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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2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본립도생(本立道生)

옛날, 중국 사람들은 학식이 뛰어나고, 인품이 훌륭한 사람들에게는 이름의 끝 자에 “자”(子)를 붙여 주어 존경과 예의를 표했습니다. 그래서 공자, 맹자, 노자, 묵자, 한비자 같은 이름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특히, 중국 사람들은 공자를 매우 존경했습니다.

그가 죽고나서 그를 대신해서 유학을 이끌어줄 리더를 뽑게 되었는데, 그때 제일 먼저 거론된 사람이 공자의 제자였던 “유자”(有子)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유자가 남긴 말 중에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말이 <본립도생(本立道生)>이라는 말입니다. 원문의 말은 “군자무본(君子務本)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이라는 말입니다. “군자는 기본에 힘을 쓰고, 기본이 서게 되면, 길은 저절로 생겨난다”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자기 스스로 가장 중요한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서 남에게 바른 길을 가르친다면, 과연 누가 그 말을 듣겠습니까? 당연히 설득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해라”, “정직해라”, “친절해라”, “부지런해라”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를 먼저 충실하게 지키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력을 가지고 가르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먼저, 기본적인 법과 원칙에 충실해야 길이 생겨난다는 “본립도생”의 가르침은 언제나 진리입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가시다가 길에서 구걸하는 한 맹인 거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태어난 것입니까? 그의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본인 자신의 죄 때문입니까?”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의 죄 때문도 아니다. 그들은 불편한 모습 속에서도 최선의 삶을 살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예수님은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 제자들의 질문에 답을 해주셨습니다.

이사야서 43장 21절은 우리가 창조된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 인간이 창조된 가장 중요한 이유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이 본질에 집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 그리고 “구원의 문제”와 같은 본질적이고,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제자들을 부르실 때도, 아버지의 죽음으로 고민하는 청년에게 “죽은 자는 죽은 자들에게 맡기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것에 충실하라는 정문일침의 말씀입니다. 결코, 아버지에게 불효하라고 가르치시는 것도 아니고, 자녀로서의 의무를 저버리라는 뜻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기로 결정했으니, 그 결정에 우선적으로 집중하라는 결단의 요청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배와 그물을 버리고 즉시 예수님을 따랐다”는 말씀은 너무도 중요한 제자도(discipleship)의 기본입니다. 성경 말씀 어디에도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배와 그물을 싼 값에 정리하고, 또는 노년을 위해 남에게 임대해 주고, 아니면 미래를 위해 자신들의 집에 가져다 놓았다는 구절의 말씀이 없습니다. 단호하게 “즉시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질에 충실하고 나머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소리입니다. 또,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 실습에 보내실 때에도, 아무 것도 가져가지 않고 오직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가게 하셨습니다. 돈 전대나, 주머니, 그리고 여벌의 신도 없이 그냥 하나님만 믿고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예비하실 것을 믿고 단지 복음에만 충실하게 하셨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우리의 정신을 뒤흔들고,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여러가지 많은 시사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이 우리의 골머리를 앓게 만듭니다. 동성애의 문제, 안락사의 문제, 마약의 문제 그리고 총기 소지 합법화와 같은 문제들이 우리의 심사를 복잡하게 만듭니다. 악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차별법 금지와 평등법과 같은 인권의 문제를 들어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고, “시대의 흐름”이라는 정당성으로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선악의 문제들을 한꺼번에 다 뒤집으려고 합니다.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는 것을 요즘에는 매일매일 실감하며 살아갑니다. 세상은 점점 더 악해져서 우리들의 자녀들이 주역으로 살아가는 시대가 되면, 정말 무서운 일들이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긴장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제는, 지엽적인 것을 붙잡으면 답을 찾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로 세워야 하는지? 가장 근본적인 것을 생각해보고, 다시 집중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가장 근본적인 것을 바로 세우면, 언제든지 다시 길이 열립니다.

지혜의 책인 잠언은 우리에게 이렇게 조언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언 9:10) 이 말씀은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정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신앙인에게 가장 중요한 “본립”(本立)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단순히 “하나님을 무서워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매사에 삼가고, 존중하고, 삶에 있어서 가장 우선순위에 둔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을 제일 먼저 생각해보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좇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세이고, 근본적인 방법입니다. 먼저 하나님께 충실하면, 언제든지 인생의 새로운 길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세상이 망가지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자 모든 것들이 엉망진창으로 꼬여버리게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다시 “본립”(本立)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2024년부터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본립도생>을 위해서 해야 할 네 가지 기본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성경을 늘 읽고, 암기하고, 묵상하고, 나누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둘째는, 기도로 돌아가야 합니다. 기도는 신앙의 출발점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첫걸음입니다. 여기서부터 모든 것을 풀어가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사도바울의 말씀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동행하시고, 우리의 인생을 이끌어 가십니다. 세째는,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모든 일을 할 때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어렵고, 힘들고, 뜻대로 안 풀린 것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원망과 불평을 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그 고난의 순간에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은혜가 고난보다 더 컸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감사는 곧 믿음의 모습입니다. 감사는 단순한 감정의 표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입니다. 네째는, “겸손”을 세워야 합니다. 사람은 겸손해야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갈 수 있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고,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신앙의 최고 덕목이 무엇이냐?” 는 제자들의 물음에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겸손은 신앙의 가장 아름다운 기본 자세입니다. 새해에는 “본립도생”의 자세로 주님과 함께 힘차게 도약하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