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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11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Timidi Mater Non Flet (겁쟁이의 어머니는 울지 않는다)

이스라엘 정규군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대원들과의 전투가 날마다 격해지고 있습니다. 서로 간의 피해가 상당합니다. 매일 매스컴에서 달라진 현지 사정 소식을 전하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하마스의 매복 공습으로 인해 사망한 이스라엘 지상군들의 소식이 보도 되기도 하고, 반대로 이스라엘 군의 대규모 미사일 공격으로 죽거나 부상당한 가자(Gaza) 지구의 불쌍한 노약자들과 어린아이들 소식이 매일 단골 메뉴로 전해집니다.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 좀처럼 구분하기 힘든 보도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한번은 아들들을 전쟁터로 떠내 보내야만 하는 양쪽 진영의 슬픈 어머니들의 모습이 차례로 방송되어 가슴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한쪽에서는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품에 안겨 “꼭 살아 돌아오라”고 울부짖었고, 또 다른 한 쪽에서는 “반드시 원수들을 물리치라”고 호통을 치는 굳은 표정의 어머니를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이 전쟁의 방향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들의 마음은 충분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 역에서 한국 침략의 원흉 중의 하나인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고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안중근 의사의 뒤에는 슬픈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있습니다. 안중근의 명성이 워낙 대단하기에 그녀의 이름은 좀처럼 거론되는 일이 없지만, 사실 아들에게 평생 “조국 사랑”을 가르친 진정한 애국 투사는 어머니 “조마리아”입니다. 그녀는 아들 안중근이 처형된 이후에도 남은 생애를 조국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다가 6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서 사형 판결을 받고 차가운 감옥의 독방에서 죽을 날 만을 기다리던 안중근 의사가 어떤 마음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적지 않는 혼란과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일본군들의 무수한 회유와 설득 작업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마다 안 의사에게 정문일침(頂門一鍼)을 가하며, 그의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다잡은 사람이 바로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였습니다. 그녀는 아들에게 변치 않고 한 마음을 품을 것을 요구하는 편지를 여러 차례 써서 보냈고, 그가 죽은 후에 입게 될 새 하얀 수의(壽衣)도 손수 지어 보냈다고 합니다. 대단한 어머니입니다.

이 용감한 어머니는 자필로 쓴 편지에서 이렇게 당부했다고 합니다. “아들아, 나라를 위해 떳떳하게 죽거라. 네가 만약 일본 정부에 항소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 될 것이다.” 결국, 안중근 의사는 일본 정부에게 항소를 포기하고 1년 뒤인 1910년에 뤼순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조마리아 여사는 여성 독립운동가 사이에서 신망이 높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관대하면서도 대의에 대해서 만큼은 단호한 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안 의사에게 보낸 편지 중에 이런 글이 있다고 합니다.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거라.”

자신의 몸으로 낳은 자식이 죽는데 멀쩡할 어머니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대의(大義)를 위해 그 귀한 자식을 헌신할 수 있는 어머니는 위대한 어머니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어머니가 있어 세상이 살아 움직입니다.

인문주의자 “에라스뮈스”는 용기(courage)를 극찬했습니다. 그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었습니다. 비겁하게 거짓에 순응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어떠한 희생을 치루더라도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의 진리가 지켜지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귀한 것을 희생해서 대의를 이루는 용감한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이 움직입니다. 에라스뮈스가 “겁쟁이의 어머니는 울지 않는다”(Timidi Mater non flet)라는 격언 속에서 강조하려고 했던 것은 그냥 “어머니”가 아니라, “겁쟁이의 어머니”입니다. 용감하고 겁 없는 사람은 언제든지 불의와 맞서려고 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고, 죽을 수도 있기에 어머니의 근심이 되지만, 용기 없는 겁쟁이는 그의 어머니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가벼운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을 말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겁쟁이의 어머니는) 결코 비통해 하지 않는다.”

영국 속담에는 “나뭇잎을 두려워하는 자는 결코 숲 속으로 들어가서는 안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또, 우리 한국의 속담에도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의 목적을 이루고 큰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가도 지불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에라스뮈스의 시대에는 “운명의 여신은 용감한 자의 편이다”(Fortes fortuna adiuvat)라는 격언도 있었는데, 용감한 행동을 독려하려고 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좀처럼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다만, 각성한 몇몇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도전하게 되는데 결국 그들이 운명의 주인공이 됩니다.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명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아들까지도 헌신할 수 있었던 조마리아 여사의 용기 때문에 조국도 되찾을 수 있었고, 안중근이라는 민족의 영웅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용감한 아들은 언제나 용감한 어머니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용감한 아들은 근심과 걱정의 대상이 될지는 몰라도 언제나 자부심과 긍지의 아들이 됩니다.

몇 달 전에 어머니가 한국에서 방문을 오셨습니다. 육십 살이 될 때까지 인생의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그때 마다 옆에서 힘이 되어 주셨던 분이 바로 “어머니”입니다. 심장 수술을 하고 계속되는 후유증 때문에 학창시절을 접고 방바닥에 몇 년 동안 누워지낼 때, 세상의 꿈을 접고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을 때, 신학대학을 졸업한 후, 외딴 섬으로 첫 목회를 나갔을 때, 한국의 대형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초청을 받았지만, 유혹을 뿌리치고 이민 목회자로 남았을 때,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헤어져서 오랜 시간 홀로 지내야 했을 때, 위기의 매 순간마다 든든한 등대가 되어 주셨던 분이 바로 “어머니”입니다. 얼마 전에 애틀랜타에서 세상 떠들썩하게 난리를 치를 때도 아픈 마음을 묵묵하게 다독여 주신 분이 어머니입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은 관심을 가져주고 도움을 주려고 했는데, 함께 믿음의 가족으로 살아왔던 “교회 가족들”이 차갑게 등을 돌리는 모습이 환멸스러울 만큼 절망감을 주었습니다. “만약, 잘못된 것이 있으면 목숨으로 갚겠다”고 말을 해도 모두 입을 다물고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그냥 다 접어 버리려고 했는데, 항상 변함없이 힘이 되어 주셨던 분이 여전히 어머니입니다.

“내 아들은 내가 안다”는 말씀과 “어미가 기도하고 있으니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씀에 하늘을 보고 한번 호탕하게 웃고 다시 목회 줄을 잡았습니다. 적어도 어머니에게는 겁쟁이 아들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으로 흐트러졌던 생각을 다시 한번 다잡습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