다고 통곡을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온 고사성어가 “연저지인”(吮疽之仁)입니다.

높은 위치의 장수가 일개 낮은 사병 하나를 위해서 “입으로 종기의 고름을 빨아주는 어진 마음”을 보여주었다는 뜻입니다. 자기 낮춤이 언제나 감동을 선사합니다.

다음 주부터 대강절(Advent)이 시작됩니다. 대강절은 성탄절 4주 전부터 시작해서 성탄절 이브에서 끝이나는 기독교의 절기입니다. 성탄의 기쁨과 감동은 언제나 대강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천하디 천한 짐승의 여물통으로 강림하신 날입니다. 자기 낮춤의 극치를 보여주신 날입니다. 마구간, 가축들, 냄새나는 목자들, 그리고 동쪽에서 온 이방인 천문학자들! 모두가 생소하고 낮선 표현들의 연속입니다. 하나님은 그분 수준의 모습으로 거룩하게 이 땅에 강림하신 것이 아니라, 거의 짐승 수준의 비천한 모습으로 당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성탄의 현장에서 배제된 존재가 아무도 없게 하셨습니다. 비천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보잘 것 없는 동물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예외없이 구원의 은총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늘에는 영광이요 이 땅에는 구원함을 입은 모든 존재들의 기쁨이 되게 하셨습니다. 일류 고급 호텔이나 화려한 계층의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성탄행사에는 참다운 성탄의 감동이 없습니다. 성탄은 언제나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기다리는 낮은 자리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은총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천대받는 “낮은 자리”(Subsellium)가 아기 예수님이 오신 자리입니다. 우리에게 큰 울림과 떨림을 주는 자리입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