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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15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Fuctu non foliis arborem aestima (잎이 아니라 열매로 그 나무를 평가하라)

사람들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겉 모습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화려한 옷차림이나 번지르르한 외모 그리고 현란한 말 솜씨로 모든 것을 가늠하려고 합니다. 또, 학벌이나 사회적 지위 그리고 가문이나 인맥으로 어떤 사람의 가치와 무게를 판단하려고 합니다. 물론, 관계 중심적인 세상에서 이런 요인들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외적인 것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태도는 지극히 어리석은 짓입니다. 정말 사람을 판단할 때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삶의 모습”입니다. 주변 사람들의 말이나 평가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재해석 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됨됨이는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삶의 모습에서 맺어지는 열매가 반드시 판가름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마다 풍겨 나오는 삶의 품격과 향기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맺은 삶의 열매 속에서 풍겨 나오는 결과물들입니다. 나무의 정체는 잎사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열매로 판단합니다. 사람도 겉모습이 아니라, 삶의 모습으로 그 사람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과일의 품질을 향상시키고, 병충해를 막고, 소득을 늘이기 위해서 종종 다른 나뭇가지들을 접목시킵니다. 예를 들면, 고욤나무에 감을, 능금나무에 사과를, 복숭아 나무에 살구를, 돌배에 배를, 그리고 찔레에 장미를 접목시킵니다. 그러면 더 개량된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맺혀지는 열매에 따라서 그 나무를 부르는 이름도 바뀌게 됩니다. 여전히 같은 자리에, 같은 모양으로 존재하는 “고염나무”라고 해도, 그 나무를 통해 결실하는 열매가 크고 탐스러운 감(persimmon)이라고 한다면, 그 나무는 이제 더 이상 고염 나무가 아니라, 감 나무입니다. 나무의 생명은 열매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시골에서 과수원을 경영하시던 이모님이 계셨습니다. 무척 가난하게 사시다가 어느 날 용기를 내서 시골로 낙향하셨습니다. 그리고 버려진 “돌배” 과수원을 헐값으로 구입하셨습니다. 몇 년 동안 죽을 고생을 하며 노력하시다가 씨알이 아주 굵은 서양의 “배”를 구해다가 돌배에 접목을 시켰습니다. 몇 년 뒤 크게 성공하셔서 엄청난 재산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획기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매년 전국 각지에서 특이한 향을 가진 크고 탐스러운 양배를 구입하러 수많은 농산물 업자들로 모여들었습니다. 과일 나무는 결실하는 열매로 말을 합니다. 열매가 과일 나무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중형 사이즈의 백인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젊은 담임 목사님의 설교가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는 나뭇가지 두 개를 가지고 나와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첫번째, 나뭇가지를 성도들에게 보여주면서, “이 나무가 무슨 나무의 가지인지 알겠느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푸른 잎사귀가 무성했는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나뭇가지 만으로는 도무지 그 나무의 정체를 알 수 없었습니다. 결국, 성도들이 “잘 모르겠다”고 답변을 하자, 그는 똑같은 나뭇잎이 잔뜩 달린 다른 나뭇가지를 높이 들어 보이면서 똑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앞의 나뭇가지와 차이가 있다면 두번째 나뭇가지에는 노란 귤들이 잔뜩 달려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나뭇가지에 달린 귤을 보고, 단번에 “귤나무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귤 나무인지 알았느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귤이 잔뜩 달려 있는데, 어떻게 귤나무인지 모를 수가 있겠냐?” 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은 “여러분들이 열매를 보고 귤 나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던 것처럼, 사람도 그의 삶의 열매를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단번에 그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하고 말을 해주었습니다. 참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설교였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에 나오는 “산상수훈”(Sermon on the Mount)의 말씀에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태복음 7: 15~20) 소위, “선목선실, 악목악실”(善木善實, 惡木惡實)의 진리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시키지 않아도 선한 나무는 선한 열매를 맺고, 악한 나무는 악한 열매를 맺습니다.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도 분명합니다. 말이 아니라, 그의 삶을 보면 됩니다.

한국에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신안 앞 바다에 있는 작은 섬에서 첫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그 때까지 서울의 도시에서만 살다가 처음으로 내려간 외진 섬마을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동네에 무화과 나무가 많이 있었는데, 성경책에서만 보고 들었던 무화과 나무를 육안으로 직접 보게 되니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무화과”(無花果)라는 말은 “꽃이 피지 않고 열매가 맺히는 나무”라는 뜻입니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꽃이 피는 과정이 없이 어떻게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오랜 시간 섬에서 지내면서 무화과 나무를 자세히 살펴보니, 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봄부터 여름 동안에 주머니 모양의 씨방을 먼저 만들고, 그 속에 수도 없이 많은 작은 꽃들을 활짝 피우는데 문제는 볼 수 없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징그러울 정도로 많은 꽃들이 열매 속에 잔뜩 들어 있었습니다. 무화과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처럼, 무화과는 꽃보다는 열매가 매력적인 과일나무 입니다. 이집트의 여왕이었던 클레오파트라가 매일 즐겨 먹었기 때문에 “여왕의 과일”로 잘 알려진 무화과는 풍부한 당분과 식이 섬유를 많이 함유한 과일입니다. 겉모습은 보잘 것 없지만, 맛은 그 어느 과일보다 뛰어나고 매력적입니다. 무화과는 꽃을 피우는데 관심을 갖는 나무가 아니라, 열매를 맺는데 최선을 다하는 나무입니다. 무화과 나무가 매력적인 이유입니다.

우리는 말이 난무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과학의 폭발적인 발달과 온 세상을 하나로 엮는 매스컴(mass-communication)의 혁명적인 확산으로 인해 온 세상이 수많은 정보와 지식 그리고 다양한 말거리들을 함께 공유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지구촌 전체가 하나가 된 것처럼 느껴져서 좋은 점도 있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수많은 가십들(gossip)과 스캔들(scandal) 중에서 어떤 때는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악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일단 나쁜 소문을 터뜨려서 퍼뜨리게 되면, 이미지가 손상되기 때문에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을 퍼뜨리다가 나중에 “아니면 말고” 하는 식으로 접어 버립니다. 그러나 그 상처는 고스란히 피해자의 몫이 됩니다. 요즘 자주 듣는 속담 중에 하나가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Flamma fumo est proxima)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무슨 신줏단지 모시듯이 신봉합니다.

그러나 이 말 때문에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유명을 달리 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인간이라는 동물들은 더욱 더 간악해져갑니다. 그러나 - 그럼에도 불구하고 - 진실을 아는 방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그들의 화려한 말이나 거짓된 모습을 보지 말고,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방법을 보는 것입니다.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만 보면, 그들의 번지르르한 말이 얼마나 위선이고, 거짓 덩어리인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Fuctu non foliis arborem aestima”(잎이 아니라 열매로 그 나무를 평가하라).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