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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Mala Ultra Adsunt (불행은 초대받지 않아도 온다)

인생을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그 동안 살아오면서 “불행”에 대해 배운 몇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불행은 어느 날 갑자기 순식간에 들이 닥친다는 것입니다. 불행을 미리 예견하고 대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불행이 아닐 것입니다. 불행은 언제나 갑자기 쳐들어와서 뒤통수를 강타합니다. 둘째, 불행은 떼거리로 몰려 다닙니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불행은 단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발로 몰아 닥칩니다. 한번 불행이 시작되면 결코 그것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셋째, 불행은 언제나 순식간에 몰려왔다가 갈 때는 아주 천천히 야금야금 빠져나갑니다.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은 “불행은 말을 타고 왔다가, 갈 때는 걸어서 사라진다”(Misfortune comes on horseback and disappears on foot)고 말을 했습니다. 불행은 인생을 망가뜨리는 주범입니다. 불행이 쌓이게 되면 그 인생은 엉망진창이 되고 맙니다. 원죄(Original Sin)가 지배하는 세상의 대표적인 특징을 한 단어로 정리하라면, 그것은 “불행”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불행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불행을 손쉽게 털고 일어설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축복받은 사람일 것입니다.

유정석이라는 가수가 있습니다. 그는 오랜 시간 무명의 가수로 지내왔는데, 애니메이션 “쾌걸 근육맨 2세”의 주제가 “질풍가도”를 부르면서 자신의 가치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굉장한 고음의 폭발적인 가수였습니다. 하지만, 장르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이었기 때문에 대중에게는 알려지지 못하고 단지 그의 노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이 “질풍가도”라는 노래의 가사말은 지금 들어도 가슴 뭉클하게 할 만큼 감동적입니다. “한 번 더 나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 / 거친 파도에도 굴하지 않게 / 드넓은 대지에 다시 새길 희망을 / 안고 달려 갈거야 너에게 / 그래, 이런 내 모습 / 게을러 보이고 우습게도 보일 거야 / 하지만 내게 주어진 무거운 운명에 / 나는 다시 태어나 싸울거야” 불행한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새 희망을 이루어 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 애니메이션의 주제곡이었기 때문에 대중들에게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가치를 알아 본 사람들이 그에게 접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자기들 드라마의 OST나 대회의 주제곡을 불러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인생이 활짝 피어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유정석 씨에게 연속적인 불행의 폭풍이 불어 닥치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에게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던 누나가 음식을 먹는데 자꾸 목에 무엇인가가 걸리는 느낌이라고 해서 병원에 갔다가 식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남은 시간이 6개월 정도라는 청천병력 같은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유정석씨는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누나를 돌보는데만 집중했습니다. 평소 늘 건강하던 사람이라 금방 일어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병이 점점 깊어만 갔습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이유도 없이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유정석 씨는 정신줄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아직 젊은 누나라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년 후에 누나는 아버지를 따라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습니다.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연 이은 상실감 때문에 충격을 받으셔서 그랬는지 자꾸 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더니 “파킨슨 병” 때문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날부터 유정석 씨는 몸과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손과 발 그리고 복부가 마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신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온 몸의 살이 빠지고 극심한 우울증까지 동반되면서 다시 회복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는 라면을 먹기위해 젓갈질 하는 것 조차도 힘들어서 그냥 맨손으로 라면을 건져 먹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15년 동안, 그는 정말 폐인(廢人)이 되었습니다. 홀로 남겨진 그는 방 안에 갇혀 세상을 등지고 살았습니다. 야속하게도, 그가 불렀던 “질풍가도”는 7년이 지난 뒤부터 오히려 역주행하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날에는 야구장이나 농구장 그리고 축구장 같은 곳에서 스포츠 경기가 있을 때마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크게 울려 퍼지는 응원가가 되었습니다. 너무도 역동적이고 강렬한 가사와 리듬 때문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다 따라 부르는 인기있는 응원가가 되었지만, 정작 이 노래를 부른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유정석 씨는 자신의 노래가 일반 대중 사이에서 애창곡처럼 울려 퍼지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철저하게 망가진 자신의 몸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추스르면서 인생을 접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차에 그의 선배 작곡자 박정식 씨의 눈물겨운 우정과 희생적인 헌신 덕분에 유정석은 다시 자신에게 불어 닥친 불행을 털고 일어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박정식 씨가 망가진 그를 다시 가수로 세우기 위해서 소리를 잡아주고, 광고 섭외도 따내서 돈을 벌게 해주고, 피눈물나는 노력으로 마침내 유정석 씨를 회복의 길로 이끌어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싱어게인3”에서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습니다. 2008년 이후 15년 만의 일입니다. 그는 떨리는 몸을 다잡고 다시 마이크를 움켜 쥐고 무대 위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의 나이가 거의 50세입니다. 그를 심사하는 대부분의 심사 위원들은 그보다 나이가 적은 후배들입니다. 그 장소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도 마이크를 쥐고 무대 위에 선 유정석 씨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얼굴 없는 가수였기 때문입니다. 왜소하고 조그만 이 중년의 남성이 과연 무슨 노래를 부를지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날 자신에게 불어 닥친 불행을 털어내고 비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긴장하고 초조해 하던 유정석 씨는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그 옛날 자신이 불렀던 “질풍가도”를 다시 열창했습니다. 심사위원들 중에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자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너무도 익숙한 그 응원의 노래가 자신들 앞에 서 있는 이미 초로(初老)의 길에 접어든 작은 남자의 것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정신이 반쯤 나간 듯했습니다. 저도 그 노래를 들으면서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가 부른 질풍가도 “쾌걸 근육맨 2세 OST”는 바로 자신의 인생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한 번 더 나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 거친 파도에도 굴하지 않게, 드넓은 대지에 다시 새길 희망을, 안고 달려 갈거야” 폭발적으로 부르는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세상의 노래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불행은 예방할 수 없다면 극복해야 합니다. 불행을 극복한 사람들의 소리는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다윗의 시편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이유는 그가 절망의 밑바닥을 박차고 뛰어 올라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서신들이 기독교의 뿌리를 강하게 붙잡고 있는 이유는 그가 쓴 글들이 책상에서 기록된 논리적인 글이 아니라, 고난의 현장 속에서 직접 일구어 낸 땀과 눈물과 피의 절정이기 때문입니다. 불행이 없는 사람은 이 땅 위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불행을 극복하고 일어선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우리도 그들 중의 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