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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6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Leporis Vitam (토끼처럼 살다)

“아다지아”(Adagia)에 나오는 격언들은 언뜻 제목만 들어서는 오해하기 십상인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관점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그 말이 상용되던 시대의 상황은 어떠했는지, 그 당시의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을 고려하지 않으면 자칫 오해를 낳을 수 있는 격언들이 즐비합니다. 그 중의 하나가 “토끼처럼 산다”(To lives a hare’s life) 입니다. 이 말을 처음 접하게 되면, 토끼처럼 항상 긴장하면서 살라는 말인지, 토끼처럼 자식들을 많이 낳고 살라는 말인지, 아니면 자신의 약함을 알고 항상 대비하는 삶을 살라는 말인지 도통 그 뜻을 짐작하기가 어렵습니다.

특별히 한국 사람들이 학창시절부터 자주 들어왔던 교훈 중의 하나가 “교토삼굴”(狡兎三窟)입니다. “날랜 토끼는 위기를 피할 수 있는 굴을 세 개 가지고 산다”는 뜻입니다. 언제 어디서 여우나 맹수들이 공격할지 모르니 항상 도망칠 준비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토끼처럼 살다”(Leporis Vitam)라는 말을 토끼의 삶에서 “교토삼굴”같은 교훈이나 인생 처세술을 배우라는 격언으로 이해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의 출처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아무리 어렵고 절망적인 삶이라고 할지라도 자포자기해서 죽으려고 하지 말고 끝까지 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이솝 우화”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동물들 가운데 가장 겁이 많고 약한 토끼들이 어느 날, 한 자리에 모여 회의를 했다고 합니다. 다른 동물들은 전부 공격용 무기나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방어 수단이 있는데 자신들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푸념을 했습니다.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 높이 날 수 있는 강한 날개 또는 수틀리면 언제든지 받아 버릴 수 있는 뿔, 그것도 아니면 악어처럼 이 모든 공격을 견뎌 낼 수 있는 강한 가죽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자신들은 아무 것도 없다고 낙심했습니다. 무서운 맹수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자는 바람에 새빨갛게 충혈된 눈알들, 누군가가 기침만 해도 쏜살같이 달아나다 보니 기형적으로 커진 두 귀, 늘 스트레스와 공포 속에 살아가면서 음식물도 잘 소화시키지 못해서 똥이 항상 동그랗게 말려 나옵니다.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게다가, 늘 불안 속에서 살다 보니, 부부생활도 제대로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시원찮은 남자들을 표현할 때, 자신들의 이름을 함부로 남용합니다. 너무도 절망스럽습니다.

그들은 오랜 시간동안 대화를 하다가 세상에 자기들처럼 약하고 무능한 동물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다같이 죽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들은 근처에 있는 연못 물에 빠져 죽기로 합의를 보고 떼를 지어 연못으로 달려 갔습니다. 그 때, 연못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던 개구리 무리들이 갑작스럽게 달려오는 토끼들의 발자국 소리에 화들짝 놀라 연못으로 뛰어드느라고 난리가 났습니다. 천둥소리 같은 토끼들의 발자국 소리에 얼마나 놀랐는지 개구리들은 연못 속에서 한 동안 얼굴도 내밀지 못했습니다. 그 순간 토끼들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자신들을 무서워하는 동물들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라웠습니다. 그들은 죽으려고 하던 생각을 접고 다시 열심히 살기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사람이라고 해서 다를까요? 사람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라 자기 자신 밖에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자기만 억울하고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나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삶을 마감하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은 그런 나를 자신의 희망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나만큼 만 되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격언의 뜻은 “죽으려고 했던 토끼들이 마음을 바꿔 살기로 한 것처럼, 당신도 죽지 말고 살라”는 뜻입니다.

한 평생 운영해 왔던 기업이 부도가 나면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살을 생각하며 밤새 술을 마셨습니다. 오른손에는 초강력 수면제가 한 움큼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잔뜩 술에 취해서 “자살”이라는 말을 계속 되 뇌였습니다. “자살, 자살, 자살, 자살 …” 그런데 어느 순간인가 혀가 꼬이면서 딸꾹질을 하는 바람에 “자살, 자살” 하다가 “… 자, 살자, 살자, 살자, 살자…”라는 말로 말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말의 순서만 바꾸어도 “자살”이 “살자”가 되는 것을 보면서, 그는 자신이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용기를 내어 그냥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자신의 무력함을 한탄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행복해 보이는데, 자기만 불행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을지는 몰라도 정말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분이 부러워했던 사람은 전날 밤에 저를 찾아와서 밤새워 눈물을 흘리며 죽겠다고 난리를 피웠던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 갑니다. 그러므로, 어둡게만 생각하지 말고,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고통스러운 역경 속에서도 계속 살아야 할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월남 전에서 큰 부상을 입은 상이군인이 있었습니다. 오른쪽 다리와 왼팔을 잃었고 얼굴도 폭탄 파편으로 인해서 심하게 일그러졌습니다. 간신히 목숨을 건져 고국으로 돌아왔는데 국가는 그에게 쥐꼬리 만한 보상금을 주었습니다. 그는 혐오스러운 몰골 때문에 국가로부터 집 밖으로 나오지 말고 방 안에만 죽치고 앉아 있을 것을 요구 받았습니다. 젊은 나이에 나라를 위해서 먼 타국까지 가서 전쟁을 치루다가 불구의 몸이 되어 돌아 왔는데, 영웅 대접은 고사하고 거렁뱅이 취급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죽고 싶을 만큼 허탈하고 억울했습니다. 이 청년은 모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삐뚤어질 대로 삐뚤어졌습니다.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동냥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협박해서 금품까지 뜯어 냈습니다. 밤이 되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서 미친듯이 말술을 마셨습니다. 그는 몇 번이나 한강 다리로 가서 투신 자살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목숨 줄 끊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던 거렁뱅이 몇 사람을 알게 되어 그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주업은 구걸이었습니다. 그리고 집 주인이었던 그 청년에게 거지들은 조금씩 월세를 내며 얹혀 살았습니다. 그런데 거지 중의 한 사람은 두 발을 쓰지 못하는 하반신 장애자였습니다. 어느 날 심한 몸살로 몇 일 동안 몸져 눕는 바람에 그 거지는 구걸을 할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월세가 밀렸고, 거지는 그 청년에게 두 손을 모아 빌면서 “제발, 자기를 쫓아내지 말아달라”고 사정사정했습니다. 그날, 청년은 자기 같은 상이군인 출신의 장애인에게도 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망가진 자기를 오히려 동경하는 사람을 보면서 그 청년은 흐트러진 자신의 삶을 다잡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거의 다 인생의 밑바닥을 친 사람들입니다. 떠돌이, 살인자, 창기의 아들, 겁쟁이, 간부(姦婦), 귀신들린 사람들, 시한부 인생들, 박해자 그리고 스스로를 향하여 희망의 줄을 놓아버린 사람들! 놀랍게도 주님은 언제나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당신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만약 스스로를 토끼처럼 무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이 주님의 일을 감당해야 할 사람입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