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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12

삶을 반추하는 작은 생각들


편안(Comfort)과 평안(Peace)

“조오지 타켓”(George William Target)이 쓴 <창>(The Window)이라는 단편소설 속에는 중병에 시달리는 두 명의 환자들이 등장합니다. 어느 시골 작은 병실에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시한부 남자와 중증 허리 디스크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년배의 남성이 함께 입원해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심각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폐암 환자는 폐에 자꾸 물이 차서 숨쉬기가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오래 누워있지 못하고 자주 일어나서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곤 했습니다. 또, 디스크 환자도 조금만 움직이려고 해도 칼 끝으로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고통이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고개를 조금도 돌리지 못하고 병실의 천정만 바라보며 하루 종일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죽음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폐암 환자는 생각보다 명랑했습니다. 이제 남은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나 공허감에 사로 잡히든지, 아니면 쉬지 않고 찾아오는 통증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텐데, 항상 평온하게 보였습니다. 그는 자주 일어나서 흐뭇한 표정으로 창 밖을 내다보곤 했습니다. 반면에 디스크 환자는 정기적으로 연신 신음 소리를 내며 짜증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디스크 환자가 고개도 못 돌리고, 폐암 환자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밖에 뭐가 보이나요?” 그러자 폐암 환자는 눈을 지긋이 감고 디스크 환자에게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호수에 보트와 백조가 한가롭게 떠 있네요! 호숫가에서 산책하는 연인들도 보이고, 잔디밭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아이들도 보이네요. 모두 평화롭게 보여서 참 좋습니다.” 그 말을 들은 디스크 환자는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폐암 환자가 고통의 순간을 보내면서도 얼굴이 밝고 기쁨에 차 있던 이유를 드디어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침대가 창문 바로 옆에 있어서 세상과 쉽게 교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매시간마다 저렇게 좋은 풍경을 내다보면서 고통을 다 잊고 평안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침대는 방 안쪽에 있어서 창 밖을 내다볼 수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누워서 하얀 천정만 바라볼 수밖에 없으니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이런 작은 것까지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상하고, 매사가 짜증스러워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는 폐암 환자가 빨리 죽어서 병실을 떠나게 되면 다른 환자가 들어오기 전에, 얼른 창가 쪽으로 자기 침대를 옮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오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한 밤 중에 폐암 환자가 갑자기 심한 기침을 하다가 결국 쓰러져서 의식을 잃고 만 것입니다.

디스크 환자는 얼른 비상벨을 눌러 의사를 부르려고 하다가 잠시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어차피 죽을 폐암 환자인데 자기가 의사를 부른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그냥 이 참에 편안히 죽을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오히려 그에게 좋을 것이고, 자신도 침대를 창가 쪽으로 옮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르는 척하고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폐암 환자는 예상했던 대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디스크 환자는 자신이 원하던 대로 자기 침대를 창가 쪽으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그는 죄책감을 털어버리고, 바깥 풍경을 감상하려고 죽을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켜서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시커먼 회색의 콘크리트 담벼락이었습니다. 아름다운 호수나 하얀 백조 그리고 연인들이나 아이들의 모습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입니다. 창은 모형 뿐이었고, 창 밖에는 곧바로 콘크리트 벽이 설치 되어 있었습니다.

폐암 환자는 절망스러운 고통을 잊으려고 그 동안 상상의 나래를 폈던 것입니다. 그에게 평안을 주었던 것은 창 밖으로 비치는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라,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남은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려고 했던 그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삭막한 시멘트 벽 앞에서도 아름다운 호수와 자연을 그리며 마음의 평안을 유지했던 것입니다.

저자인 조오지 타겟(G. W. Target)은 이 소설을 통해서 “편안”(comfort)과 “평안”(Peace)의 차이점을 설명해주려고 했습니다. “편안”은 환경에서 주어진 평화입니다. 편안은 멋진 집, 좋은 차, 향기로운 커피, 그리고 명품 침대 같은 것들로부터 얻어지는 안정감이나 만족감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편안”을 동경하고 추구합니다. 편안함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런 편안을 통해 얻어지는 기쁨과 행복은 편안을 주었던 환경이 사라지게 되면 함께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편안은 참 평화가 아니라, 거짓 평화입니다.

반대로, “평안”(Peace)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평화입니다. 예를 들어, 집도 안 좋고, 먹는 음식도 보잘 것 없고, 직장도 안정적이지 못하고, 침대도 좋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사람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평안은 환경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하고, 감옥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리던 “안중근 의사”는 추운 겨울에 차가운 마루바닥에서 헌 음식을 먹으며, 고문도 받고, 온갖 고통에 시달렸지만,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큰 일을 했다는 자부심과 안도감 때문에 늘 마음이 평안했다고 합니다. 평안은 환경이 아니라, 마음에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안은 어떠한 조건 속에서도 사람을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어줍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편안”을 추구한 사람들이 아니라, “평안”을 목적하며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어찌 보면, 평안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본질”과도 같은 것입니다. 인생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열쇠입니다. 그런데 평안은 종종 편안에 밀려 뒷전으로 치부되기 일쑤입니다. 사람들은 편안함에 사로잡혀 인생을 껍질만 붙잡고 살아가다가 뒤늦게 후회하며 삶을 마감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해서 얻으려고 하는 것은 인생의 부나 소원성취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지는 평안을 얻기 위해서 입니다. 물론, “평안”이라는 단어 속에는 여러가지 넓은 의미의 가치들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이 땅에서와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구원”, “은혜”, “기쁨”, “감동”, “주님과의 동행” 등, 세상에서의 단순한 부유함을 뛰어넘는 포괄적인 개념의 단어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수많은 서신들 속에서 시작과 끝을 언제나 “평안”이라는 단어로 풀었습니다. 평안은 세상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주어지는 은혜이고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 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결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찾아서 우리는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교회를 선택하고, 믿음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평안은 언제나 우리의 신앙 속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단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지 우리는 그 소중한 평안을 너무도 쉽게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힘든 세상살이가 우리의 삶을 시나브로 평안에서 멀어지게 한 것입니다. 2024년도에는 우리 믿음의 형제들에게 반드시 주님의 평안이 회복되고, 삶의 현장 속에 넘쳐나게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 아틀란타 소명교회 김세환 목사