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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7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Si beatus es, deo gratia age! (그대가 행복하다면, 하나님께 감사하시오!)

사람은 누구나 익숙해지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당연하게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질병입니다. 처음에는 감동하고 고마워하던 것도 몇 번 반복되면 무덤덤하게 받아들입니다. 처음 생일 선물을 받을 때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더라도 매년 반복되면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실수로 건너 뛰게 되면 오히려 섭섭해 하고 속상해 합니다.

밥을 세번 사면 고마워합니다. 그러나 네 번째로 밥을 사는 것을 잊고 그냥 건너 뛰게 되면, “왜 오늘은 밥을 안 사냐?”고 질책하듯 말합니다. 주일마다 교회를 가기 전에 교통편이 없는 이웃에게 차량 봉사를 해 주려고 조금 먼 길이지만 돌아서 그의 집을 둘러 차에 태워 함께 교회로 갔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급한 일이 있어서 양해를 구하고 그를 태우러 가지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차 하나 가지고 더럽게 유세를 떤다”고 여기저기에 악담을 퍼뜨립니다. 사람은 같은 일을 세번 만 반복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그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은혜”라고 생각했던 것을 “권리”로 “당연시”하게 됩니다. 매사를 당연시 하게 되면 처음에 가졌던 기쁨과 감동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처음에는 감사했는데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감사는 사라지고, 본래부터 자신에게 주어지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오히려 그 일이 멈추는 순간부터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게 됩니다. 그것이 사람의 본성인가 봅니다.

모든 일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신기하게도 세상에는 감사할 일이 아무 것도 없게 됩니다. 거의 대부분의 일들이 “대가”를 주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 됩니다. 음식점에 식사를 하고 나올 때도 굳이 주인에게 “감사하다”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공짜로 먹은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내 돈을 내고 내가 먹은 것입니다. 게다가 팁(tip)까지 얹어 주었으니 내가 감사할 일은 더더욱 없습니다. 머리를 깎을 때도, 물건을 살 때도, 그리고 각 종 서비스를 받을 때도 전부 다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가를 지불한 정당한 거래들입니다. “당연하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교회에서는 몸이 건강한 것도 감사하라고 가르칩니다. 무사고로 하루하루를 잘 지내는 것도 감사하라고 합니다. 자녀들이 착하고 부지런한 것도 감사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매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런 것들은 자기의 수고와 노력의 결과로 인해서 생긴 당연한 결과들입니다. 감사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자녀가 공부를 잘하고, 운동을 잘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에게 우수한 두뇌와 체력을 전수해준 자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충분한 뒷바라지를 해 준 결과이기도 합니다. 감사는 내가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식들이 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을 당연시하게 되면, 세상은 금방 삭막한 사막이 되고 맙니다. 매사를 당연시 하는 세상 속에서는 “감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세상 속에서는 원망과 불평만이 있을 뿐입니다. 감사는 윤활유와 같습니다. 빡빡한 세상을 잘 돌아가게 만드는 촉매제입니다. 메마른 땅을 기름진 옥토로 바꾸는 신선한 단비입니다. 재미없는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행복의 열쇠입니다. 감사는 고난과 어려움도 기쁨으로 바꾸는 마술의 주문입니다. 그 옛날 초등학교 시절에 봄에 소풍을 가게 되면, 거의 대부분의 어린 학생들은 밤 잠을 설쳤습니다.

당시에는 국가 전체가 가난해서 그랬는지 소풍을 가야만 풍성하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싸온 음식을 함께 나누며 마냥 즐거워 할 수 있는 감사의 시간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마치 합의라도 본 것처럼 대부분의 학생들이 점심 도시락으로 김밥을 싸왔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나무 도시락에 맨 밥과 김치를 담아오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때에는 어떤 모양으로든 공평한 나눔이 있었습니다.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은 이 집, 저 집에서 싸온 김밥을 골고루 집어 먹었고, 자신의 맨 밥 도시락을 부끄러워 하는 아이들의 도시락도 거리낌 없이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뭘 집어먹어도 뒤돌아 서면 또 배가 고팠습니다. 아이들의 뱃속에 거지들이 살던 시대였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칠, 팔 명씩 원을 그리고 둘러 앉아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한 아이가 사이다를 한 병 가지고 오면, 모든 아이들이 환호성을 올리며 그를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병 주둥이에 입을 대고 돌려 가면서 한 모금 씩 나누어 마셨습니다. 톡 쏘는 사이다 맛의 청량감이 너무도 좋았습니다.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개구장이 아이들의 얼굴이 싱글벙글 했습니다. 처음으로 사이다를 한 모금 들이키는 아이는 물론 그 사이다를 가져온 주인입니다. 앞에 있던 몇몇 아이들은 순수한 사이다 맛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뒤로 갈수록 아이들의 입에서 내뿜어져 나오는 밥알들 때문에 사이다 맛이 변질되었습니다. 톡 쏘는 맛은 사라지고 설탕물에 가까운 김빠진 식혜가 되었습니다.

병 속에는 온갖 총 천연색의 부유물들이 떠다녔습니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모든 것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인생이 매일 소풍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경제가 발전하고 국가가 잘 살게 되면서 오히려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요즘에는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멋진 장소를 방문하기도 하고, 기가 막히게 맛있는 것을 먹는데도 불구하고 행복해하는 아이들이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불편하다고 하소연을 하고, 심지어는 소풍이나 단체행동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도 아주 많아졌습니다. 풍요로움이 결코 감사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됩니다.

이제는 지구 온난화 현상과 생활 수준의 발전으로 인해서 김장을 담그는 집들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곳곳에 많은 편의시설들이 세워져 있기 때문에 김치도 언제든지 사다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이 맘 때쯤 되면 집집마다 서로서로 도와주며 김장을 담궜습니다. 추운 겨울이 되어 땅에 묻은 항아리 안에서 꽁꽁 얼어붙은 김치를 칼로 조금씩 떼어 다 먹었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추운 겨울을 감사하게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따뜻한 봄 날이 오게 되면 항아리 안에 남아 있던 김치에 하얀 골마지가 끼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이것이 곰팡이가 아니라 효소라는 것을 연구를 통해 밝혀 냈지만, 당시에는 골마지가 끼면 김치를 더 이상 먹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골마지를 잘 걷어내고 기름에 볶아 먹기 시작했습니다. 어렸을 때 머리속에 남은 하얀 골마지의 모습은 김치를 먹기 위해서 반드시 걷어내야 하는 김치의 적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끊임없이 골마지가 낍니다. 골마지는 우리의 인생과 영혼을 망가뜨리는 오염물질입니다. 모든 것을 “당연시”하고 “무감각”하게 만드는 영혼의 골마지입니다. 인생의 골마지는 곧 매사를 당연시 여기는 마음입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 참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쉽고 간절한 것이 많이 있으면 하나님께 부르짖고 간구합니다. 그러나 정작 일들이 잘 해결되고 나면 금방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자기가 잘나서 모든 일들이 다 잘됐다고 생각합니다.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넓게 열어 같은 조건 속에서도 희비애환(喜悲哀歡)을 달리한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교활함과 우쭐함을 일찌감치 간파해서 그랬을까요? 중세에는 “그대가 행복하다면, 하나님께 감사하시오!”(Si beatus es, deo gratia age!)라는 격언이 있었습니다. 한 주간 작은 일로라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Happy Thanksgiving!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